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남편이 갑작스레 어릴 적 살았던, 겨우 초등학교만 다녔던 마을을 나와 함께 가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한 시간 정도 운전해서 남편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지방에 도착하였습니다. 그이는 예전 이웃에 살았던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놀던 어린 시절 친구 소식도 물었지요. 학교 박물관에 들렀는데 뜻밖에도 선생님으로 재직하셨던 시아버지 사진도 보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그이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려주었습니다. 듣고 있노라니 아버지와 함께했던 나의 어린 시절 추억도 떠올랐습니다.

▲ 남편이 다녔던 초등학교 박물관

어렸을 때 여름방학을 맞아 몇 번인가 나들이를 갔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와 큰 오빠는 각자 자전거를 탔지요. 아버지 자전거에는 나와 남동생을 태웠습니다. 가난했던 그 시절, 이런 나들이는 기대가 큰 즐거움이었지요. 우리는 자이(嘉義,가의) 타이빠오(太保, 태보)촌에서 살았습니다. 한번은 자이 시내를 지나서 영화를 봤던 기억도 나고요(자전거로 약 3시간 거리). 매번 나들이를 가면 아주 늦게야 돌아오곤 했습니다. 가로등도 없는 작은 시골길을 지나게 되면 아버지 자전거에 달려있는 랜턴을 켜서 길을 비추고, 오빠가 앞에서 달리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와 동생에게는 아빠를 꽉 붙잡으라고 했지요. 아버지는 우리가 지쳐서 잠들까봐 걱정을 하시고 우리에게 노래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노래해! 다시 좀 더 크게”라고 말씀하셨지요.

밤이 깊어가던 그 여름, 우리는 논밭을 지나고, 넓은 사탕수수밭도 지나 정적에 쌓인 작은 시골 마을에 들어섰습니다. 우리 노랫소리가 그만 잠든 개들을 깨우고 말았답니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무섭게 짖어대며 날뛰는 개들. 아버지와 오빠는 있는 힘을 다해 자전거패달를 밟았고, 우리는 또다시 서서히 어둡고 적막한 작은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짙은 어둠속에서 갑자기 놀란 개구리 울음소리와 새소리를 벗 삼아 나아갔습니다. 아버지가 모는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오른쪽 왼쪽 수풀 속에서 출몰하는, 친구들이 이야기해준 전설속의 귀신불(반딧불)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나는 몹시 겁이나 더욱 힘을 주어 아버지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아버지는 한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아버지를 힘주어 붙들고 있는 나의 작은 손을 감싸주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혹 잠이 들면, 두 손이 풀려 자전거에서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요. 아버지가 불쑥 우리 이름을 부르면, 우리는 큰 소리로 대답하여 잠들지 않았음을 알렸습니다. 남동생과 저는 반은 잠든 상태로 비몽사몽 흔들거리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비오는 날에는 아버지가 케이크를 만들어 주셨지요. 그릴에 구워주는 케이크가 아니라 따통(역주: 대만의 오래된 유명 가전회사) 전기밥솥으로 만들었습니다. 계란을 깨고 케이크 모양이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요. 우리 한 무리 꼬마들은 아버지 주위를 에워싸고 아버지만 주시했답니다. 아버지는 힘껏 계란을 젖고 밀가루를 넣어 반죽을 한 다음 따통 전기밥솥에 넣어 쪄냅니다. 아버지가 맛있는 냄새가 풀풀 나는 케이크를 꺼내 작은 조각으로 나눌 때, 우리 8명 꼬마들은 손을 내밀었지요. 한명이 한 조각씩 입안으로 밀어 넣으면 케이크는 금세 사라졌습니다. 아버지는 다시 계란을 깨고, 우리들은 또 아버지 주위를 에워싸고 다음 번 케이크가 밥솥에서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비가 계속 내리면 아버지의 케이크도 쉬지 않고 만들어졌지요. 온 집안이 케이크 향기로 가득 찼지만 정작 내 배는 부를 줄 몰랐습니다.

▲ 결혼을 앞두고 돌아가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일본 교육을 받으셨지요. 평상시 일상생활에서도 우리에게 몹시 엄격하셨습니다. 책꽂이 위의 책, 책가방, 학교모자, 신발은 아버지가 정한 위치에 반드시 가지런히 놓여있어야 했습니다. 만약 어질러진 체로 있다가 아버지가 돌아와 눈에 띠면 화를 내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가 멀리 작은 길에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시는 모습이 보이면, 우리를 불러 빨리빨리 물건을 치우고 가지런히 제자리에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우리는 문가에 서서 “아버지 돌아오셨어요.”라고 합창했지요.

아버지의 식탁예절은 참 많았습니다. 식사 중에는 말을 못하게 하셨고, 밥그릇은 단정하게 놓여있어야 했으며, 밥알이 식탁이나 바닥으로 떨어져도 안 되었고, 밥공기 안에 밥알이 남지 않도록 깨끗이 먹어야했습니다. 두 팔을 벌려 식탁위에 올려놓아서도 안 됐습니다. 좋아하는 반찬이 어디에 놓여있던, 자기 자리 가까이에 있는 반찬만 집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 아버지랑 함께 식사를 하게 되면, 밥 먹기 전에 저는 우선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어디에 놓여있는지 보고, 그 반찬 앞에 앉았습니다. 평상시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오시기 전에 우리에게 먼저 밥을 차려주셨고, 혼자 기다렸다 아버지가 오시면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 夜下父親和我(깊어가는 밤에 아버지와 나)          라문황 작

우리 집은 일본식 다다미방이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먼저 잠을 자고, 나중에 아버지가 취침을 하시는데, 아버지는 이리저리 널브러져 잠든 우리들을 하나하나 끌어와 똑바로 누이고 가지런히 재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언제나 옆으로 자기를 좋아해서, 아버지가 나를 똑바로 가지런히 누이면 잠결에 몸을 뒤집었습니다. 아버지는 ‘딱’소리 나게 엉덩이를 세게 때렸습니다. 잠이 깨어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가, 아버지 코고는 소리가 들리면 그때서야 옆으로 돌아누워 잠을 잤지요.

어릴 때 아버지가 만약 며칠 집을 비우시면 우리 집은 그날이 바로 ‘광복절’ 해방의 날이었습니다.

만세! 아, 자유!

저는 광복절을 좋아했지요. 하지만 비오는 날을 더욱 좋아했습니다.

(번역: 김동호 대만주주통신원)

憶父親

昨天外子突然說他想帶我去看看他小時候住過的地方和就讀過的小學。開了一個小時的車程,到了他童年住過的地方,他和舊居隣家的老奶奶聊聊過去,也問問小時候玩伴的消息,在學校裡意外的看到了學校博物館呈列的相片中,也有我公公當年教學的相片,走到每一個地方,他就一一的陳述著他的童年往事。聽着聽着,我也想起了我的童年往事,我的父親。

在記憶中,童年的暑假裡,有幾次出遊,父親和大哥各自騎著一輛脚踏車,父親載著我和大弟,在那貧窮的時代,這樣的出遊是很期待的,我家住在嘉義太保村,記憶中,有一次好像到過嘉義市區看電影(車程約需3個小時)。每次出遊回程都很晚,在那没有路燈的鄉間小路上,爸爸用他的脚踏車燈照着路面,讓大哥騎在前面,爸爸要我們緊抱着他,爸爸怕我們累了,會睡着了,就教我們唱歌。爸爸會說:大聲唱,再唱大聲點。在那夏夜裡,我們穿過稻田,穿過大片的甘蔗園,穿過寂静的小村庄,我們的歌聲驚醒了入睡的狗狗,突然間熱鬧的叫吠聲彼起彼落,爸爸和大哥用力的踩着脚踏板,慢慢的,我們又騎進了寂静的田野小路,黑暗中蛙鳴聲伴着我們,坐在爸爸脚踏車後座的我,看到了左右草叢裡有同學傳說中的鬼火(螢火蟲)出没,我很害怕,更用力的緊抱著爸爸。爸爸會一手緊握着脚踏車的把手,一手握住我那緊抱着他的小手,爸爸怕我們睡着了會放開雙手,掉落脚踏車下。爸爸也會不時的叫着我們的名字,要我們大聲回答,表示没有睡着了。大弟和我就這樣半睡半醒的,摇摇晃晃的回到家。

下雨天,爸爸會做蛋糕,但不是用烤箱烤,是用大同電鍋烤。從打蛋到烤好

變成蛋糕需要很長的時間。我們一羣孩子就圍著爸爸,看著爸爸很用力的把蛋打散加入麵粉,放入大同電鍋烤。當爸爸取出香噴噴的蛋糕切成小片時,我們8個孩子伸出手,很快的一人一片塞入嘴中,蛋糕没有了。爸爸又開始打蛋了,我們又圍著爸爸,等待著下一鍋蛋糕出爐。

就這樣雨一直下,爸爸蛋糕一鍋鍋的烤著,家裡都籠罩在蛋糕的香味中,但是我的肚子都填不飽。

爸爸是受日本教育的,對我們的日常生活很嚴格,書架上的書,書包,學校帽子,鞋子都要一個個按照他规定的位子擺放整齊,如果没有放整齊,爸爸回家看到了就會生氣,所以媽媽看到爸爸從遠遠的小路上騎著脚踏車回來時,媽媽會叫我們快快把東西收好,

擺整齊,然後站在門口說:爸爸您回來了。

爸爸的吃飯禮節很多,吃飯不准講話,要端碗,

飯粒不可以掉到桌上或桌下,碗内飯粒要吃乾净。雙手臂不可以張開靠在桌上,不管你喜歡的菜放哪儿,夾菜也只能夾你面前的。所以小時候如果和爸爸一起吃飯,我吃飯前都先看看我喜歡的菜在哪邊,我就坐那盤菜前面。媽媽總會在爸爸回家前讓我們先吃飽。媽媽自己一個人等著爸爸回家一起吃飯。

我家是日式榻榻米房子,我們小孩先睡了,等爸爸要睡時,他會把東翻西滾的我們,一個個拉平讓我們一個個躺得整整齊齊,但我總是喜歡侧睡,當爸爸把我拉平,讓我躺整齊時,我在睡夢中又翻了身,爸爸會(啪)很大力的打我屁股,我醒了,不敢動,直到聽到爸爸的打鼾聲,我再翻身侧睡。

小時候,爸爸如果幾天不在家,我們家就是(光復節),

萬歲!很自由。

我喜歡光復節,但更喜歡下雨天。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라문황 주주통신원  low0309@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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