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모기 없는 세상은 초콜릿 없는 세상

얼마 안 있어 녀석들로부터 긴급 협상제의가 들어왔다. 녀석들이 급하긴 급했나보다. 나의 유인술로 인해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협상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일단 녀석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

녀석들의 항변은 다음과 같다. 자신들이 사람의 피를 원하는 것은 맞지만 피가 맛있다거나 피가 좋아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들 뱃속에 있는 새끼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성애의 발로이니 이해해달라는 것이다. 모성애라는 말을 들으니 잠시 녀석들에 대한 적개심이 흐려지는 것 같기도 하다. 자기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새끼들을 위해서라니 잠시 할 말을 잊는다. 녀석들 말대로라면 인간은 바로 죽음을 불사하고 모성애를 발휘하는 모기를 죽이느라 별의별 수단을 다 쓰고 있는 비정한 동물이 되는 셈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지구 생태계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하는지 아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인간들은 지구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지만 자신들은 지구 생태계에 광범위한 기여를 해왔다는 것이며, 그 기여도로 말할 것같 으면 꿀벌과 비견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벌로부터는 꿀을 채취하기 위해 그런지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에 상당하는 기여를 하는 자기 종족에 대하여는 파리, 바퀴벌레와 더불어 인류의 3대 해충으로 분류한 것은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녀석들의 주장은 학자들이 밝힌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모기는 꽃가루 수분역할을 하기 때문에 생태계에서 꼭 필요한 생물체로, 모기가 사라지면 수천 종, 수만 그루의 식물 역시 멸종될 수 있다. 모기가 인간에 위험한 질병을 옮기기도 하지만 생태계에서는 카카오와 같은 열대작물의 수분을 옮기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모기가 사라진다는 것은 결국 지구상에 초콜릿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영국 과학지 `네이처`에 따르면 모기가 많아야 카카오 농사가 잘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 꽃가루를 옮겨서 수정시키는 일을 하는 것은 벌이 아니라 바로 모기이다. 물이나 빛 보다는 모기가 카카오 생산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는 연구 발표도 있었다. 그렇다면 모기 없는 세상은 곧 초콜릿이 없는 세상이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 출처 : 네이쳐

더구나 모기와 그 유충 장구벌레 자체는 먹이사슬의 하부에서 상위동물의 영양원으로 상당한 역할을 하며 식물의 수분에도 벌만큼 관여하니 나름대로 생태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녀석들이 없으면 모기의 유충인 장구벌레를 먹이로 하는 새들과 박쥐, 물고기, 개구리 등의 먹이사슬 균형이 깨질 수 있다. 그러니 자기들의 기여와 공헌도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녀석들은 맹장을 예로 드는 것이었다. 기존 의학계는 맹장이 인체에 불필요한 기관이라고 정의됐기 때문에 태어나면서 미리 제거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면서 맹장은, 백혈구들이 대장 안에 있는 병균과 싸우다 밀리면 작전상 맹장으로 후퇴하여 힘을 재충전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지금은 맹장염의 경우 제거보다는 치유에 힘쓰고 있다. 녀석들은 자연계에서는 자기들이 인체의 맹장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들은 생태계에의 기여 여부와는 관계없이 오로지 인간에게 백해무익하다는 이유만으로 무분별하게 살충제를 사용하여 좀이나 지렁이 같은 이로운 생물체까지 무차별적으로 살육하였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생물학자들은 모기의 유전자를 변형시켜 모기만 몰살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다. 과학자들은 숫모기의 유전자중 수명에 관한 유전자를 변형하여 태어난 새끼는 곧 죽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유전자변형모기(GM Mosquito)를 대량 배양하여 방출하면 그 일대의 모기들은 곧 사라진다.

이런 모기 살충법을 고안, 특허를 낸 영국 생명공학기업 옥시텍(Oxitec)은 실제로 브라질에 있는 유흥지 섬에서 모기만 박멸시켰다. 옥시텍은 수컷 이집트숲모기의 유전자를 조작해 이 수컷에게서 태어난 새끼가 성체로 자라기 전 죽게 만들었다. 이 수컷 모기를 대량으로 풀어놓을 경우 암컷과 교배해도 번식 전에 죽는 새끼를 낳는 것이다.

미국 플로리다 관광지에서도 시도하려했지만 14만 명 주민들의 탄원으로 무산된 바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환경에 대한 중대한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최종 견해를 발표(2016.8..5일자)하긴 했지만, 맹장의 경우처럼 모기와 자연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정확한 파악을 하지는 못한 상태이다.

모기의 먹이는 동물의 피가 아니라 꽃이 가진 넥탈(꿀)이다. 단지 암컷이 알을 배양할 때 필요한 단백질을 얻기 위하여 동물의 피를 흡수하지만 대부분의 활동은 벌처럼 꽃에서 꽃으로 이동하면서 열매를 맺게 한다. 낮에는 벌이, 밤에는 모기가 꽃을 찾아다닌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녀석들이 큰 소리를 칠 만도 하다.

녀석들은 철새들의 이동에도 자신들이 관여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철새들이 이동하는 주요 원인중의 하나가 모기 때문이라는 연구가 있다. 모기가 흡혈하기 위하여 가장 많이 공격하는 대상은 새들이다. 특히 갓 부화된 새끼들은 모기가 단 한 번 빨대를 찔러도 죽는다. 이 때문에 새끼들이 부화할 때가 되는 4월쯤 철새들은 먼 길을 마다하고 모기가 없는 북쪽으로 날아든다. 아직은 쌀쌀한 기온이지만 새들의 체온은 사람보다 높은 평균 50도 정도이므로 빨리 새끼를 부화시킨다.

부화된 새끼들이 날아다닐 5월이 되면 새끼들도 모기에 어느 정도 저항력을 갖게 된다. 새끼들이 저항력을 갖게 되면 이번에는 먹이를 찾아 남쪽으로 이동한다. 이동한 철새들은 곤충을 잡아먹어 식물과 해충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준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근저에 모기들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들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귀찮은 해충이라는 기존의 선입견이 점차 바뀌어가고 있었다. 생태계의 관점에서 녀석들이 기이한 역할을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은 녀석들에 대해 단순히 적개심을 갖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점점 느끼게 한다.

말하자면 녀석들은 인류에게는 말라리아나 지카 바이러스를 옮기는 적이지만, 생태계에는 없어서는 안될 친구(?)인 셈이다. 생태계에서는 익충으로의 역할을 다하면서도 인류에게는 해충으로 분류되는 것이 현재 녀석들이 처한 기구한 운명이기도 하다.

녀석들에 대해 생각을 가다듬다보니 인간의 삶 또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스스로는 잘난 듯 세상에 기여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인간 개개인을 그렇게 값진 인생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한 때 잘 나간다 해도 기어이는 몰락하거나 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사라지고 마는 게 인생이기도 하다. 그러니 사람의 人生이나 모기의 일생인 蚊生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녀석들과의 협상은 이렇게 녀석들의 자랑질을 듣다가 의도치 않게 인생의 허무를 느끼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계속>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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