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2007년 7월, 한국 사람이 거의 없는 뉴질랜드 남 섬의 시골 도시 ‘오마루’란 곳에 있는 공립학교에서 최초의 한국 학생으로 입학을 했다. 1년 학기를 마치고 2008년 7월 초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들보다 3개월 늦게 한국 학생이 또 공부를 하러 왔다. 그 학생은 4개월을 지내고 2월 말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3월에 있는 고교 입학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환불도 안되는 1년 과정 등록비까지 다 내고도, 중도 귀국한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컸다고 한다. 그 친구가 한국으로 들어온 후 걱정이 되어 아들에게 물었다.

나 : 아들, 친구가 가면 외롭지 않을까?

아들 : 나는 괜찮아. 여기 기숙사 아이들이 거의 다 친구들이야.

나 : 한국으로 오고 싶지 않아?

아들 : 나는 힘든 시기 다 지나갔어. 지금은 공부도 괜찮고 기숙사도 불편한 게 없어. 지금 한국가면 뭐 하겠어. 난 여기서 살아남을 거야.

자신도 힘들다고 돌아오고 싶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런 말 한마디 없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국제학생 담당 선생님의 편지도 나를 안심시켰다. 아들은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항상 즐겁게 뛰어 다니고, 다른 여러 아이들과 아주 잘 지내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다음 학기에는 유력한 ‘기숙사 방장’ 후보라고 하셨다. 내가 보기엔 아들은 아직도 좀 눈치가 없이 어리버리하고, 자기 기분에 취해서 때와 장소를 못 가리며 까르륵 까르륵 넘어가기도 하는 아이인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렇지 않은가 보다.

▲ 뉴질랜드에서 행복한 표정의 아들. 빨간 염색을 한 머리칼이 햇빛을 받아 윤이 자르르

아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하루는 전화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아들 : 엄마 나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가서 공부하면 안 될까?

나: 한국으로 안 오고?                                                  

아들 : 응. 나 한국말 잘 못하잖아. 이상하게 영어가 더 편해.

나 : 미국은 학비가 많이 비싼데. 뉴질랜드는 싫어?

아들 : 여긴 너무 공부를 안 시켜. 너무 놀자 분위기야.

나 : 네가 웬일이셔? 공부 걱정을 다하고.

아들 : 한국학생 많은 곳은 싫고, 한국학생 없는 영어권 나라에서 공부하고 싶어

라며 조목조목 영어권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이유를 밝히고 주장을 해서 우리는 아들의 요구대로 캐나다 고등학교로 다시 수속을 밟았다.

이렇게 아들이 예전과 달리 말하는 것이 제법 어른스러운 듯해서 아들이 컸구나 하고 기대를 많이 했다.

아들이 온 이틀 후 가족여행을 갔다. 아들이 원하는 여행지는 제주도. 그런데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빨리 아들이 떠났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아들이 어찌나 힘들게 하던지.... 아들은 쉽게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쉽게 먹으려 들지도 않았다. 어딜 가나 투덜이처럼 군소리가 많았다. 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무난하게 굴어주면 좋으련만 예전보다 더 까칠하게 굴었다. 호르몬이 요동치는 사춘기라고 이해를 하려해도 자기 멋대로 지나칠 때가 많았다. 나중에는 피곤해져서 그만 4박 5일 여행이 너무 길다 느껴졌다.

딸이 보다보다 이렇게 말해준다.

“엄마, 욱이는 엄마만 있으면 이상해져. 그냥 넘어갈 것도 엄마만 있으면 트집 잡고 심술부리고.. 내가 봐도 속이 터져. 나랑 있으면 전혀 안 그러거든? ‘누나 내가 뭐 해줄까?’ 이러면서 막 나에게 뭐라도 해주려고 하거든? 그런데 엄마만 있으면 개념도 없고 예의도 없어지는 아이 같아. 왜 그러지?”

정말 속상했다. 이 녀석이 다시 멀리 나간다고 엄마 외롭지 말라고 정 떼고 가려고 그러나~ 그런 생각도 들고...  1년 어리광을 못 부렸으니 실컷 부리는 건가~  싶기도 하고... 엄마를 사랑하는 것 같기는 같은데... 사춘기라서 그러는 것 같지도 않은데.... 그냥 엄마를 막 못 살게 굴고 괴롭히고 싶어 하는 아이 같았다. 미워서 한 대 줘 박고 싶지만 이 나라 교육이 싫다고, 도저히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고, 어린 나이에 다시 이국땅으로 떠나게 될 아들이 안쓰러워서 참고 또 참았다.

정 화가 나면 이렇게 말했다.

나 : 엄마 화났어. 그러니까 말 시키지 마.

아들 : 왜~~~ 왜~~~ 화났는데에~~~ 

나 : 네가 너무 버릇없게 굴어서 싫어.

아들 : 내가 뭘 버릇없게 굴었는데~~~~ 

나 : 중국집에서 싫다는데도 엄마 콩국수에 짜장면 집어넣었잖아..

아들 : 아~~~ 미안해. 퓨전 음식 만들어 본 거야

나 : 엄마 짜장면 싫어하는데. 그리고 엄마보고 ‘미안해’가 뭐야. 엄마가 너 친구야? 

아들 : 그럼 뭐라고 해? 

나 : '죄송합니다' 해야지. 

아들 : 알았어. 알았어. ‘죄송합니다’.

누워서 절 받기. 또 한 번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한 지인에게 이런 소리도 했다.

지인 : 엄마 만나서 좋겠네. 

아들 : 저요, 뉴질랜드에서 오기 싫었어요.

지인 : 아니 왜?                                                  

아들 : 한국 오면 엄마가 설거지하고 빨래 시켜서요.

아.. 이 말이 고등학교 1학년 입에서 나올 말인가? 초등학생도 아니고.. 그 말을 함께 들은 몇 사람은 배꼽을 쥐고 웃었지만 나는 정말 창피했다. 마치 엄마가 자기를 대접 안 해주고 머슴처럼 부려먹었다는 듯이 말하니... 사실 우리 집은 직장 일에 치어 바쁜 나를 대신해서 설거지 전담이 아들이다. 빨래 걸어주기도 잘하고 걷어주기도 잘한다. 정말 뒷손 갈 것 없이 자발적으로 깔끔하게 해주면서도 남들 앞에서는 엄마를 막 깎아 내리고 싶은가 보다.

아들과 엄마 사이는 어떤 사이일까 생각해본다.

가까이 있으면 멀어지고 싶고 멀리 있으면 가까이 하고 싶고 그러는 사이가 아닐까? 분명 아들이 가고나면 무척 보고 싶어 할 것이다. 아들도 그럴 것이다.

지난 5월에 아들이 뉴질랜드에서 쪽지에 이렇게 써준 적이 있다.

“엄마, 나 엄마 사랑해. 엄청나게 너무나도 완전 사랑해~~~”

그런데 내 옆에 가까이 와서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엄마, 나 엄마 괴롭히고 싶어. 엄청나게 너무나도 완전 괴롭히고 싶어~~~”

아무래도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이 되려면 우리는 좀 떨어져 살아야 할라나 보다. 가끔 아들이 갈 날을 꼽아보다가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런 내가 너무나도 차가운 엄마가 된 것 같아서....

▲ 뭔가 못 마땅한 표정의 아들. 성산일출봉까지 오는데 땀을 많이 흘려서 심술이 남, 동생의 심술에 피곤한 누나
▲ 엄마를 물속에 빠뜨려 괴롭히려는 아들에게 슬리퍼를 무기삼아 결사항전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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