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다닐 적에 이소룡 영화를 보고나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쁜 편 부하도 싸움 참 잘한다. 좋은 편 부하는 싸움 정말 잘한다. 나쁜 편 두목도 싸움 억수로 잘한다. 주인공은 싸움 X나게 잘한다. 그 시절 중국영화 나쁜 편 부하정도만 싸움 잘하면 세상 무서울 거 없을 것 같았다. 오늘 산을 오르며 그 때 생각이 났다. 참 덥다. 정말 덥다. 억수로 덥다. X나게 덥다. 더 센 걸 표현하는 부사가 생각이 안 난다. 정말 더운 날씨다. 이런 땐 능선으로 가면 죽음이다. 그늘진 계곡을 걷다가 계곡을 건너며 세수 한 번씩 하면서 올라야 한다.

▲ 암반계곡개천

땀을 닦으며 오르는 데 도토리가 달린 참나무 가지가 곳곳에 떨어져 있다. 도토리 한두 개 잎 서너 장 달린 신갈나무 가지들이다. 도토리거위벌레 짓이다. 도토리에 알을 낳고는 가지를 잘라 땅에 떨어트려 놓는 것이다.

▲ 땅에 떨어진 신갈나무 가지

잘려진 단면을 보면 날카로운 면도날로 자른 듯 미끈하다.

▲ 잘려진 단면이 미끈하다

나도 몇 년 전 우종영님의 ‘게으른 산행’을 읽기 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사실이다. 그 책에 ‘도토리거위벌레의 지혜’란 내용이 있다.

“매표소 오르는 길에는 지난 밤사이 떨어진 듯 싱싱한 참나무잎들이 즐비하다. 사람들이 왜 저렇게 싱싱한 잎들이 떨어졌을까 궁금해 하지만 그냥 지나치거나 도토리묵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줍기에 바쁘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어떤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잘린 가지를 살펴보면 누군가 예리한 도구로 잘랐다는 점. 둘째, 가지 끝에는 튼실한 도토리가 달려 있다는 점. 셋째, 그 도토리를 잘 살펴보면 작은 구멍 한 개가 보인다는 점이다. 누가 이 많은 나뭇가지를 다 잘랐을까? 지난 비바람에 열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속절없이 떨어졌나? 그때 떨어지던 충격으로 구멍이 난 것일까?

이 정도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그래도 숲 속을 산책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범인은 도토리거위벌레다. 그 조그만 벌레가 참나무 열매에 알을 낳고 도토리가 달린 가지를 주둥이로 잘라 땅에 떨어뜨린 것이다. 그러면 알을 낳으면 낳지 왜 가지를 잘라 땅에 떨어뜨렸을까?

도토리 속에 들어 있는 알은 5~8일이 지나면 유충으로 부화해 도토리 과육을 먹고 생활한다. 그리고 20여 일 후에 탈출해서, 땅속으로 들어가 흙집을 짓고 겨울을 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도토리를 먹고 비대해진 유충이 탈출하는 과정이다. 나무 위에 높이 달려 있으면 날개도 없는 애벌레가 땅에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온전할 수가 없다. 그래서 도토리거위벌레는 알을 낳고는 가지를 잘라 땅에 떨어뜨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 도토리거위벌레 (사진출처 : http://www.ibric.org/)

그렇다면 왜 참나무 중에 신갈나무만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었을까? 주위에는 졸참, 상수리, 굴참 같은 도토리 나무들이 즐비한데. 답은 간단하다. 이 시기에 신갈나무의 열매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도토리거위벌레는 일 년에 한 번 발생하며, 땅속에서 월동한 유충은 5월 하순경 번데기가 되었다가 7~8월경 부화하여 성충이 된다. 최성기는 7월 하순에서 8월 상순이며, 도토리에 구멍을 뚫고 산란관을 꽂은 후 오후 5시경에 알을 낳고 긴 주둥이로 가지를 자른다.“

▲ 땅에 떨어진 신갈나무 가지들

이제 나도 게으르게 산을 오르다 보니 별게 다 보인다. 호기심에 도토리를 잘라 보았더니 조그마한 알이 보였다.

▲ 도토리거위벌레 알

무릇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 무릇

일본목련은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 일본목련 열매

계곡너머 바위틈서 핀 도라지꽃이 날 부른다.

▲ 도라지

꽃며느리밥풀은 날이 뜨거워질수록 더 아름답게 피고 있다.

▲ 꽃며느리밥풀

처녀치마 잎 아래서 노란 버섯이 하나 올라오고 있다.

▲ 처녀치마와 버섯

카톡 이모티콘을 닮은 버섯도 만났다.

▲ 카톡 이모티콘 닮은 버섯

지고 있는 노란 원추리는 뭔가 아쉬움이 가득한 듯하다.

▲ 원추리

계곡을 따라 오르다 커피 한잔을 하며 쉰다.

▲ 커피 한잔

물이 흐르는 계곡가는 역시나 시원하다.

▲ 암반계곡개천

암반계곡개천 상류에서 발 담그고 한참을 쉬다 내려왔다.

▲ 탁족

계곡 곳곳에 텐트나 그늘막을 치고 쉬는 피서객이 많다.

▲ 피서객

뜨거운 햇살아래 호랑나비 애벌레는 어딜 가는지 느릿느릿 태평이다.

▲ 호랑나비 애벌레

나도 그렇게 산을 내려왔는데 내려오니 또 덥다.

 

박효삼 부에디터  psalm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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