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어려서 느렸다. 누가 뭐라고 물어보면 대꾸도 잘 못하고 눈을 껌북거리며 ‘어.. 어..’ 하면서 첫 마디를 쉽게 열지 못하고 뜸을 들였다. 이렇게 반응도 느렸지만 어휘 발달도 남들보다 늦어서 제 나이만큼 다양하게 말하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느린 것이 걱정은 좀 되었지만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말 한마디 지지 않고 따박따박 따지며 날 꼼짝 못하게 하는 딸에게 시달려서 그랬을까?

아들이 느려서 오랫동안 사랑스러웠다. 신체 성장속도도 느려서 여드름은 우리나이로 고1 나이인 17세 봄부터 나기 시작했고 보숭보숭 수염도 17세 가을부터 나기 시작했다. 중학교까지도 뺨을 대보면 깨끗한 어린아이 피부같이 매끈매끈했다. 나는 발달이 느린 아들이 더 오래 엄마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아들은 중 2때까지도 많이 순진하고 엄마에게 가리는 것이 거의 없이 솔직해서, 이런 대화도 스스럼없이 했다.

아들이 중2 겨울 방학 때 딸하고 아들하고 길을 걸어가면서 한 대화다.

아들 : 엄마, 나 이제 다 알았어.

나 : 뭘??

아들 : 엄마도 아빠도 이모도 다 변태야. 할머니가 제일 변태야

나 ; 뭔 소리야?

아들 : 아이 많이 낳을수록 더 변태야..

나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았다. 딸하고 마주보고 낄낄 웃으면서..

나 : 드디어 욱이가 뭔가를 안 것 같은데?

딸 : 그러게 말이야.

나 : 욱아.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너 이상한 영화 봤어?

아들 : 아니야. 난 야동 안 봐. 그냥 알았어. 근데 누나 혼자 살 거야? 결혼할 거야?

딸 : 결혼할 건데?

아들 : 아이는 낳을 거야?

딸 : 그럼~ 결혼했는데 아이도 낳아야지.

아들 : 그럼 누나도 변태되는 거야.

나는 아들에게 생명 탄생의 소중함과 종족 번식의 중요성을 강조해주면서 변태행위가 아니라고 설명해주었지만 아들은 고개를 저으며 ‘나는 장가 안 간다.’로 끝을 맺었다.

뉴질랜드 1년을 마치고 돌아온 올 여름에는 이런 대화도 했었다.

나 : 아구 귀여운 울 아들~ 언제 사춘기 오냐?

아들 : 왜 이래? 나 청소년이야..

나 : 그래? 너 겨드랑이에 털 났어? 안 났지?

아들 : 났어!!!

나 : 그래? 그럼 좀 보자.

아들이 팔을 들어 올리고 털을 손으로 잡아 간신히 보여주는데 아직도 잘 보이지도 않는 솜털 몇 가닥이었다.

나 : 애개개개? 이게 무슨 털이야. 솜털이지. 아주 투명하구만. 너 거시기 털도 안 났지?

아들 : (얼굴이 벌개져서 화를 벌컥 내며) 났어. 엄마는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

나 : 그래? 아구 징그러워. 그럼 이제 너랑 옆에서 안 자준다.

이렇게 아직도 어린 아들을 실컷 놀려먹었다.

그런데. 아들이 변했다. 진짜 사춘기가 왔나보다. 2008년 가을, 다시 캐나다로 공부하러 떠난 아들이 간지 2주 만에 메신저로 말을 걸고는 이렇게 허락을 구하는 거다.

아들 : 엄마 나 여자 친구 사귀어도 돼?

나 : 국제학생은 이성 교제 금지인데? 너도 알잖아.

아들 : 근데. 아 정말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어. 처음이야.

나 : 이성교제 찐하게 하면 쫓겨나는데?

아들 : 왜? 사귀는 것이 왜 나빠?

나 : 거기 고등학교 아이들은 이성교제 하면 막 같이 자고 그런다며? 그러다 클~ 난다.

아들 : 에이~~ 나는 그러지 않을 거야. 그냥 만나고 그러면 안 돼?

나 : 거기 교육청 선생님께 여쭤보고 허락받고 만나려면 만나.

아들 : 그런 얘기를 내가 왜 교육청 선생님께 해야 해? 싫어..

나 : 싫으면 할 수 없지. 근데 아들, 그 여학생이 뭐가 그렇게 좋아?

아들 : 응. 굉장히 이쁘게 생겼어. 영화 Mean girls. 우리 봤잖아. 거기에 나오는 아이 같이 생겼어. 근데 걔도 나에게 관심 있는 것 같아.

나 : 어떻게 알아?

아들 : 드라마 수업 같이 듣는데 나에게 막 말 걸고 그랬어.

나 : 그렇게 예쁘다며? 남자친구가 없대?

아들 : 그런 것 같아. 걔가 좀 체구가 작거든? 여기 아이들은 체구가 작으면 인기가 없나봐~

나 : 그래? 너만 좋다고 쫓아다니면서 울 아들 상처 받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아들 : 나 그러지 않아. 허락해줘..

나 : 일단 교육청 선생님에 문의해보고.

아들 : 그럴 거면 묻지 마. 창피하게.

그런데 아들이 사정이 생겨서 한 달 만에 다른 학교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 여학생에게 말 한마디도 못하고 여학생의 이름만 달랑 외우곤 하는 말이

아들 : 엄마~~ 나는 망했어~~.

나 : 왜?

아들 : 그 아이한데 한마디도 못해봤어. 연락처도 못 얻었어.

나 : 얌마~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을 수 있는 거야. 용기를 내서 친구들에게 연락처 좀 알아봐 달라고 해봐.

하면서 연락처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다각도로 알려주었다. 아들은 그 방법 중 한 가지를 택하여 그 전의 학교 친구 한명과 메신저를 나누면서 그 여학생의 전화번호를 알아내고자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당분간 작업을 포기했다고 한다. 아들의 성격을 알기에 심각하게 실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는데 그러지는 않은 것 같다.

여태껏 아들은 이성에 대하여 관심을 표현한 적이 한번도 없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짝꿍 여학생의 이름도 외워오지 못한 아들이 아닌가? 그런 아들도 사춘기가 와서 이성에 눈을 뜬다. 소심함과 자존심 때문에 첫 데이트는 이루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성에게 관심을 갖게 된 아들이 나는 신통하다. 요새 사춘기가 빨리 오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도 온다고 하는데 비록 우리 아들이 몇 년 늦게 오기는 했지만.. 오긴 오지 않았는가?

기다리면 온다. 다른 아이보다 좀 늦게 와서 그렇지 늦되는 아들의 사춘기도 왔다. 공부에 대한 관심과 열의도 그렇게 늦더라도 좀 왔으면 하는 욕심을 낸다면 내가 욕심쟁이 엄마일까?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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