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역사와 민족의 영웅 정청꽁(鄭成功1624~1662, 정성공)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참 아쉬운 인물이 한 분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 완도에 청해진을 구축하고 바다를 지배했던 해상왕 장보고!

어린 시절 당나라에 가서 출중한 무예 실력으로 지방군 고위직에 올랐고 해상무역에 관여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을 뿐만 아니라 해적들을 소탕하여 명망을 얻었지요. 우리 신라인들이 노비로 사고 팔리는 걸 보고 신라로 귀국하여 청해진을 설치, 해적들을 소탕하고 신라와 당 일본의 무역을 관장하고 해상을 지배합니다.

그러다 중앙의 권력투쟁에 개입하고, 자기 딸을 왕비로 들여보내려다 귀족들과 갈등을 빚지요. 결국 흑심을 품고 접근한 염장에게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면서 해상으로 뻗어나갈 절호의 기회도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장보고가 바다를 호령하다가 사라진 8백 년 후, 명말 청초에 새로운 해상왕 정청꽁(鄭成功, 정성공)이 등장하여 대만에 왕국을 세우고 민족의 영웅이 됩니다.

그의 아버지 정즈롱(鄭芝龍,정지용)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숙부의 상선을 타며 무역에 종사합니다. 점점 세력을 키운 후 해적들을 소탕하고 최강의 군벌로 성장합니다. 좀 더 직설적인 표현을 하자면 해적 두목이 된 거지요.

당시 일본 열도와 대만은 해적들의 소굴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사무라이의 딸을 두 번째 아내로 맞이하여 낳은 아이가 정청꽁입니다. 해적 두목이 워낙 막강한 힘을 갖게 되자 명나라 정부에서는 푸젠성 도독에 임명합니다. 그 직후 일본에 있는 아내와 아들을 불렀지만 일본 관리의 불허로 아들 정청꽁만 7살에 푸젠성으로 들어옵니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쳐들어오자, 명 황제는 푸젠성으로 도망 옵니다. 정씨 일가는 황제를 도와 청과 대치를 하였는데, 아버지 정즈롱은 시세를 읽고 청과 내통하여 군을 철수시키고 북경으로 갔습니다. 아들 정청꽁은 명분과 의리를 지켜 반청복명을 외치며 끝까지 청과 전투를 벌입니다. 육지에서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지자, 당시 네덜란드가 지배하고 있던 대만으로 이주를 결심합니다.

대만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을 한 건 스페인이 북쪽을 지배하고 네덜란드가 남쪽, 즉 지금의 타이난(臺南, 대남)에 동인도 회사를 세우고 중국인들을 이주시켜 농사를 짓게 하고 이를 수탈해 가면서입니다.

1624년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되었고, 동인도 회사가 대만 수탈을 본격화하면서 처음으로 세운 요새가 타이난(臺南, 대남)의 안핑꾸빠오(安平古堡, 안평고보)로서 10여 년에 걸쳐 완성됩니다.

▲ 안핑꾸빠오(安平古堡, 안평고보): 1624~1634년까지 10년에 걸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의해서 건립된, 가장 오래된 요새. 1930년대 일본에 의해 중건된 모습임.
▲ 안핑꾸빠오(安平古堡, 안평고보): 1624~1634년까지 10년에 걸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의해서 건립된, 가장 오래된 요새. 1930년대 일본에 의해 중건된 모습임.
▲ 안핑꾸빠오(安平古堡, 안평고보)최초 건립 당시의 유적임: 당시 사탕수수즙과 찹쌀, 그리고 현재의 시멘트와 유사한 광물질을 사용하여 벽돌을 쌓았다고 함. 400여 년 전 그대로 보존.
▲ 안핑꾸빠오(安平古堡, 안평고보)최초 건립 당시의 유적임: 당시 사탕수수즙과 찹쌀, 그리고 현재의 시멘트와 유사한 광물질을 사용하여 벽돌을 쌓았다고 함. 400여 년 전 그대로 보존.

1661년 3월 정청꽁은 350척의 군함에 2만 5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대만해협을 건너 해전을 승리로 장식한 후 곧바로 프로방시아(赤坎樓, 적감루)요새를 공격하여 총독부의 지원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탈환합니다. 곧이어 네덜란드 총독과 1천 6백여 명의 네덜란드 병력이 주둔하고 있던 안핑꾸빠오를 에워싸고 지구전에 돌입합니다. 물과 보급로를 차단하고 8개월간에 걸친 맹공으로 네덜란드 병력 절반 이상이 전사하고 식량도 바닥이 나자 1662년 2월 결국 항복하고 물러갑니다.

▲ 츠칸러우(赤坎樓, 적감루): 1653년 네덜란드인에 의해 세워진 프로방시아 요새. 정청꽁이 점령하면서 일본의 총독부가 세워지기까지 대만의 최고 행정기관. 우측 동상은 코이에트 네덜란드 총독이 정청꽁에게 항복하는 장면.
▲ 왼쪽 사진 : 당시 네덜란드 병력과 무기. 압도적인 무장으로 1,600여 명의 소수 병력으로 항복을 거부하고 싸움.오른쪽 사진 : 정청꽁 병력과 무기. 8개월에 걸친 지구전으로 네덜란드 군의 물과 보급을 끊고 승리함
▲ 왼쪽 사진 : 당시 네덜란드 병력과 무기. 압도적인 무장으로 1,600여 명의 소수 병력으로 항복을 거부하고 싸움.오른쪽 사진 : 정청꽁 병력과 무기. 8개월에 걸친 지구전으로 네덜란드 군의 물과 보급을 끊고 승리함

청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을 하던 정청꽁은 아쉽게도 대만을 평정한 후 1년이 못 되어 39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고 그 아들이 뒤를 이었습니다. 아들 정경이 뒤를 이어 1681년까지 19년 동안 통치하다 죽고, 정경의 아들 정극상이 3대째 정권을 승계하지만, 내분에 시달리다 3년 만인 1683년 청군이 출병하자 투항하고 맙니다. 권력이 3대를 넘기기 참 힘드나 봅니다.

바로 이 역사적 사실로 인해서 중국은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보고, 대만은 청나라가 반청운동을 하는 정씨 일가에 대한 보복으로 침공한 것이지, 그 이후 통치하거나 군을 주둔시키지 않았기에 대만은 중국의 영토가 아니라고 맞서고 있지요.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에 대만이 할양되어 1945년 일본패망까지 50년 동안 식민 통치를 받는 비운을 겪게 됩니다.

1949년 장개석의 국민당정부는 모택동의 공산당에 패하고 대만으로 옮긴 후, 본토회복이란 구호를 내세우고 대만을 통치합니다. 장개석의 뒤를 이은 아들 장경국은 아버지가 부패로 인해 중국 본토를 모택동의 공산당에 빼앗기는 장면을 똑똑히 목격하였기에 부정부패 척결과 청빈으로 일관하여 작은 섬나라 대만을 아시아의 용으로 발전시킵니다. 또한 지속된 계엄령을 해제하고 세습을 반대하였으며, 대만 본토인을 많이 기용하여 장차 대만 출신 리덩후이(李登輝, 이등휘)가 자신의 뒤를 잇는 발판을 만듭니다.

1998년 대한민국에서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고 얼마 후인 2000년에 대만도 최초로 선거에 의해 국민당 정권에서 민주진보당 천수이볜(陳水扁, 진수편)으로 교체가 됩니다. 그 뒤로 다시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마영구)가 정권을 잡았고, 이번에는 또다시 민주진보당의 차이잉원(蔡英文, 채영문)이 총통으로 선출이 되었으며, 의회까지 장악하였습니다. 이달 20일에 정식으로 총통취임을 앞두고 있지요.  

덧붙이는 글 : 얼마 전에 티비 뉴스에서 일제히 ‘안핑꾸빠오 400년만에 처음으로 씻다’라며 요란하게 보도를 하더군요. 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따뜻한 물을 고압으로 쏴서 씻었다고요. 가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일제강점기에 중건한 붉은 벽을 씻었고, 400년 된 유적은 그대로 보존했다고 합니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동호 주주통신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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