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려한 휴가>와 <택시운전사>

김미경 편집위원l승인2017.08.11l수정2017.08.20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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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감기에 걸려 골골 하고 있는데 식구들이 영화를 보러 가잔다. <택시운전사>다. 나 빼고 가라 하니 굳이 아픈 나를 끌고 가야겠단다. 사정도 해보고 짜증도 부려봤지만 애절힌 눈빛을 저버릴 수 없어 긴팔 옷을 챙겨 입고 갔다.

감기도 감기지만 그 영화를 아이들과 보러가기 싫은 이유 중 하나는 그 참혹함을 눈물 없이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 앞에서 우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10년 전 <화려한 휴가>를 보러갔을 때 얼마나 울었던가! 2007년 8월에 개봉한 <화려한 휴가>는 1980년 광주에서 전두환 일당이 자행한 국가폭력의 민낯을 시작부터 끝까지 보여준 영화다. 15세 이상가 심의를 통과하기 위해 진짜 잔인한 장면은 뺐다고 했음에도 심장이 오그라들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영화다.

<화려한 휴가> 시작 후 몽둥이로 학생들을 때리는 장면부터 몸은 굳어졌다. 내가 맞은 것처럼 움찔움찔대면서 발끝까지 저릿저릿해졌다. 이유도 모른 채 아들을 잃은 눈 먼 어머니의 고통이 엄마 마음으로 전달되어 마음이 찢어졌다. 마음이 찢어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때 알았다. 죽음을 향해 떠나는 남편을 잡지 못하고 소리 죽여 우는 여인의 고통 또한 내 마음을 파고들어 나도 소리 죽여 꺽꺽 울었다. 전남도청에서의 마지막 날, 어떻게 해서든 제자를 살리고 싶어 한 선생님은 총에 맞아 쓰러졌음에도 제자의 입을 손으로 꼭 막았다. 한 번 더 총에 맞아 힘없이 그 손을 뚝 떨어뜨리는 절절한 장면에서는 분노와 슬픔으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호소하는 신애의 그 처절한 목소리가 나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 같아서 영화가 다 끝나고 모든 사람들이 자리를 떴음에도 격해진 감정을 다스릴 수 없어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화려한 휴가>에 대하여 내가 아는 광주사람 ‘무등을‘님은 두 가지가 아쉬웠다고 했다.

“실제는 더 참혹했어요. 대검 살해도 있었지요.”

“광주의 아름다운 열흘 공동체에 대한 묘사가 부족했어요. 그 때 광주에서 구현된 완벽한 대동세상은 광주가 이름처럼 빛의 고을이며 아시아의 빛일 수 있음을 증거한다고 생각합니다.”

<택시운전사>는 광주항쟁 초반만 보여준다. 아주 정직하게 독일기자 피터의 눈으로 본 광주항쟁만 나온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잔인해지는 <화려한 휴가>보다는 덜 참혹했지만 ‘무등을’님이 말씀한 빛고을 사람들의 ‘대동세상 공동체’는 영화 전반에 걸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그들은 열흘 동안 '내 것 네 것' 가리지 않고 한 식구처럼 조건없이 나누며 살았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 아들과 남편은 이런 대화를 주고 받는다.

남편 : 송강호는 대단한 배우야. 정말 연기 잘하네.
아들 : 응 맞아.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 듣던 것 보다 훨씬 생생하게 와 닿네.
남편 : 택시운전사는 죽였을 지도 몰라.
아들 : 누가?
남편 : 누구긴 누구야. 000 일당이겠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였으니까 나타나질 않는 거라 생각해.
아들 : 아놔... 전두환이 저렇게 그냥 둬도 되는 거야? 다시 잡아들여서 무기징역이나 사형시켜야 되는 것 아냐? 그런 방법이 없는 거야?”
남편 : 한 번 형을 언도 받고 사면까지 받았으니 힘들겠지. 독일처럼 이런 범죄는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아들 : 아놔... 정말 이런 나라가 어디 있어? 내가 가서 직접 잡아오고 싶네.

캐나다에서 청소년기를 지낸 아들은 우리나라 사회 문제에 대해 좀 어둡다. 군대에 있을 때도 군에서 듣는 말과 엄마가 하는 말이 차이가 많이 난다고 했다. 작년 여름부터 한국 사회문제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틈만 나면 인터넷으로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아빠와 이야기 나누길 즐긴다. 촛불시민혁명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영화 관람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 주고받은 남편과 아들을 보면서 '아들이 완전 공감했구나' 하는 생각에 잘 보고 왔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기 전 아들이 실감하지 못했던 것처럼, 광주항쟁은 그 당시를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믿기 어렵다. 영화에서 이런 대화가 나온다. '우리에게 왜 이런데요?' 그들도 당시 벌어지는 국가폭력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처럼 제 3자도 도저히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던 거다. <화려한 휴가>에서 신부님은 아주 간단명료하게 왜 그러는지 말해준다. '잘 있는 개를 자극해서 짖게 만들고 그 개가 짖는다고 두들겨 패서 죽여 놓고는 동네 사람들을 향해 몽둥이를 들어 보이며 우리가 조용히 만들어 주었느니 고마워해' 하는 거라고...

이번 촛불시민혁명을 빼고, 한국근현대사를 보면 대부분 항쟁들은 주로 봄의 '피'를 먹고 일어났다.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인 3월고부농민봉기, 3.1만세운동, 4.19학생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까지... 봄의 '피’없이 이루어진 항쟁은 없다. 이렇듯 핍박받는 자들이 하나라도 얻기 위해선, 늘 ‘피’가 필요했다. 진실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진실을 가리고 싶어 하는 집단이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진실이 담긴 필름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놓은 '빛고을 공동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광주의 진실은 세상에 드러났고, 우리나라의 민주화는 한 단계 도약했다.

그 피의 시간, 그 피의 장소에 없었다는 것 하나로 나는 살아있다. 그들의 죽음 덕에 그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자유라는 것을 누리며 살고 있다. 사랑하는 자식과 형제 부모님을 잃고 남겨진 그들 가족의 고통 덕에 나는 웃고 떠들며 내 가족들과 살고 있다.

어떻게 그들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을까?

예전 <화려한 휴가>가 나왔을 때 흥행에 성공하는 것과 후속편이 줄줄이 나오는 것이 그들에게 진 빚을 갚는 거라 생각했다. 광주항쟁 27년 지난 2007년 나온 <화려한 휴가>는 누적관객 수가 약 700만이다. 5년 후 2012년, 약 300만이 본 영화 <26년>은 광주항쟁 희생자 2세의 복수 이야기다. 다시 5년이나 지나 2017년, <택시운전사>가 개봉했다. 현재까지 누적관객 700만명이 넘었다. 1500만이 넘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본다는 것은 그날의 진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거다. 진실을 안다는 것은 그들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거다. 그들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과 함께 하겠다는 거다. 함께 한다는 것이 바로 그들에게 진 빚을 갚는 거라 생각한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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