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에 첫눈이 온다. 소담스럽게 내린다.

▲ 첫눈 내린 관악산

광화문을 생각하면 그쳐야 하는데 첫눈이라 좀 더 내렸으면 한다.

▲ 첫눈 내린 관악산

첫눈은 반갑다. 첫눈은 기다려진다. 새끼손가락에 봉숭아 물이라도 들인 해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많은 시인묵객들이 예부터 첫눈을 노래했나 보다. 첫사랑과 함께 말이다.

▲ 첫눈 내린 관악산

‘첫눈 오는 날 만나자‘라는 시가 있다.

▲ 첫눈 내린 관악산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안도현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 첫눈 내린 관악산

정호승시인도 똑같은 제목으로 이렇게 노래했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정호승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 첫눈 내린 관악산

첫눈이 오는 날은 누군가를 만나야 하나보다. 그것도 기차역에서 말이다. 노래방에서는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그렇게 외친다.

▲ 첫눈 내린 관악산

올 첫눈이 오는 날 우리는 광화문역에서 만났다.

▲ 광화문 촛불

그리고는 촛불파도로 함박눈마저 그쳐버리게 했다.

▲ 광화문 촛불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박효삼 부에디터  psalm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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