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는 인도 전설에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 오래전 우리나라 민담에도 엄연히 전해 내려온다. 옛날 옛적에 아름다운 여인으로 위장해 사람을 죽여 피를 빨아 먹으며 살아가던 암컷 불여우가 있었다. 어느 젊은이가 지혜를 발휘하여 불여우에게 접근하여 이르기를, '왜구가 여인들을 노리니 우선 저쪽으로 피하라'고 속였다. 그렇게 불여우를 유인하기 위해 준비한 곳이 가을날 바싹 마른 갈대숲이었다. 불여우가 속아 거기로 숨자 젊은이는 얼른 불을 피워 갈대숲을 태워 불여우를 죽여 버렸다.

하지만 불여우는 죽어가면서 '내 시체 한 조각이라도 남아 인간의 피를 마실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고, 그렇게 불여우의 타다 남은 살 조각은 작은 벌레가 되어 모기가 되었다. 불여우가 모기로 변모되는 과정에서 왜구의 침략과 그로 인한 피해의식이 민담을 통해서도 그대로 생생하게 전해진다.

그런데 민담에서는 놀랍게도 과학적 사실이 숨겨져 있다. 모기는 암컷만 사람을 문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 민담에서 암컷 모기가 사람피를 마실 것이라고 암시한 것이다. 여우가 암컷이었으니 모기가 되어서도 암컷이 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것을 과연 우연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인도의 전설에서는 인류를 말살하려는 동물들의 '인류말살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모기의 은공을 전하면서 인간의 피를 상납 받는 모기의 자격(?)을 묘사한 반면, 우리나라 민담에서는 인간을 잡아먹는 불여우가 인간의 지혜로 불에 타 죽게 되자 모기로 변하여 인간에게 복수하는 모습으로서 한을 품은 여우의 한풀이로 묘사했다.

우리나라의 한(恨)은 이렇게 동물과 곤충 속에서도 건재한 것으로 나타난다. 한민족은 역시 恨의 문화임에 틀림이 없다. 모기에 대한 미운 감정을 한의 정서로 승화시켰다고 볼 수도 있다.

한편 다산은 모기를 소재로 한 시를 읊었다. 다산 정약용은 시 <증문(憎蚊)>에서 탐관오리를 얄미운 모기로 빗대어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증문 [憎蚊]

맹호가 울밑에서 으르렁대도 / 猛虎咆籬根(맹호포리근)
나는 코골며 잠잘 수 있고 / 我能齁齁眠(아능후후면)
긴 뱀이 처마 끝에 걸려있어도 / 脩蛇掛屋角(수사괘옥각)
누워서 꿈틀대는 꼴 볼 수 있지만 / 且臥看蜿蜒(차와간완연)


모기 한 마리 왱하고 귓가에 들려오면 / 一蚊譻然聲到耳(일문앵연성도이)
기가 질려 속이 타고 간담이 서늘하구나 / 氣怯膽落腸內煎(기겁담락장내전)
부리 박아 피를 빨면 그것으로 족해야지 / 揷觜吮血斯足矣(삽취연혈사족의)
어이하여 뼈에까지 독기를 불어넣느냐 / 吹毒次骨又胡然(취독차골우호연)


삼베 이불 덮어쓰고 이마만 내놓으면 / 布衾密包但露頂(포금밀포단로정)
어느새 울퉁불퉁 혹이 돋아 부처 머리처럼 돼버리네 / 須臾瘣癗萬顆如佛巓(수유외뢰만과여불전)
제 뺨을 제가 쳐도 헛치기 일쑤이며 / 頰雖自批亦虛發(협수자비역허발)
넓적다리 급히 만져도 그는 이미 가고 없어 / 髀將急拊先已遷(비장급부선이천)
싸워봐야 소용 없고 잠만 공연히 못 자기에 / 力戰無功不成寐(역전무공불성매)
여름밤이 지루하기 일 년과 맞먹는다네 / 漫漫夏夜長如年(만만하야장여년)


몸통도 그리 작고 종자도 천한 네가 / 汝質至眇族至賤(여질지묘족지천)
어찌해서 사람만 보면 침을 그리 흘리느냐 / 何爲逢人輒流涎(하위봉인첩류연)
밤으로 다니는 것 도둑질 배우는 일이요 / 夜行眞學盜(야행진학도)
제가 무슨 현자라고 혈식을 한단말가 / 血食豈由賢(혈식기유현)


생각하면 그 옛날 대유사에서 교서할 때는 / 憶曾校書大酉舍(억증교서대유사)
집 앞에 창송과 백학이 줄서 있고 / 蒼松白鶴羅堂前(창송백학라당전)
유월에도 파리마저 꼼짝을 못했기에 / 六月飛蠅凍不起(유월비승동불기)
대자리에서 편히 쉬며 매미소리 들었는데 / 偃息綠簟聞寒蟬(언식록점문한선)
지금은 흙바닥에 볏짚 깔고 사는 신세 / 如今土床薦藁鞂(여금토상천고갈)
내가 너를 부른 거지 네 탓이 아니로다 / 蚊由我召非汝愆(문유아소비여건)

 

<증문>은 모기를 소재로 세태를 꼬집은 작품이다. 호랑이와 뱀 같은 거대 권력의 횡포에는 화를 내지 못하지만 모기 같은 말단 관리의 횡포에는 크게 분노하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소시민적인 모습을 자책하는 내용이며, '몸통도 작고 종자도 천한 모기야, 어찌해서 사람만 보면 침을 그리 흘리느냐'라는 부분은 여름밤 시종일관 물어대는 모기를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탐관오리에 빗대 꾸짖은 것이다. 다산은 '내가 너를 부른 거지 네 탓이 아니로다'라며 유배되어 있는 상태에서 문제 해결에 나서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자책하고 있다.

 

▲ 다산 정약용 / 이미지=위키피디아

모기로 빗댄 탐관오리가 어찌 다산이 살던 시대에만 해당되겠는가? 증문은 모기를 증오한다는 것이니 다산이 당시 얼마나 탐관오리들의 만행에 치를 떨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다산이 빗댄 증문(憎蚊)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권력층 주변에 머물며 권력을 탐하고 직권을 남용하여 자신의 사욕을 취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는 자들이 많을수록 나라는 어지러워진다. '부리 박아 피를 빨면 그것으로 족해야지 어이하여 뼈에까지 독기를 불어넣느냐'는 다산의 지적은 실로 오늘날의 관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녀석이 등장하는 곳이 어디 민담이나 시뿐이랴? 녀석들은 계절과 관련해서도 우리 나라 속담에 어김없이 나타난다. '처서(處暑)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속담이 바로 그것이다. 처서(處暑)가 지나면 더위도 고비를 넘어 날씨가 선선해지므로 극성을 부리던 모기도 기세가 약해지는 현상을 재미있게 표현한 속담이다. 이 속담에서는 녀석이 마치 인간의 오랜 지기라도 되는 냥 친근하게 묘사되고 있다.

이렇게 녀석은 계절과 상관없이 사람 주변에 출몰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언어생활 도처에서 기웃거리며, 얄밉지만 친근한 척 얼쩡거리는 녀석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계속>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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