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저 주어지는 개혁은 없다

18세기부터 사회개혁이 시작된 나라 덴마크

어떻게 개혁을 완성했을까? 

A Royal Affair는 2012년 Nikolaj Arcel(니콜라이 아르셀)이 감독한 역사 드라마다. Mads Mikkelsen(매즈 미켈슨, 요한 역), Alicia Vikander(앨리시아 비칸데르, 캐롤라인 왕비 역), 그리고 Mikkel Følsgaard(미켈 폴스라르, 크리스티안 7세 역)이 출연했다. 국내는 2012년 12월 27일 개봉했다.

2012년 제62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제70회 골든글로브 최우수외국어영화상 후보와 제85회 아카데미 최우수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오를 정도로 작품의 완성도를 인정받은 영화다.

1999년 Per Olov Enquist가 쓴 소설 <The Visit of the Royal Physician>이 원작이다. 이는 17세기 절대 왕정이 지배하던 덴마크 왕실에서 ‘Johann Friedrich Struensee(이후 요한)’ 주변에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소설이다.

영화는 덴마크의 왕비였던 Caroline Matilda(캐롤라인)이 자신의 딸에게 편지를 쓰는 것에서 시작한다.

1766년, 영국의 캐롤라인 공주는 덴마크로 시집을 온다. 남편은 크리스티안 7세로 정략결혼이다. 문학과 교육과 예술에 관심이 많던 공주는 덴마크에서는 자신이 보던 책들이 금지되었다는 것을 알고 크게 실망한다. 설상가상으로 남편 크리스티안 7세는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이었다. 그녀는 바로 아들을 낳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왕은 감정 기복이 심하고, 자신감이 없었고, 술과 여자에 빠져 살아 모든 권한을 의회에게 내준 허울 뿐인 왕이었다.

이런 왕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독일인 의사 요한이 고용된다. 그는 계몽주의자였으며 루쏘의 저서에 크게 영향을 받은 개혁적인 사람이었다. 크리스티안 7세는 자신을 이해하고 포용해주는 요한을 크게 신뢰하게 된다. 요한의 영향으로 크리스티안 7세는 사제와 귀족과 같은 기득권층의 노예수준으로 살고 있는 백성의 고통에 눈을 뜨게 된다. 요한의 도움으로 그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법안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런 자유주의적 개혁 사상에 왕비도 공감을 하게 되고 둘은 왕을 도와 개혁법안에 속도를 낸다. 그 과정에서 외로운 왕비와 요한은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개혁법들에 의해 자신의 재산과 권리가 침해당한다고 생각하는 기득권층의 견제와 반발은 심해지고 결국 그들은 왕비와 요한의 비밀을 알아낸다. 요한은 재판에 회부되어 수많은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단두대에 올라 목이 잘려 죽는다. 그가 만들었던 ‘고문금지법’은 폐기되고, 그는 고문을 받아 독일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참형을 당한 것이다. 요한과 사이에서 딸을 낳은 왕비도 폐위되어 독일 첼레로 유배를 간다. 두 사람이 떠난 후 크리스티안 7세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꼭두각시  왕이 되어 요한이 만들었던 개혁법들은 대부분 폐기된다.

폐위된 왕비는 독일 유배생활 중 성홍열을 앓는다. 그녀는 죽기 전에 딸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편지를 쓴다. 자신과 요한이 함께 꿈꾸었던 사회와 둘의 사랑이 담긴 편지... 수년 후 이를 본 딸은 오빠인 왕세자에게 편지를 전해주고 왕세자는 어머니가 갈망하던 개혁의 칼을 빼어들게 된다. 아버지 크리스티안 7세를 설득하여 왕위에 오른 왕세자, 프레드릭 6세는 요한이 만들었던 개혁법을 50년의 통치기간동안 하나씩 차근차근 모두 부활시킨다.

이 영화를 요한과 캐롤라인 왕비의 사랑에 촛점을 맞춘 로맨스 영화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유럽식 사회주의 국가 중 행복도 1위인 덴마크가 어떻게 개혁을 시작했고, 좌절을 겪었다가, 다시 어떻게 개혁을 완성했는지 그 과정에 더 관심이 가는 영화였다.

요한이 크리스티안 7세와 함께 잠시나마 만들었던 사회는 그 당시 유럽에서 가장 앞서 가는 사회였다. 다른 유럽 국가들이 부러워할 만큼 백성들은 배려 받았고 국가 살림은 윤택해졌다. 하지만 개혁법들이 폐기되고 나서 덴마크는 즉시 퇴행의 길을 걸어 유럽에서 후진국으로 떨어지게 된다. 다시 수십 년 지난 후 요한의 개혁법은 부활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더 개혁적인 법들이 만들어져서 덴마크는 유럽에서 국민이 가장 행복한 국가가 되었다.

영화에서 요한이 단두대에 오르는 날, 많은 백성들이 이를 보기 위해 모여든다. 그들은 독일인 요한이 덴마크 왕실을 모욕했다고 생각한다. 곧 독일이 덴마크를 모욕한 것으로 여긴다. 요한을 참형에 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그 죽음을 구경하고 담담히 돌아선다. 귀족이나 사제는 빼앗긴 이익을 되찾기 위해 요한을 제거했다지만 빼앗긴 것이 없고 오히려 더 나아진 삶을 갖게 되었던 백성들은 왜 그랬을까? 무지한 그들은 지속적인 선동으로 자신의 삶보다 왕실의 명예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요한의 죽음이 결국은 자신의 목을 치러 온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도 그렇지 않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차이를 줄이기 위해 정규직을 비정규직화하자고 한다. 임금피크제로 청년실업을 해결하자고 한다. 해고를 보다 더 자유롭게 해서 회사를 살리고 경제를 살리자고 한다. 당장 내 목이 아니더라도 결국 없는 이들의 목을 좀 더 쉽게 치러오는 법안들이다. 그런데 없는 사람들은 마치 이런 법들이 자신의 돈주머니를 개선해준다고 생각하고, 이런 살인적 법안을 내는 정부를 더 지지하고 있으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18세기 덴마크 국민과 같이... 지속적인 억지 우김과 선동이 그래서 무서운 거다.

우리도 잠시나마 요한시대처럼 자유와 권리를 누렸던 적이 있었다. 국민들이 국가 걱정을 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단란한 삶에 충실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정의고 상식이고 팽개치고 자기 재산 불려준다는 지도자에게 속아 벌써 수년째 퇴행의 길을 가고 있다. 개혁의 칼은 꺾이고 백성의 삶은 바닥으로 떨어져 가고 있다. 18세기 덴마크와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서 국민이 깨어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도자의 역할 또한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번 투표에 현명하고 양심적인 지도자들이 뽑혀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김미경 부에디터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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