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의 첫 학기

2007년 7월 중순, 출국을 하고나서 아들은 2주 동안 전화 한 통화 없었다. 잘 도착했고 별 탈 없이 시작한 것에 대해서는 교환학생 담당선생님의 이메일을 받아서 알고 있었지만 아들에게서는 소식이 없었다. 내 책임일 수도 있었다. 아들이 떠날 때 나는 전화카드 한 장도 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욱아, 뉴질랜드에 도착하고 나서 제일 처음 해야 할 일은 선생님께 여쭤봐서 전화카드 사는 거야. 그리고 사용방법을 배워서 엄마에게 ‘잘 도착했습니다.’라고 전화하는 거야.”

이렇게 누차 일러주었는데도 전화카드를 못샀는지 연락이 없었다. 물론 내가 담당선생님께 전화해볼 수는 있었지만 내가 너무 간섭하고 걱정하는 엄마로 보일까봐, 아들은 마마보이로 보일까 싶어서 아들이 먼저 연락오기만을 기다렸다.

애가 타는 와중에 드디어 전화가 왔다. 아들은 대뜸 한다는 말이

아들 : 엄마 교복비로 얼마 줬어?

나 : 모르는데... 전체 금액(디파짓)으로 청구가 돼서 안 따져 봤는데....

아들 : 나 헌 교복 받았어. 교복비로 얼마 줬는지 잘 따져봐. 내가 울 엄마가 교복비 다 냈는데 왜 헌 교복 주냐고 말해서 바지는 새 것으로 두벌 받았어. 그런데 윗도리가 너무 커. 스웨터는 구멍도 났으니까 헌 교복비로 돈 낸 건지 아닌지 잘 알아봐.

라고 나를 닦달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웃음이 났다. 돈 따져보라는 말도 웃겼지만, 아니 아들이 그 말을 어찌 전달했을까? 또 거기선 아들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그냥 웃겼다. 그리곤 또 빨리 말했다.

아들 : 엄마 이거 20달러에 30분 전화카드라서 너무 비싸. 그러니까 길게 말 못해.

나 : 그래, 알았어. 잘 지내니?

아들 : 응 근데, 엄마 큰일 났어. 돈이 많이 들어가게 생겼어.

나 : (갑자기 '뭔 사고를 쳤나' 하고 덜컹했다) 왜? 뭔 일이 있었어?

아들 : 아니, 나 여기 학교가 좋아. 여기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싶어. 그러려면 3년 하고 6개월 있어야 하니까. 돈이 많이 들어서 어떻게 하지?

이러는 것이 아닌가? 전화해서는 순 돈 이야기뿐이다.

나 : 응. 그래? 뭐가 좋은데...

아들 : 선생님들이 애들을 때리지 않아. 소리는 좀 지르시는데 매는 안 들어. 그리고 친구들도 좋고 재미있어. 친구들이 나 좋아해. 친구들하고 다 친하고 복도에서 만나면 막 하이파이브하면서 지나간다? 근데 여기도 왕따가 장난이 아니야. 여기는 성격이 이상한 애들을 왕따 시키는데 나는 다행히 왕따 안 당했어.

나 : 그래? 친구들하고 의사소통이 돼?

아들 : 응. 대충 다 알아들어. 친구들하고 같이 마트도 가서 과자도 사먹고 운동도 하고 그래. 하지만 수업은 못 알아듣겠어. 그래도 재미있어. 엄마 그리고 여기 과자 값 되게 비싸. 쿠키 하나에 1불 20센트야. 물가가 장난이 아니야.

짜식 또 돈 이야기로 옮겨간다.

나 : 그래? 근데 엄마 안보고 싶어?

아들 : (1초도 생각 안 해보고 바로) 응

하는 것이 아닌가? 아들은 접대성 멘트 절대로 못 날리는 아이다. 나는 섭섭할 틈도 없이, '아이고.. 참말로 다행이다.' 싶었다. 수업은 아직 따라가지 못해서 무척 힘들겠지만 친구들과의 관계를 무난하게 시작한 것이 '1차 적응에 성공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원만한 대인관계가 가장 중요한 학교생활 적응 비결이 아닌가 싶어서 한시름 놓게 되었다.

뉴질랜드는 한 학년을 4 term으로 나눈다.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로 향한지 벌써 두 달이 넘어가면서 그 사이 1 term을 끝내고 뉴질랜드 계절로 2주 봄방학에 들어가서 기숙사를 나와 뉴질랜드인 가정(호스트)에 지내러 갔다.

1 term 마다 시험을 보고 평가를 하는데 영어도 잘 못하는데 어찌 시험을 치렀을꼬... 하는 걱정이 든다. 하지만 이는 내 걱정이지 아들은 별로 걱정도 안하는 것 같다. 수업은 영어, 과학, 수학, ESOL(초기 교환학생을 위한 영어수업), 목공예, 체육 이렇게 선택했다. 다른 것은 다 따라가겠고 재미있다고도 하는데 영어와 과학이 너무 어렵다고 했다. 당연한 거다. 그래도 돌아오겠다고, 힘들다고 단 한마디 하지 않은 걸 보면 어찌 어찌 헤쳐 나가나 보다.

아들이 있는 뉴질랜드 학교 컴퓨터 사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메일은 너무 늦게 뜨거나 보내다가 끊겨서 할 수가 없고, <싸이>는 좀 기다리면 들어가진다고 해서 나도 <싸이>란 것에 가입을 하고 서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삼았다. 한국을 떠난 지 약 한 달 보름 정도 후에 아들은 첫 요구사항을 <싸이>에 올렸는데 웃겨서 혼났다.

 <계속>

한국에 있을 때보다 표정이 밝다. 얼굴에 어릴 때 보이던 즐거움과 장난스러움이 배어 있다. 아들은 제 또래 아이에 비해 성숙이 늦다. 중 3학년이면 어떤 아이는 청년 같은 모습인데 아들은 아직도 솜털 같은 수염에 여드름 하나 없는 얼라 같은 모습이다. 너무 성숙이 늦은 것 같아서 소아성장클리닉에 갔는데 선생님이 이러셨다. '걱정 마세요. 군대 가서 키 크는 아이가 있어요. 욱이 같은 아이입니다.' 라고 하셨다. 언젠가는 성숙하겠지... 엄마, 아빠 닮아 그렇겠거니... 하고 기다려본다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미경 주주통신원  mkyoung60@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키워드

#순둥이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