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군대에 간 며칠 후, 아들이 입고 간 옷가지 등이 왔다. 상자 안에 편지도 있었다. 다른 엄마들은 편지 보면서 다 운다는데.. 나는 철없는 엄마인지 웃음이 났다. ‘ㅋㅋㅋ’가 들어간 먹보 아들 편지는 짧았지만 명랑 쾌활함이 묻어났다.

“여기 훈련소 그래도 나쁘지 않아!! ㅋㅋ 조교들도 나름 잘해주고 ㅋㅋㅋ 때리지도 않고 벌도 안준다? 밥도 먹을 만해. 만날 짬밥 맛없다 하는데 나는 잘 먹어 ㅋㅋㅋ 밥 2공기 반은 먹는 듯...” 걱정할까봐 일부러 이리 썼을까?

그 날 저녁, 전화로또에 당첨되었다고 아들이 전화를 했다. 웃으면서 하는 첫마디는

“엄마 군대하고 나하고 잘 맞아. 나 여기 짱 박을까봐.”

믿기기 않아 “정말? 정말?” 하며 몇 번이나 물었다. 반찬 양이 적어 밥 2숟가락에 반찬 1번 집어 먹는 것, 동기들이 밤에 코를 골아서 푹 잘 수 없어 새벽에 일어나기 힘든 것 외에는 별로 힘든 게 없다고 했다. 엄마가 괜히 걱정했다고 했다.

아들이 훈련소에 간 후 2012년 4월 총선이 있었다. 나와 성향이 비슷한 많은 이들의 실망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틀 동안 펑펑 눈물을 쏟았다는 사람도 있었고, 신문도, TV도 안보고 인터넷도 끊고 사회적 소통을 끊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그랬다. 마음이 추슬러지지 않아 하루는 배낭을 메고 무작정 쏘다니기도 했다. 주말 내리 꼼짝 않고 드라마를 보기도 했다. 심기일전하여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 평택에서 열린 쌍용해고자를 위한 집회도 다녀왔지만 순간순간 얹힌 것 같은 답답한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생각하기도 행동하기도 싫은 우울증이 온 것 같았다.

그 와중에 그래도 웃음과 위안을 주는 것은 아들 편지였다. 어색한 필체로 삐뚤빼뚤 쓴 아들 편지를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하루에 한번은 편지함을 확인하면서 새 편지를 기다리는 설렘을 가졌다. 그런데 나는 편지를 기다리기만 했지 보낼 줄 몰랐다. 아들이 훈련소에서 편지를 받아볼 수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두 번째 편지를 받고나서 아들과 이런 통화를 한 후에야 알았다.

나 : 욱아, 너도 편지 받을 수 있어?

아들 : 응. 우리 소대에서 편지 못 받은 사람이 나 혼자야.

나 : 어머? 우짜? 훈련소에서 네가 편지 받을 수 있는지 몰랐어.

아들 : 괜찮아. 우리 소대에 여친 있는 형이 있는데 그 형은 여친한테서도 못 받았는데 뭐..

나 : (속으로 아.. 섭섭하다는 소리를 저렇게 하는구나) 미안해. 엄마가 내일 바로 편지 보낼게

엄마가 그런 것도 몰랐으니... 섭섭했을 텐데도 편지 속 아들은 늘 즐거웠다. 편지를 받아보면 말소리만 들릴 뿐 보이지 않는 그 모습은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기도 하고 깔깔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엄마 나 빨리 휴가 가고 싶다. 날짜만 기다리고 있어. 나 엄청 먹을 거야. 이틀 동안 ㅋㅋㅋ. 어디 안가고 먹고 또 먹고 하루에 7끼 먹을 거니까.. 아.. 진짜 엄마 밥 그립다. 근데 여기 콩나물을 진짜 많이 줘. 어떤 형이 그러는데 콩나물이 남성호르몬을 줄이는 역할을 한데. 그래서 그걸 많이 준대. 맞는 말이야?”

“엄마. 나 사람들 땜에 미쳐.. ㅠㅠ. 귀마개 필수품이야. 저번에는 한 형이 코를 너무 심하게 골아서 내가 발로 툭툭 쳤어. 그런데도 계속 고는 거야. 그래서 너무 신경질이 나서 가서 머리통을 한 대 콱 때렸어. 그랬더니 한 1분 안 골더라. 근데 그뿐이야. 또 다시 고는 거야.. 정말 미칠 것 같아.”

“어제 헌혈하면 초코파이, 포카리스웨트 준다길래 바로 했다. 크크크 초코파이가 완전 꿀맛이었어. ㅠ.ㅠ 나 집에 가면 칸초하고 몽쉘, 초코파이, 불량식품 막 먹을 꺼야 !! ㅋㅋ 나 난생 처음 헌혈했는데 나쁘진 않았어. 근데 내 피 받은 사람 아토피 걸리는 것 아냐? ㅋㅋㅋ 엄마 나 여기 와서 피부 완전 거지 됐어. 왜 이러지? 여기 음식이 기름이 둥둥 뜨고 좀 짜. 음식에 기름이 많아서 그런가? 잘 못 씻어서 그런가? 잠을 못자서? 아.. 근데 불침번이란 게 있는데 밤에 복도에서 보초 서는 거야. 그냥 다 같이 잘 때는 몰랐는데 불침번 서고 들어오니까 방 냄새 장난 아니더라... 엄마가 말하는 그 남성호르몬 냄새 장난 아녔어. 그것도 20명에서 나는 그.. 아 ㅠ. 대박이더라 ㅋㅋㅋ”

그전엔 몰랐는데 아들이 고교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이상하게 아침이면 아들 방에서 냄새가 났다. 남편에게 아들 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궁시랑 대니까 ‘남성 호르몬’ 냄새라고 알려주었다. 한창 청년시절에는 그런 냄새가 난다고 이해하라고 했다. 냄새에 속이 울렁거려 공기청정기까지 놓아주었는데 없어지지 않았다. 언젠가 아들 친구가 와서 잤는데 아침에 아들이 방문을 열고 나왔는데, “아이고! 냄새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 두 명이서 자니까 냄새가 더 심한 것 같았다. 아들도 그 냄새가 신경 쓰였는지 겨울에도 늘 방문을 열어놓고 잤다. 그런데 이제 저도 그 냄새를 맡고는 장난 아니라고 하니 엄마를 좀 이해할라나 모르겠다.

아빠에게 쓴 편지 내용도 밝다.

To : 아버지

아빠! 나 욱이야! 잘 지내지? 난 요새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어.

월요일에는 화생방가스 체험하는 날이었는데 난 아토피 때문에 안 해도 된다는 소견서 받아서.. 아 난 살았다. ~! 했는데 방독면만 쓰고 들어가라는 거야. 뭐 그래도 직접 마시는 건 아니니깐 하고 들어갔는데.. 헐 이럴 수가.. 방독면이 새는 거야. 그래서 기침하고 따갑고... ㅠ.ㅠ 그래도 아예 안 쓰는 것보다는 나은 듯.. 딴 애들 얘기 들어보니까 죽다 살았데.. 

오늘은 유격체조 했는데 그냥 3시간 동안 얼차려 받는 느낌? ㅋㅋㅋ 그래도 할만 했어. 

근데 여기 온 지 벌 써 23일이 지났어! 벌써 4주차라니.. 시간 짱 빨리 가. 아! 그리고 일요일 날 우리 이사했어! 새 건물로.. 그 전에 살던 곳은 완전 후졌었는데.. 여긴 완전 좋아! 우리 소대만 쓰는 화장실, 세면장, 샤워실이 따로 있다는! 예전에 샤워하려면 전쟁이었는데.. 아침에 쉬하는 것도.. 이젠 그런 게 없어서 좋아 ㅋ. 전엔 21명이서 썼는데 여긴 16명이서 써. 남성 호르몬 냄새가 덜 나는 듯... ㅋㅋㅋ

이젠 코고는 사람들 코 막는 거랑 반찬 좀 넉넉히 줬으면 하는 것.. 이 2개만 해결되면 최곤데.. 어떨 땐 잠잘 때 코고는 게 거의 폭격수준이야... 좀 많이 심해 ㅠ.ㅠ 반찬도 고기 넘 조금 주고.. 잘 나오지도 않고.. 뭐 자대 가면 괜찮아지겠지. 좋은데 가야 되는데.. 잘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최대의 고민이야. 못 갈 것 같아서 두려워. ㅠ.ㅠ 종평이라고 시험을 잘 봐야하는데 여기 학교선생님도 있고, 고대, 서강대, 변호사 하려는 형 등 똑똑한 사람 은근히 있는 것 같아. 뭐 하튼 1.2.3 지망 떨어지고 울릉도 가게 되면 난 끝장...

아빠는 요새 어때? 연구는 잘 돼가고 있어? 여기 사람들이 아버지가 뭐하냐고 물을 때 과학자라고 하면 놀란다? 완전 대박이래. ㅋㅋㅋ 근데 넌 왜 그러네... -.-;

그리고 엄마에게 수료식 때 여기 올 필요 전혀 없다고 해줘... 집에서 맛있는 거 해놓고 기다려 달라 해줘 ㅋㅋㅋ

여튼 낼 유격랜드 가서 밧줄 타는데 왠지 잼있을 것 같다. ㅋㅋㅋ 그럼 나 이만.. 여기서 잘 지낼게. 휴가 가서 봐~!!

욱이가

아들 편지를 보면 그 어리광스런 말투에서 다정한 느낌에서 나에게 보낸 편지와 별 차이가 없다. 아빠를 편하게 느낀다는 거다.

신혼시절, 남편의 모든 관심은 연구에 있었다. 연구 초기시절이라 퇴근이 늦었을 뿐 아니라, 툭하면 연구실 간이침대에서 자고 왔다. 딸을 낳은 후에도 마찬가지여서 딸 양육에 거의 도움을 주지 않았다. 무심하달까? 아빠가 될 자격이 덜 되었달까? 어쩌다 주말에 쉴 때도 아이가 울거나 말거나 시간만 나면 아무 곳에나 픽픽 쓰러져 잠만 잤다. 영·유아시절 아빠와의 접촉이 부족해서 그런지 딸은 아빠를 좀 어려워한다. 모든 고민을 엄마에게 털어놓는 것뿐만 아니라 아빠에게 뭔가 요구사항이 있을 때도 나를 징검다리 삼길 원한다. 물론 딸은 아빠가 좋은 사람이고, 자신을 무척 사랑한다는 것을 안다. 자신이 아빠의 여러 면을 닮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걸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아빠를 나름 이해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아빠와는 뭔가 삐거덕거리며 이야기가 겉돌 때가 있다.

반면, 아들을 낳았을 때 남편은 양육에 손을 보탰다. 연구에서 한숨 돌린 시기였던 것도 같고, 둘째를 늦은 나이에 낳고 관절이 약해져 아이를 안기도 힘들어하다 보니 남편이 자연스럽게 아이를 돌보게 되었다. 아이를 안아주고 씻어주는 등 피부접촉도 많이 해주었고, 같이 놀아주기도 하는 등 나름 아빠 역할을 해주었다. 그래 그런지 아들은 아직도 아빠와 몸 치대기를 좋아하고 어려워하지 않는다. 어떤 때는 너무 버릇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수위까지 가기도 한다.

딸은 그런 동생과 아빠 사이를 부러워한다. 가끔 아빠가 자기에게는 엄격하고 동생에게는 너그럽다고 투덜거리며 이렇게 말한다.

딸 : 엄마, 아빠는 나를 귀여운 딸로 안 봐줘

나 : 야.. 네가 아빠에게 귀엽게 하냐?

딸은 좀 무뚝뚝하다. 아빠에게 더 살갑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아이는 아들이다. 그러니 아빠도 반응이 그럴 수밖에... 그걸 알면서도 딸은 애교 한번 아빠에게 피우지 못한다. 애교부족도 타고난 것이라 어쩔 수밖에... 지난번 아들 편지에 아빠를 전혀 언급하지 않아서 많이 섭섭해 했는데 이번엔 ‘To : 아버지’ 라 보내주었으니 아빠가 뿅 갈 수밖에...

아들이 군대에 가기 전 남편은 아들에게 “너는 체력에서 누구보다 뛰어날 거야. 그래서 군대 훈련이 별로 힘들지 않을 거야” 했다. 아들이 가진 강점을 수차례 강조해주며 아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내가 선후배 문제를 걱정하면 남편은 아들의 알바생활을 언급하며 어디서든 귀여움을 받을 거라고 걱정 말라고 했다. 남편 말이 맞는 것 같다. 아들 편지를 보면 훈련을 운동처럼 재미있게 받아들이지 힘들다는 소리가 전혀 없다. 또 주변 이들과도 잘 지내는 것 같다. 편지를 본 남편은 자기 말이 맞지 않냐며 흐뭇해하며 말한다.

“쟤는 그냥 두면 돼. 남보다 늦더라도 지가 하고 싶은 일 찾아서 잘 할 거야. 날 믿어.”

남편의 믿음이 부럽다. 나도 그렇게 굳세게 믿어야 하는데... 믿는 만큼 아이들은 한다는데... 딸도 동생이 믿음직하다는데... 왜 나는 아들을 물가에 내 논 아이같이 불안한지... 스스로 고정관념에 박혀있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모쪼록 남편과 딸의 믿음이 나에게도 확~ 전염 되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 2011년 가을 여행에서 남편과 아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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