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세번째 요구사항

아들이 왔다. 7월 중순에 뉴질랜드로 떠난 아들이 5개월을 마치고 방학을 맞아 드디어 왔다.

처음엔 엄마 보고 싶지 않다고 하던 아들도 오기 전에는 하루가 너무 길다고 했다. 내 마음하고 똑 같나 보다. 이상하게 오기 바로 전이 안달이 날 정도로 더 보고 싶다. 누나도 동생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동생이 오면 뭐를 해줄까 고민하면서 동생과 놀러 다니려면 돈은 필요하고 엄마에게 이제 용돈 타기는 좀 미안하고 해서 아르바이트 자리도 알아봤다니 그저 찰떡같은 오누이 사이로 커준 것이 고마울 뿐이다.

아들은 2학기를 어떻게 지냈을까?

아들이 9월 말 2주간의 짧은 방학기간을 뉴질랜드 호스트 집에서 지내고 다시 기숙사로 복귀했을 때 한국 학생이 새로 입학을 했다. 동갑내기 남자 녀석이니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하루 종일 붙어 다니고 수업도 같이 듣는다고 하여 혹 한국말만 쓰다가 영어가 늘지 않으면 어쩌나 생각을 했다. 약 한 달 반 정도는 딱 붙어 다니다가 지금은 서로 각자 취향에 맞게 다니는 것 같다. 친구가 제 엄마에게 말하기를 주말에 ‘욱이는 어디서 놀고 있는 지 알 수가 없다.’, ‘밥 먹을 때만 되면 나타났다가 또 금방 어디론가 사라진다.’ 고 했다는 걸 보면 아마 아들은 거기서도 ‘혼자 놀기’ 혹은 ‘목적 없이 마구 뛰놀기’를 즐기고 있나보다.

아들이 처음 뉴질랜드에 갔을 때 큰 불만이 없었다. 그저 “여기 자연이 정말 좋아”, “여기 선생님들은 참 친절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어쩌다 “엄마 키위 애들 여럿이 ‘Fucking Asian’ 이라고 놀릴 때가 있어.” 라고 했다. 그래서 “왜 그런다니?” 하고 물어보면 “몰라. 아시아 애들을 좀 무시해. 그러면 나도 가만있지 않아. ‘Fucking Kiwi’ 라고 답해줘.”라고 했다. 뭐 세상에는 이런 애들, 저런 애들이 있으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너는 교환학생이니까 똑같이 나쁜 말하면 안 돼. 왜 그렇게 말하는지 직접 물어보거나, 그냥 나쁜 앤가 보다 하고 무시하렴.” 이렇게 말을 해주었다.

한 번은 좀 화가 나서 “엄마 내가 한 애를 때려주려다 말았어.”라고 했다. 그 이유는 걸어가는데 뉴질랜드 아이 한명이 뒤에서 머리카락을 잡아 당겼다고 했다. 뒤돌아보니 자주 괴롭히는 아이라서 화가 나 마침 벽돌이 있기에 때리려고 집어 들었더니 그 아이가 도망을 갔다고 했다. 큰일이다 싶어서 “교환학생은 절대로 싸움을 하면 안 된다. 주먹질 싸움 하면 조기귀국이야.”라고 말해주었다. 말로 따지던지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하라고 했더니 “어떻게 선생님께 그런 걸 일러 바쳐?” 그러는 것 아닌가. 어디나 짓궂은 남자 아이들은 있으니 어쩌겠는가 하고 속은 상하지만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온 친구의 어머님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의외의 말씀을 들었다. 생각보다 키위 아이들이 놀리는 수준이 심각했었던 거다. 그 친구가 하루는 너무 분해서 교환학생 담당선생님께 면담을 요청하고 우리 아들을 통역자로 데리고 가서 상담을 받았다. 그 친구가 이런저런 놀리는 이야기를 울면서 말씀드렸는데 교환학생 선생님께서 울 아들에게도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그랬더니 갑자기 아들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그동안 겪은 서러움을 다 이야기하더란다. 그 친구 어머님께서는 “욱이가 한 번도 내색을 안 해서 우리 아이도 욱이가 그렇게 놀림을 받은 줄을 몰랐다 하더라고요.” 하셨다.

그 말을 듣고는 나는 아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나는 아들이 가기 전 거의 협박에 가까운 수준으로 인내심을 발휘하여 살아남으라고 요구했지 싶다. 이렇게 말이다.

“욱아, 힘들 거야. 정말 피눈물 나게 힘들 거야. 그런 것 네가 다 알면서도 가는 거지? 엄마가 억지로 보내는 것 아니지? 네가 가고 싶어서 가는 거니까 힘들어도 엄마에게 불평하지 말고 참고 이겨내야 해. 엄마는 한국에서 아무 것도 도와줄 수가 없어서 속만 상해. 웬만하면 네가 다 해결하고 엄마에게 되도록 이야기 하지 마.”

이렇게 모질게 차갑게 말했으니 아들은 그 설움을 엄마에게 다 털어놓지 못했던 거다. 그저 살짝 지나가듯 내비친 거다. 내가 자식에게 이렇게 냉정하면서 무슨 남의 자식들 상담을 해줬는지..... 가장 가까운 아들의 마음도 몰라주고 왜 그렇게 따뜻하게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았는지.. 정말 미안했다.

어쩌면 나의 그런 냉정함으로 인해 아들도 마음을 독하게 먹지 않았을까? 화가 나도 힘들어도 조기귀국 당하지 않으려고 혼자서 무진장 참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런 노력이 빠른 적응을 가져왔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면서 냉정했던 나의 태도를 변명해보지만... 그래도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너무한 건 너무한 거다.

그나저나 영어로 하는 공부, 아들은 적응을 했을까?

뉴질랜드학제는 1년이 4학기로 교환학생은 1학기 시험은 치지 않는다. 첫 학기는 전쟁터에 왔다고 생각하고 학교생활의 적응에 중점을 둔다고 했다. 아들은 2학기를 마쳤으니 한 학기 시험을 보긴 보았다. 가장 어렵다고 하던 경제는 선생님께서 “네가 지금 경제 시험공부를 하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 하시면서 면제해주셨단다. 다행이라 생각해얄지.. 아님 시험도 못 칠 정도니 기가 막히다 해얄지... 두 번째로 어렵다는 과학은 단 한 과목만 통과되지 못했고, 수학은 엑설런트(뉴질랜드 수학은 쉬워서 고난위의 수학을 했던 한국 학생들은 용어만 이해하게 되면 다 엑셀런트 받을 수 있음), 영어와 이솔(ESOL)은 패스를 했단다. 녀석은 찔렸는지 아님 엄마에게 잔소리 들을까 걱정했는지 이렇게 변명을 했다. “엄마, 선생님께서 과학을 완전 패스하지는 못했지만 1년 전에 온 다른 나라 교환학생보다 더 잘 봤다는데?” 짜식.. 못하는 아이와 비교하는 것은 여전하다.

아들의 세 번째 요구사항은 무엇이었을까? 머리 염색과 귀를 뚫은 거다. 하지만 이것 역시 교환학생의 규율을 어기는 거라서 허락하지 않았다. 염색이나 귀를 뚫는 것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만약 그럴 경우 교환학생으로 가입한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녀석이 학교 선생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 키위친구 염색하는데 곁다리 붙어서 빨간색으로 염색을 했다. 선생님께 살짝 꾸중을 듣기는 해도 반성문을 쓰거나 부모님께 경고편지가 날아오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싶지만 더욱 따끔하게 말을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규정을 어기고, 부모 허락도 받지 않고 혼이 안 나면 규정을 우습게 아는데...

교환학생은 일반 뉴질랜드 학생들에게 허용된 행위도 금지항목에 넣곤 한다. 가장 중요한 금지항목은 4D다. Date, Drive, Drink, Drug이 금지된다. 다른 D는 몰라도 Date에 대해서는 무척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성에 대한 관심이 한창일 사춘기 나이인데 Date가 금지다. 물론 찐한 사이로 발전할까 봐 초장에 잡는 것이겠지만... 지난 번 친구들과 클럽에 갔을 때 관심을 보이는 여학생에게 교환학생이라서 만날 수 없다고 했다 하니 룰을 잘 지켰으니 기특하다고 해야 할까? 삭막한 사춘기를 보낼 아들이 불쌍하다고 해야 할까? 아님 그런 요령도 피울 줄 모르는 바보냐고 해야 할까?

방학 때 온 아들과 보성 녹차 밭에 갔다. 엄마의 잔소리를 무시하고 사촌 동생들과 눈싸움하느라 녹차 밭에 무단침입한 아들이다. 범행현장을 찍혀 쫌 어색한 표정을 짓는 아들. 그래도 여행 기간 내내 깔깔 웃음이 가득했다.

어린 시절, 집 앞 마당에 따뜻한 목화솜을 한껏 틀어 보숭보숭 꾸며놓은 모습이랄까? 풍성한 시골 인심 가득한 가래떡을 동네 사람이 다 먹을 수 있게 늘어놓은 모습이랄까? 아니면 지리산 구름님이 내려와 여린 새순 속에 숨어있는 은은한 향기를 포담시 품어주고 있는 모습이랄까? 몇 달 만에 만난 아들과 함께 간 보성 녹차 밭은 따뜻하고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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