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날씨는 정말 이상했습니다. 햇볕이 나다가도 갑자기 양동이로 물을 퍼붓듯 비가 세차게 내립니다. 5분~20분 퍼붓다가 다시 환해집니다. 이러길 아침부터 밤까지 여러 차례 이어집니다. 소나기라는 우리 고유의 정겨운 비가 아닌 것 같습니다. 열대지방의 스콜이 출장 왔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러다 보니 이젠 날씨가 환해도 늘 우산을 옆에 끼고 다니게 됩니다.  

지난 토요일 어디 갈지 정하지 않고 집을 나서려는데 빗님이 세차게 반겨줍니다. 그럴 땐 무조건 남산행입니다. 흙길을 밟지 않고, 옷을 적시지 않고도 우산을 쓰고 충분히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코스가 많기 때문입니다. 북쪽 둘레길과 남쪽 둘레길은 걷기 좋은 포장도로로 되어 있습니다. 그곳만 돌아도 만보 걷기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남산에 도착하니 빗님이 또 억수로 환영해 줍니다. 이럴 땐 빗님과 싸우려 하면 안 됩니다. 빗님이 가주실 때까지 잠시 기다립니다. 5~10분 쏟아붓다 보면 빗님도 지쳐서 약해지거든요. 그렇게 남산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2차례 더 억수 빗님과 만났습니다.

 

케이블카 정류장 바로 아래 잠두봉 전망대에서 북쪽 서울을 바라보니 빗님에 씻긴 서울이 아주 상큼하게 선명합니다. 인왕산은 살짝 고개를 내밀었지만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은 비구름에 숨어버렸네요.

잠두봉에서 본 서울
잠두봉에서 본 서울

억수 빗님을 피해 차 한잔하고 남쪽 둘레길로 내려가는데 전망대에서 멋진 남쪽 하늘이 또 저흴 반겨줍니다. 햇님이 빗님에 뒤질세라 구름 사이로 햇살을 뿌려줍니다. 빗님에 깔끔하게 씻긴 온갖 구조물들도 이때다 싶어 자랑하듯 제 모습을 맘껏 드러냅니다. 비 온 뒤 남산은 참으로 상쾌합니다.

동영상으로도 찍었습니다. 

 

남측 둘레길을 돌아 다시 북측 둘레길로 들어갔습니다. 어머나~ 빗님이 물길을 만들어 못 보던 작은 계곡들이 생겼습니다. 콸콸콸~ 소리를 내며 또 우리를 반겨줍니다.

억수 빗님을 네 차례나 보내고 나니 좀 늦어져서 저녁 7시가 넘었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사라지고 산속에 기대어 사는 작은 동물들은 신이 납니다. 따가운 빗님에 숨죽였던 온갖 새들과 매미, 풀벌레들이 합창을 합니다. 남산을 뒤덮은 빗님이 만든 물줄기는 여기저기서 졸~졸~졸~ 소리를 냅니다. 이파리에 맺혔던 빗방울이 얕은 바람에 톡ㆍ톡ㆍ톡ㆍ 떨어집니다. 아름다운 남산 교향곡입니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조용히 걷습니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 있을까요?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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