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못 간지 벌써 일 년 반이 되어간다. 예정대로라면 올 4월 한국에 있었는데... ‘코로나19’로 국경이 닫히면서 비행기가 결항되었고 한국행 비행기도 자동으로 취소되었다. 지금 캐나다는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연구실은 2주전 다시 문을 열었다. 다들 파트타임으로 실험실에 나오지만, 커피타임, 점심시간, 미팅은 자연스레 없어졌다. 연구실은 아직도 으스스하게 사람이 거의 없다.

3월 중순부터 격리되어 4월, 5월을 지냈다. 6월에 접어들자 날씨가 따듯해지고 꽃이 피면서 답답하고 우울했던 마음은 한결 나아졌다. 4월 중순이 지나면서 야외 야채·꽃가게도 문을 열었다.

 

신선한 야채를 살 수 있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요리를 해먹고 있다. 요새는 한국음식이 먹고 싶어 엄마가 해주시던 ‘전’들, 깊고 시원한 맛을 풍기는 찌개류들을 해먹고 있다. 외국은 찌개, 국 등이 없고 크림을 탄 느끼한 스프만이 국물요리다. 그래서 김치 한통을 사다 김치찌개, 김치전 등 각종 한국요리를 해먹으며 느끼함을 달래고 있다. 한국음식을 먹으면 엄마가 부엌에서 분주히 요리를 하던 뒷모습이 떠오른다. 다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며 음식을 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면서 마음이 따듯해진다. 어떤 때는 울컥하면서 가족이 너무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처럼 음식은 우리에게 다양한 맛을 제공해주고 타임머신처럼 과거를 회상하고 감정까지 느끼게 도와준다.

우리 전통 음식은 우리의 고유한 입맛으로 자리 잡고 있고, 외국에 가서도 그 음식을 먹고 싶게 만든다. 김치나 찌개요리 등은 어떤 고유한 맛을 갖고 있기에 우리 입맛속에서 우리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까? 맛의 느낌으로 어떻게 기억을 회상할 수 있을까?

▲ 혀, 혀유두, 맛봉오리의 구조(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미지 출처 : GettyimagesKorea)

감자전을 먹는다고 가정해보자. 감자전을 입에 넣고 씹으면 감자전은 잘게 부서지고 침과 섞인다. 침은 ‘아밀라아제’라는 효소를 갖고 있어 감자전을 분해한다. 이는 감자전 특유의 화학적 구조물을 노출하게 만들고 이는 혀의 오돌토돌한 맛봉오리(미뢰 味蕾)에 도달하여 미각세포를 깨운다. 미각세포는 이를 인지하고 연결된 맛을 느끼는 신경인 미신경을 활성화시킨다. 미신경은 이 정보를 뇌에 전달한다.

▲ 미각세포, 지지세포, 기저세포로 구성된 맛봉오리(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미지 출처 : GettyimagesKorea)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뇌는 감자전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우리는 ‘맛있다’라는 쾌락과 만족감을 느낀다. 이로 인해 뇌는 감자전을 분해할 수 있도록 특정 호르몬 분비를 유도하고, 식도를 타고 내려간 감자전을 위에서 분해시킨다. 동시다발적으로 뇌는 감정과 기억을 인지하는 편도체와 해마를 활성화시켜 특정 맛이 주는 기억과 감정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감자전을 먹으면 만족감과 더불어 가족과 같이 먹던 기억에 마음이 뭉클해지는 것이다.

인간은 살아있는 생명체 중 가장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고 음식을 먹으면 즐거움, 만족감을 느낀다. 진화론적으로 볼 때 특정 신체기관은 쾌락이나 만족감으로만 발달하지 않는다. 다양한 맛을 인지하는 능력은 진화론적으로 인간에게 유리했던 것일까?

▲ 오른쪽부터 달고, 쓰고, 짜고, 시고, 감칠맛(사진 출처 https://food52.com/blog/12326-the-5-tastes-how-to-cook-with-them)

인간은 채식성인 침팬지와 다르게 잡식성이며 기본적으로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이렇게 알려진 다섯 가지 맛을 느끼는 미각세포를 갖고 있다.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이 침팬지에서 진화할 수 있었던 방법 중 하나이다.

다섯 가지 맛을 느낄 수 있는 기능이 진화론적으로 어떻게 기여를 했는지 살펴보자.

사람들 대부분은 달달한 맛을 좋아한다. 단 음식을 먹었을 때 만족감도 느낀다. 원시시대는 사냥이라는 방법을 통해 음식을 획득했던 시기였다. 그만큼 음식이 넉넉하지 못했다. 단맛은 보통 설탕, 빵, 쌀, 우유 등에 많이 존재하는데, 단맛을 내는 음식을 섭취하였을 경우 순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을 대량 공급받는다. 뇌는 이런 단맛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기억하고, 단맛을 선호하게끔 인간을 진화시켜왔다. 따라서 음식이 넉넉지 못했던 원시시대엔 단맛을 내는 음식을 선호하고 섭취하는 것이 살아나갈 수 있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였다.

짠맛도 진화론적으로 유리한 걸까? 음식을 조리할 때 전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필수적인 재료는 소금이다. 소금은 화학적 명칭으로 '염화나트륨' 이라고 한다. 우리 몸에 항상성 (혈압, 뇌활동, 근육 수축과 이완 등)을 유지하는데 필수적 성분이다. 따라서 인간이 짠맛을 갈망하는 이유도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진화한 한 방법이다.

신맛은 우리가 좋아하는 과일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과일은 인간에게 필요한 비타민 C를 제공한다. 비타민 C는 면역시스템을 증진시키고, 세포 성장과 재생, 심혈관 기능에 필수적 성분이다. 따라서 인간은 신맛이 나는 과일을 즐겨먹고 모든 균과 싸워 이겨내는 기능을 갖게 된다. 

쓴맛은 왜 필요할까? 쓴맛이 나는 음식을 먹으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먹는 걸 중단한다. 쓴맛 음식은 주로 상한 과일, 우유 등에 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음식처럼 보이지만 입안에 넣어 쓴맛이 나는 순간 우리는 거부한다. 이는 상한 음식이 더 이상 몸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방지하는데 있다. 독성 식물은 섭취하는 순간 엄청난 쓴맛을 낸다. 쓴맛은 인간이 특정음식을 더 이상 섭취하지 않고 몸을 보호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방어체계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쓴맛을 덜 느끼도록 점층적으로 진화했다. 실제로 우리는 특정 쓴맛에 적응을 하고 심지어 즐기기도 한다. 커피, 차, 와인, 맥주, 카카오 등이 그렇다.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쓴맛을 덜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이유는 불을 사용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음식을 조리하고, 다양한 향신료와 재료를 섞어 사용하면서 쓴맛을 중화시키는 방법을 터득하였기에 쓴맛에 덜 거부감을 갖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양인이 좋아하는 감칠맛(Umami)이 있다. 1908년도 도쿄대 교수인 Kikunae Ikeda가 처음으로 감칠맛(Umam, 일본어로 맛있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제기하였다. 이후 제자들이 다양한 실험을 통해 감칠맛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이후 감칠맛은 다섯 번째 미각으로 자리 잡았고 기존에 있던 달고, 짜고, 시고, 쓴맛으로 정의할 수 없었던 동양음식의 특이한 맛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었다. 감칠맛은 다시마를 끓인 육수에서 나오는 특정 아미노산인 ‘Glutamate’에 의해서 느낄 수 있다. 다시마로 국물을 내어 시원~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도 이 Glutamate 아미노산에 의해서이다. Glutamate를 갖고 있는 음식은 버섯, 미역, 생선, 발효음식(김치, 된장, 간장, 치즈), 숙성된 고기(육포, 삭힌 홍어도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등과 화학조미료 MSG가 있다. 한국사람 그리고 동양인이 된장찌개, 김치, 김을 좋아하는 이유도 다 음식이 갖고 있는 Glutamate성분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한 가지 맛만 제공하지 않는다. 과일은 신맛과 단맛을 조화롭게 갖고 있다. 신맛이 강할 땐 과일이 덜 익었음을, 그리고 단맛이 강할 땐 과일이 잘 익었음을 알 수 있다. 커피와 카카오는 그냥 섭취하면 쓴맛이 아주 강하다. 하지만 커피에 물을 섞고 달달한 설탕을 타거나 카카오에 설탕과 크림을 섞으면 쓴맛이 살짝 들어간 맛있는 음료나 디저트가 된다. 또한 우리가 해먹는 요리는 단맛, 짠맛, 감칠맛, 특정 경우엔 쓴맛 신맛을 골고루 갖고 있다. 오미자는 다섯 가지 맛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섯 가지 맛을 느끼는 미각세포는 따로 존재하지만 다양한 맛을 갖고 있는 음식을 먹게 되면 미각세포들이 각각 활성화되어 서로 교류한다. 이런 교류를 통해 우리는 다섯 가지 외에도 더 많은 스펙트럼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색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사람처럼, 맛을 강렬하게 느끼는 수퍼미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존재할까?

▲ Supertaster 혀유두

답은 예스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맛을 더 강하게 느끼는 사람을 ‘Supertaster’라고 한다. 이 사람들은 혀에 있는 맛봉오리가 일반인들에 비해 많고 따라서 미각세포를 더 많이 갖고 있다. 이들은 쓴맛, 단맛, 기름진 맛, 짠맛을 더 강하게 느낀다. Supertaster는 여성에게 더 많이 발생한다. 여성의 약 15%가 Supertaster라고 한다. 이 여성들은 자극적인 맛을 더 쉽게 느끼기 때문에 달고 짜고, 쓴맛이 나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성 Supertaster들은 쓴맛이 나는 시금치, 브로콜리 등 야채를 덜 먹고 초콜릿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동물은 맛을 어떻게 느낄까?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은 고양이가 달달한 음식에 관심이 없음을 알 것이다. 고양이와 같은 육식성 동물 즉 호랑이, 사자, 하이에나 등은 단맛을 느낄 수 있는 미각세포가 존재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미각세포 수가 사람에 비해 적다. 사람은 미각세포 8,000~10,000개를 갖고 있다면 고양이는 500개만 갖고 있다. 따라서 고양이는 사람들이 먹는 달달하고 짠 음식에 관심이 없고, 단백질 함량이 많은 사료만을 즐겨먹는다.

채식성인 소는 사람보다 미각세포가 더 많다. 총 25,000개를 갖고 있다. 소가 미각세포를 많이 갖고 있는 이유는 독성이 있거나 영양가가 낮은 풀들을 가려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인간은 다섯 가지 맛을 인지함으로서 몸의 건강과 항상성을 유지해왔다. 창의적으로 다양한 음식을 조리하였고 이에 따라 쓴맛을 감지하는 기능은 자연스레 퇴화하게 되었다. 이제는 음식이 풍족하고 다양한 음식을 언제든지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풍족함과 음식을 먹으면 느끼는 만족감 때문에 음식섭취가 과도하고 빈번하게 일어나 각종 질환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인간에게 진화론적으로 역설적 결과를 초래하게끔 한다.

인간이 진화를 멈추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앞으로 천년 뒤 미각이 어떻게 바뀌어있을지 상상해보자. 인간은 항상 몸에 이로운 쪽으로 진화를 해왔다. 요새 건강을 생각해서 웰빙식단을 선호하는 경향이 많다. 이는 단맛, 짠맛, 기름진 맛을 덜 좋아하는 쪽으로 인간을 진화하게 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미래인간의 미각은 지금보다 퇴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이지산 주주통신원  elmo_party@hot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