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이가 내 아들 맞나?

유치원 참관수업인 그 날은, 6세 반, 7세 반 학부모들이 입학식 후에 처음으로 유치원을 공식 방문하는 그야말로 떠들썩한 날이었다. 학부모들도 커가는 자식에 대한 기대감으로 유치원을 방문했고, 선생님도 이런저런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준비를 많이 하고 학부모들을 기다렸다. 나도 하루 휴가를 내고 유치원에 갔다.

6세 반인 아들반 참관수업은 선생님께서 동화를 들려주시고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과 간단한 노래로 하는 영어회화 수업 두 가지였다. 먼저 동화이야기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이 의자에 앉으니 아이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선생님 앞에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아들도 당연히 앉으리라 생각했는데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아들 혼자만 선생님 앞에 가지 않았던 것이다. 아들은 ‘나 잡아라.’ 하는 것처럼 싱글싱글 웃으며 소리도 작게 질러가면서 살금살금 돌아다녔다. 선생님과 학부모, 모든 아이들의 눈이 아들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아들이 선생님 앞에 오기를 잠시 기다렸다. 아들은 오지 않았다. 선생님이 좀 더 기다리다가 언성을 높여 몇 번 아들을 부르자 아들은 오히려 더 산만하게 뛰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 교실의 한쪽 벽면에는 꽤 넓은 플레이하우스가 있었다. 약간 비스듬한 플라스틱 지붕아래 집처럼 꾸며놓은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할 놀이 공간이었다. 아들은 좀 위험해 보이는 이 지붕 위에까지 올라가 원숭이 같이 잽싸게 쿵쾅대며 돌아다녔다. 아무도 잡으러 오는 사람이 없는데도 마치 도망다니듯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정말 놀랐다. 언제나 느리고 겁이 많아 위에서 떨어지는 샤워기 물도 무서워하는 아들이 저 위험한 지붕에 올라가 돌아다니다니, 내 눈이 의심스러웠다. ‘저 아이가 내 아들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선생님은 아들을 포기하고 수업을 진행했다. 선생님의 얼굴에서 ‘수업 망쳤구나.’ 하는 당혹감과 짜증이 보였다. 다른 엄마들도 마찬가지였다. ‘뭐 저런 아이가 다 있나?’ 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수업을 방해하는 아들을 힐끗 힐끗 보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수업을 지켜봐야할지 아들에게 가서 행동을 제지해야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저 아이가 진짜 내 아들이라고? 상황을 피하고 싶었지만 누군가 아들을 진정시켜야 했다. 아들에게 다가가서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선생님 앞에 가서 앉으라고 했다. 평소에 내 말을 잘 들어주던 아들이라 따라 주리라 생각했는데 아들은 내 말을 전혀 듣지 못한 척 했다. 이상하게도 나와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나는 전혀 상상치 못했던 상황에 놀라서 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젠 아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학부모들의 눈이 너무도 따가웠다. 말 안 듣는 아들을 억지로 끌어내릴 수도 없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어디 앉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그 수업이 다 지나도록 아들은 선생님 근처에 가지 않았다.

동화수업시간이 끝나고 바로 영어수업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아들이 잽싸게 지붕에서 내려오더니 재미있다는 듯 영어선생님 바로 앞에 가서 딱 앉았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들은 특이한 방식으로 수업을 또 방해했다. 그 수업은 영어로 “헬로~~ 헬로~~ 헬로~~ 헬로~~ 선생님 안녕~~ 친구들 안녕~~”이라고 하면서 시작했다. 선생님께서 손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똑같이 손동작을 해가며 헬로 노래를 불렀다. 아들도 손을 흔들며 신나게 그것도 크게 노래를 부르긴 했는데 가사를 바꿔서 불렀다. ‘안헬로~~ 안헬로~~ 안헬로~~ 안헬로~~’ 라고 했다. 선생님도 처음 있는 일인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다른 아이 한 명이 아들에게 “야~~ 그거 아니잖아?”라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계속 “안헬로~~”를 불러댔다. 그러고는 무척 웃긴다는 듯이 혼자 바닥에 엎어지면서 깔깔깔 웃었다. 영어수업도 아들 때문에 망쳐 버렸다.

나는 ‘쟤가 왜 평소에 안하던 저런 행동을 할까?’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너무나 창피해서 어디 숨고만 싶었다. 나는 한동안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방문해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아동발달', '바람직한 양육태도' 등에 관한 교육도 하고 학부모 상담도 하는 일을 했다. 그 때 선생님들이 ‘요주의 아동’의 학부모 개별상담을 마지막 순서로 준비해 놓곤 했다. ‘요주의 아동’은 주로 수업을 방해하거나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날 보니 바로 내 아들이 그 ‘요주의 아동’이 아닌가?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이상했다. 옛 속담에 ‘집에서 새는 바가지 나가서도 샌다.’는 말이 있는데, 아들은 집에서나 외출해서나 단 한 번도 그런 튀는 행동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얘가 뭐에 씌웠나?’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어머님들 눈치를 보면서 수업이 빨리 끝나기만 기다렸다. 수업 후 개별면담시간이 돌아왔다. 지독히도 눈치가 없는 아들은 엄마가 와서 신이 났는지 싱글벙글거리며 내 주변을 돌아다니며 놀았다. 내 차례가 왔는데 선생님은 아들에 대해서는 드리고 싶은 말이 많다고 하면서 제일 마지막 순서로 기다려줄 수 있냐고 했다. 뭔가 불길함 속에 실제로 속이 덜덜 떨리면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상담을 했는데 엄청난 말을 들었다.

선생님은 아들이 ‘자폐아’ 같다며 소아정신과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무척 놀랐지만 그래도 아들에 대해 이해한다고 자부했기에, 선생님이 그렇게 보는 이유에 대하여 물었다. 선생님은 두 가지 이유를 말씀했다.

첫째로 아이들과의 교류가 전혀 없다고 했다. 아이들에 대하여 관심이 없고, 심지어는 아이들을 없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다. 놀 때도 혼자 노는데 어떤 때는 누구와 이야기 하는지 중얼중얼 웃기도 해가면서 혼자 세계에 빠져서 논다. 다른 아이들 보기에 아주 재미나게 노는 것처럼 보여 함께 놀자고 곁으로 다가가거나 끼어들려고 하면 자신이 놀던 장난감을 그대로 두고 다른 장소로 가서 또 혼자 논다. 심지어는 자신이 애써서 만들어 놓은 블록도 그냥 두고 간다고 했다.

둘째로 수업에 거의 집중하지 않는다고 했다. 선생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아 지시를 따르지 못하고 아이들과 떨어진 구석에 앉아서 멍하니 있거나 다른 놀이를 하고 있다. 대화를 시도해보면 대답도 안하고 눈만 멀뚱멀뚱 뜨고 본다. 상황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고 언어발달도 늦은 것 같다. 6세반 수업을 따라갈 준비학습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이런 문제로 인해 수업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혼자 놀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나는 머리를 뭣으로 ‘쾅’하고 맞은 것 같았다. 선생님과 아들문제로 찬찬히 상담을 하기보다는 아들이 ‘자폐아’나 ‘발달장애아’ 비슷한 아이가 아님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그래서 내 직업과 전공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아이의 독특한 다름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드렸다. 미리미리 진작에 설명해주었으면 좋았으련만... 또 자폐아에게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애착문제에서 아들은 낯선 사람과 친해지려면 시간은 좀 걸리지만, 익숙해지면 애정적 교류는 잘 이루어지고 있다며  '자폐아’는 지나친 단어 같다고 했다. 선생님은 당황해하면서 "자폐증후군이 있는 것 같다."로 정정했지만, 소아정신과에 꼭 한번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수업방해 행동에 대하여 여쭤보았다. 지난 2년 동안 어떤 선생님에게서도 아들에게 그런 행동이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아들이 수업에 집중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조용히 있었고, 적극적으로 수업을 방해한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또 영어수업도 그렇게 해서 놀랐다고 하며 왜 갑자기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부모가 오면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이 간혹 있는데 그런 경우 같다고 했다. 그것보다는 사회성 발달과 지적발달 문제가 더 중요한 것 같다고 계속 강조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들이 지금 유치원 교육과정과 잘 맞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상담이 끝나고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가는데,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멍한 상태가 되어 걸었다. 딸이 다니는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는 길은 10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굉장히 멀게 느껴졌다. 다리가 헛걸음을 걷는 것 같았다. 운동장이 그렇게 크고 그 끝이 아마득해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반면 아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는 아이 같았다. 그저 엄마를 만나 일찍 집에 오니 좋기만 한 듯 했다. 나는 선생님의 '사회성 부족과 지적발달 부족' 말에도 놀랐지만 아이의 수업방해 행동에 더 놀랐던 것 같다. 아마도 남에게 피해주는 것을 유난히 싫어하는 나의 성격 때문일 수도 있고, 엄마 체면이 말이 아니게 구겨져서 창피함이 우선해서 그럴 수도 있지 않았나 싶다.

너무 피곤했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일단 점심을 먹고 한숨 자기로 했다. 아들에게는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우리 둘은 낮잠을 실컷 자고 일어났다.

<다음에 계속>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김미경 부에디터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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