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삭막한 세상에서 벗어나 웃어보기

어느 엄마 생신날, 식구들이 모여 밥 먹고 이야기하다 보니 집에 늦게 왔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은 미숫가루를 타 달라 해서 먹고 갔다. 남편은 피곤하거나 과식한 다음 날이면 우유에 미숫가루와 꿀을 타서 시원하게 먹고 간다. 그런데 남편을 보내고 났는데 뭔가 이상했다. 아... 꿀을 넣지 않은 거다. 남편은 왜 아무 말 없이 먹고 갔을까? 맛을 몰라서일까? 주면 주는대로 아무 생각 없이 먹었을까?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엄마 생신잔치에 가서 형제들과 모여 놀다 보니 예상 보다 너무 늦게 끝났다. 집에 거의 1시가 다 되어 돌아왔다. 월요일 아침 반찬거리 준비를 조금 해놓아야 하는데 피곤해서 하기 싫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물었다.

'내일, 밥 안 먹고 가도 돼?'

그 말은 밥 대신 아이들처럼 빵을 먹고 가도 되냐고 한 말이었다. 남편은 'OK'라고 답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니 마음이 바뀌었다. '반찬이 시원찮아도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밥을 차려줘야지' 마음먹고는 서둘러 밥을 했다.

남편은 샤워 중이고, 밥에 뜸이 살짝 덜 들어 퍼 놓지 않고 반찬만 차려놓았는데 그만 전날 과식을 해서 그런지 배가 사르륵사르륵 아팠다. 금방 나와야지 하고는 급하게 화장실에 갔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밖에서 딸그락딸그락 소리가 났다. 아~~~ 남편이 스스로 밥을 퍼서 먹고 있구나... 생각했다. 조금 있다 나가보니, 남편이 밥은 안 먹고 반찬만 먹고 있었다.

너무 기가 막혀서 좀 짜증난 목소리로...

"아니.. 밥은 왜 안 먹고 반찬만 먹고 있어~~ 자기가 밥 좀 퍼서 먹으면 어때서 그래~~ 내가 꼭 퍼서 받쳐 줘야 되는 거야? 어이구~~ 나는 화장실도 못가~~"라고 했다.

그랬더니 남편 왈

"어~~ 어젯밤에 당신이 '밥 안 먹고 가도 돼?'라고 했잖아. 밥이 없기에 밥은 안 주고 반찬만 주는 줄 알았어"

'어머~~ 그 말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내가 잘못 말한 건가?’ 잠깐 헷갈려서 “아니 그 말은 빵을 먹고 가도 되냐는 말이었는데... “ 하면서 오히려 내가 미안해했다.

처음엔 얼떨떨해서 웃음도 안 나왔는데 남편 출근 후 하루 종일 두고두고 생각하며 웃고 또 웃었다. 그것이 유머였다면 얼마나 재미있는 남편과 사는 것인가? 남편은 ‘밥 안 먹고 가도 돼?’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아니... 그런데... 이 세상에 밥은 안 주고 반찬만 차려주는 그런 아내가 어디 있나?

이런 남편 행동을 말하면 어떤 이는 아내에 대한 무조건적인 평소 믿음이 쌓이고 쌓여 그런 이상해 보이는 행동을 하는 거란다. 그러니까 아내 말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보는 거. 

어떤 이는 남자와 여자는 언어를 받아들이는 방법에 큰 차이가 있다며 자기 경험을 말해준다. 아내가 "수건 여기다 놓으면 어떡해? 매일 그러더라!" 하면, 남편은 억울해서 "매일은 아니었잖아? 어제는 안 그랬는데"  아내는 "정확히 매일이란 얘기 아닌 거 진짜 모르는 거야? 자주 그런단 말이잖아. 응?" 남편은 그제야 ”매일이 매일이란 뚯이 아니구나“라고 대꾸한다. 그렇게 상대방의 언어를 이해해가는 게 결혼의 재미란다.

남편도 그런다. 내가 "허구한 날 양말을 아무 데나 벗어놔. 내가 꼭 집어서 가져다 놔야 돼?" 그러면 논점은 '양말'이 아니라 '허구한 날'로 간다. "왜 허구한 날이야. 어쩌다 그런 건대... " 이러면서 구시렁댄다.

남녀의 언어 이해의 차이이든 남편의 독특한 성향이든 가끔 엉뚱한 행동을 하는 남편에게 내가 묻는다. "왜 그렇게 하는 거야" 남편은 "응... 다른 건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래"라고 당연한 듯 담담하게 말한다. 나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는 아니고 그냥 뭔가 한 가지에 몰두하면 다른 것에는 관심이 전혀 기울여지지 않는다는 말이겠지. 아마 연구소의 연구원이 아니라  회사원이었으면 회사에서  단박에 쫒겨났을 거다. 

편집 : 김미경 편집장

김미경 편집장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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