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아들 생일을 한국에서 맞았다. 근사한 곳에서 저녁을 사주려 했는데 의외로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외식 싫어. 엄마가 해주는 미역국하고 밥 먹을 거야.”

나는 요리에 관심이 없는 주부다. 요리하는 시간이 아깝고, 요리하는 것을 귀찮게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도 별로 없기 때문에 ‘오늘은 맛있는 뭘 먹을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뭘로 한 끼를 때울까?’ 생각한다.

요리를 귀찮게 생각하니 당연히 요리 솜씨도 없어 가족들이 가끔 불평을 한다. 엄마는 ‘너는 미역국만 맛있게 끓일 줄 안다.’고 구박하고, 남편은 김치만은 종가집 김치로 사먹자고 한 적도 있다. 딸은 이런 저런 음식을 해 달라 주문하지만 나는 그 요구를 맞춰주질 못한다. 엄마 요리법을 대신하는 인터넷 요리법을 적극 활용하는 딸은 스스로 음식을 잘 해먹고 식구들에게도 잘 해준다. 가족 중 유일하게 내가 한 음식을 칭찬해주는 사람은 바로 아들이다. 맛있다고 냠냠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준다. 칭찬에 약한 게 사람인지라 아들이 뭘 해달라고 하면, 귀찮기는 해도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솜씨가 좀 늘었다.

삼시세끼 유난히 ‘엄마 밥 타령’하는 아들이 군대밥은 먹을 수 있을까?

평소에 아들은 군은 가야하는 곳이긴 하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고 했다. 캐나다에서 대학 마치고 직장 잡아 영주권 따는 방법도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게 군대를 피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귀국 후 한국 친구들을 바쁘게 만나고 다닌 아들은 군대를 먼저 다녀와야겠다고 말했다. 군대를 회피하는 유학생들에 대한 친구들의 적대감이 예상보다 심각했던 것 같다. 안 때리고, 음식 잘 주고, 훌륭한 운동시설이 있다고 소문난 카투사에 지원한다며 토플이나 토익 시험을 본다고 했다. ‘토플로 국내대학 진학!!'을 외치는 아빠를 잠시 피해가기 위한 결정이기도 했다. 캐나다 대학 보내달라고 조르면 어쩌나 했는데 아빠와 충돌하지 않고 만저 군에 가겠다고 마음 먹어준 아들이 고마웠다.

아들은 카투사 선발에서 떨어졌다. 영어자격을 통과한 이들을 대상으로 8대 1 경쟁 무작위 선발에서 탈락한 것이다. 그 다음 도전은 공군 어학병이었다. 공군어학병 면접을 보고 온 아들은 “엄마 난 떨어졌어. 기대도 하지마“ 했다. 아들이 보기에 어마어마한 영어실력을 가진 형들이 차고 넘쳤던 것이다. 자신은 나이가 가장 어린 피라미라고 했다.

공군 어학병에 떨어진 아들은 공군헌병에 지원했다. 공군은 덜 때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들은 공군만 고집했다. 앞선 두 지원으로 6개월 이상 소비했지만 다행히 공군헌병으로 무난한 입대를 하게 되었다.

입대 하는 날 아침, 아들이 현관문을 나서면서 “엄마 안녕. 갔다 올게” 했다. 나도 아들 뒤를 졸래졸래 따라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들은 “왜 나와. 빨리 들어가” 하고, 나는 “알았어” 하면서도 뭔가 서운해서 또 뒤를 졸졸 따라 나섰다. 아들은 힘으로 나를 돌려세우더니 이젠 그만 들어가라고 현관으로 밀어 넣었다.

아들은 그렇게 아침 일찍 혼자 버스를 타고 진주공군훈련소에 갔다. 이상하게 아들이 군에 가면 엄마가 많이 운다는데... “간다간다 하더니 정말 갔네.” 하고 담담했다. 그날 서예 수업도 갔다. 아들이 오늘 군에 갔다고 하니까, 얼마 전 아들을 군에 보낸 동년배 회원이 “아니~~ 아들 보내놓고 글씨가 써져요?” 했다.

마음이 어지러우면 글씨는 잘 써지지 않는데... 아무렇지 않게 글씨가 써지니 나는 감정이 없는 독종인가? 예행연습을 하도 많이 해서 그렇지 않나 싶다. 처음 아들을 뉴질랜드에 보내고 돌아오는 차안에서는 눈물이 그냥 저절로 흘렀었는데... 중3때부터 4번을 떼어놨으니 둔감해질 만도 하다.

아들 방에 가보니 깔끔이답게 정리하고 갔다. 아들은 우리 집에서 가장 깔끔하다. 뭐든지 제자리에 정돈되어 있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집 설거지 당번은 주로 아들인데, 아들이 해놓은 설거지를 보면 정리의 달인이 왔다 간 솜씨다. 뒷손질할 게 없다. 숟가락, 젓가락도 가지런히, 각종 그릇도 종류별로 가지런히 정리해 놓는다. 아들은 나에게도 그렇게 정리를 해놓으라고 한다. 나는 너무 그런 것이 싫어서 일부러 막 쌓아놓는다. 그래 종종 아들에게 구박을 받는다. 잔소리도 심하다. 이 컵 저 컵 구분 없이 사용하면 정해준 자기 컵만 쓰라고 한다. 식탁위에 이런 저런 물건을 올려놓으면 어느 날 아무 것도 없이 싹 치워버리고는 제발 좀 깨끗이 살자고 한다.

아들이 보기에 나는 좀 나은 편이다. 아들이 질색하는 사람은 아빠와 누나다. 양말을 소파 밑에 그냥 벗어놓거나, 면도기 사용 후 바로 불순물을 제거하지 않거나, 물을 마시고 아무 곳에나 컵을 놓는 아빠 때문에 괴로워한다. 옷을 자기 방에 쌓아 놓거나, 머리카락이 붕붕 뭉쳐 돌아다녀도 “응 한꺼번에 치지 뭐.. ”하며 아무렇지 않게 사는 누나도 아들에겐 괴로운 존재다.

이런 유별나게 깔끔한 성격이 군에서 환영받는 성격인지 고문관으로 불리는 성격인지 모르겠다. 처음에 아들이 군대에 먼저 갔다 온 후 장래를 결정하겠다고 했을 때, 아들이 과연 군대생활을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좀 더 성숙해서 보내고 싶었다. 지나치게 깔끔한 성격 외에도 폭력 상황을 지독히도 싫어하고, 대인관계에서 좀 까칠했던 예전의 아들이 생각나서였다.

아들은 과연 얼마나 컸을까? 아들 말로는 엄마 앞에건 여전히 중학생이지만, 나가서는 고등학교 졸업한 청년처럼 행동한다고 했다. 집에서 보는 아들은 살짝 까칠했고 어리광도 여전했다. 심지어는 이런 말도 했다.

“엄마 지금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 이렇게 엄마에게 어리광 피우고 계속 살았으면 싶어.”

이런 아이가 군에서 적응할 수 있을까?

▲ 군에 가기 전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알통을 보여주는 아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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