코로나사태 이후 하버드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뇌과학 강의를 재미있게 듣고 있다. 그 중 ‘Fundamentals of Neuroscience, Part 3 : The Brain’은 젊은 교수님이 수업을 이끌어간다.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다양한 예를 들어가며 영상으로 쉽게 설명한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온라인 게시판에 질문을 올릴 수도 있다. 수업을 듣다보면 우리 신체가 얼마나 정교하고, 복잡하게 얽혀있는지 그리고 아직까지 우리가 모르는 기능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느끼게 된다.

강의 내용 중 ‘해마’와 ’편도체’ 부분이 상당히 의미 있게 다가와 공유해본다.

 

해마(海馬, Hippocampus)

어려서 시험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리며 공부하고 있을 때 엄마는 항상 한 말씀 하셨다.

“아이고, 그만 공부하고 어여 자렴. 늦게까지 스트레스 받으면서 공부하면 어차피 다 소용없어”.

그때 당시 그 말씀을 그냥 흘러들었는데, 과학적 근거에 의하면 정말로 맞는 말이다. 엄마는 세포와 대화를 하신 건가? 아니면 앞을 내다보신 건가?

▲ 뇌의 해마와 바다 생물 해마 모습

뇌에는 바다 생물 해마(海馬)처럼 생겨서 해마라고 부르는 부분이 있다. 해마는 새로운 기억을 저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곳이다.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해마의 능력을 방해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Cortisol이라는 호르몬이 증가한다. 이 호르몬은 동맥을 타고 움직인다. 해마는 뇌로 향하는 동맥과 가까이 있어 Cortisol은 해마에게 전달되기 쉽다. Cortisol은 해마 세포를 손상시키고, 이는 새로운 기억 생성을 방해한다.

그럼 이 해마같이 생긴 작은 부분이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건 어떻게 발견되었을까?

시간은 1926년으로 흘러간다. 미국 코네디컷 주에서 태어난 Henry Molaison은 어린 나이인 7살에 자전거 사고로 뇌손상을 입어  ‘뇌전증’을 갖게 된다. 뇌전증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부분 혹은 전신 발작을 일으키는 장애다. 우리나라에서는 ‘간질’이라고 흔하게 불렀다. 27살 때, 힘들게 직업을 갖게 되었지만 발작이 심해져 일도 그만두게 된다. 1953년, 34세의 나이에 Henry Molaison은 신경외과 의사인 William Beecher Scovillle을 만난다. 의사는 Henry의 해마에 손상이 있어 뇌전증이 온다고 판단하고 해마를 제거하는 뇌수술을 하자고 한다. 이에 Henry는 뇌수술을 받는다. 수술 후 발작증상은 많이 호전되었지만... 다른 이상증세를 보이게 된다. 어떤 증상일까?

▲ 해마

Henry는 수술이후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수술 이후 습득한 정보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랬다. Henry는 ‘전향기억상실증(antegrade amnesia)’을 갖게 된 것이다. 즉 수술이전에 생성된 기억은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수술이후부터 생성된 정보를 저장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크게 당황한 의사 Scoville은 매일 Henry를 찾아가 본인에 대한 소개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어떤 점이 잘못 되었는지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테스트를 해보았다고 한다. 결국 과학자들은 뇌의 아주 작은 부분인 해마가 없어지면, 새로운 기억을 만들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 메멘토의 한 장면

Henry는 병원에서만 살다가 2008년 82세에 사망했다. 34세에 머물러 거의 50년을 살다간 Henry의 삶은 어떤 삶이라고 해야 할까? '나로 존재할 수 없는 내 삶'이라고 해야할까? Henry Molaison의 이야기는 여러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제작한 <Memento>, ‘피터 시걸’이 감독한 <첫 키스만 50번째>가 그 영화다.

아이러니하게도 Henry의 희생으로 해마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고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해마의 크기가 작아지면, 기억상실증 즉 알츠하이머(치매)가 일어난다고 보고되고 있다. 특히 스트레스 등으로 해마가 줄어드는 원인을 찾기 위해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해마, 뇌 안에 존재하는 작은 기관은 사실상 하마와 같은 큰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편도체(扁桃體, Amygdala)

▲ 편도체

뇌에는 단순히 기억을 축적하는 기능 말고도 더 중요한 기능을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편도체(扁桃體)다. 인간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감정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슬픔, 기쁨, 무서움, 화 등의 감정은 뇌에 있는 아주 작은 편도체(사이즈가 아몬드만하다)에서 발생한다. 편도체는 이타심, 공감, 적개심 등 감정과 관련된 학습 과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편도체는 놀랍게도 성별에 따라 크기가 다른 유일한 뇌 기관이다. 남성은 편도체가 더 크고, 여성은 작다. 크기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편도체는 조금 다르게 작용한다. 예를 들면, 무서운 영상을 보여줬을 때 남성에게선 오른쪽에 있는 편도체가 활발히 활동을 하고 여성에겐 왼쪽에 있는 편도체가 활동을 한다. 오른쪽 편도체는 좋지 않은 감정을 느끼면 몸으로 행동하는 걸 촉진시키고, 왼쪽 편도체는 행동보다 생각을 하게끔 한다. 그래서일까? 여성은 남성에 비해 화가 나더라도 몸으로 행동하지 않고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그럼 편도체에 이상이 오면 행동이 어떻게 바뀔까?

1940년, 원숭이에게서 편도체를 제거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편도체가 제거된 원숭이를 뱀과 함께 놓았을 때, 원숭이는 뱀을 보고 피하는 행동을 하기보단 가까이 가서 관찰을 했다고 한다. 즉 공포심이 없어진 것이다. 1970년엔 어미원숭이 편도체에 손상을 주고 행동을 주시했다. 어미원숭이는 수술이후 새끼원숭이들을 돌보지 않고 심지어 학대까지 한다고 보고되었다. 편도체가 손상된 어미는 모성이나 이타심도 함께 잃어버린 것이다.

편도체는 인간의 여러 정신병과도 연관이 있다. 예를 들면 왼쪽 편도체에 이상이 있을 경우 불안증, 강박성 성격장애, 자폐증 등과 같은 뇌질환이 유발된다. 사이코패스 환자들에게 무서운 영상을 보여주었을 때 일반인과 다르게 편도체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다. 반대로 우울증이나, 사회적 불안장애를 갖고 있는 환자는 무서운 영상에 과도하게 반응한다. 이처럼 편도체는 무서운 자극을 인식하고 그걸 저장하는 능력을 갖고 있고, 타인의 기분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주는 뇌의 한 부분이다.

그럼 스스로 감정을 더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뇌를 훈련시킬 수 있을까?

먼저 기억력을 상승하기 위해선 우리 뇌에 있는 해마를 자극하지 말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스트레스를 줄이고, 좋은 식습관, 주기적인 운동, 적당한 수면, 명상 등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한다.

편도체를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내가 중심이 아닌 타인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명상, 너그러움을 생각하는 명상,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명상을 하면 편도체 활동이 더 활발히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타심은 본인 훈련에 따라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뇌는 다양하고 정교하게 작동하여 ‘나’라는 존재를 만들게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 좋은 ‘나’를 만들기 위해서 뇌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명상과 같은 연습을 하면 정말로 진화된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이 진화를 한다면 아몬드와 같이 생긴 편도체와 해마가 발달하는 쪽으로 진화를 하면 좋겠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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