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온 지 벌써 9개월이 되어간다. 6개월이 지났으니 잘릴 대상에서 제외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1년이 되어가는 포닥(박사 후 과정) 학생이 ‘스스로 연구비를 따오던지 아니면 올해까지만’이라는 최후통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직 장담은 못하지만 나는 올 한해는 어찌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 주 금요일 실험결과에 호랑이 교수님이 “I love your data"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나의 호랑이 교수님... 정말 호랑이 같기만 할까?

처음에 몬트리올에 왔을 때 서먹서먹했던 실험실 식구들은 아주 친근해졌고, 어려웠던 교수님도 이제는 조금 친근해지고 편해졌다. 교수님을 펀하게 느끼게 된 데는 회식 영향이 크다.

연말 연초가 되면서 각 실험실에서는 회식 날짜를 바삐 정하기 시작했다. 우리 실험실도 날짜를 정했다. 실험실에 들어온 이후 2번째로 갖는 회식인데, 사실 회식이란 단어보다는 ‘파티’란 말이 더 어울린다. 한국에서 경험했던 엄숙하고 격식 있는 어색한 분위기완 다르게 다들 지위와 나이에 신경 쓰지 않고 이 날만큼은 자유스러운 파티처럼 편하게 즐기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첫 번째 경험한 회식은 별장파티라고 부르는 것이 잘 어울릴 것 같다. 최근에 교수님이 몬트리올 근방에 있는 별장을 사셨는데 주말마다 별장에 놀러간다고 하셨다. 우리는 농담조로 우리도 초대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 진짜로 우리를 초대한다고 이메일을 보내셨다.

그렇게 8월 10일 얼떨결에 첫 회식 겸 단합대회를 갖게 되었다. 교수님은 별장파티가 있기 전날 준비해야한다며 3시 정도에 퇴근을 하셨고, 우리는 금요일 아침, 다 같이 일을 땡땡이 치고, 돈을 모아 먹고 마실 것 등을 산 후 몬트리올에서 1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별장으로 향했다. 수영복을 챙겨오라는 말씀에 수영복도 챙겨갔다.

▲ 소박한 별장

별장에 도착했을 때 교수님은 이미 수영복 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계셨다. 평소 실험실에선 볼 수 없었던 해맑은 미소를 지으시며 시원한 맥주를 한 캔 따 건네주셨다. 내가 생각했던 호화로운 별장과는 달리 소박한 별장이었다. 길거리에서 주워왔나~ 생각들 정도로 오래된 큰 테이블과 의자가 테라스에 있었다. 실내는 마치 1980년대 있을법한 소파와 테이블 그리고 오래된 스토브와 냉장고가 있었다. 항상 완벽하고 칼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교수님이라 완벽하지 못하고 허술하며 낡은 느낌이 나는 별장에 오히려 친근감이 들며 한결 편안해졌다.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교수님은 보트를 타러가자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으라 하였다. 다들 주섬주섬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교수님을 따라 별장 아래 호수로 향했다. 조금 내려가니 푸르른 호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교수님의 흰색 보트가 햇빛을 받아 반짝 거리고 있었다. 교수님은 우리를 위해 수상스키, 튜브들을 보트 안에 실었고, 보트에 시동을 걸으며 맥주 한 캔씩을 또 따주셨다.

▲ 우리 모두 함께 찰칵

곧 보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휴양지 느낌에 어울리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호수는 정말 아름다웠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고, 오직 파란 하늘, 따뜻한 햇살, 햇살을 맞아 반짝거리는 푸른 호수가 있을 뿐이었다. 실험실 식구들 얼굴에서 모두 실험실의 긴장되고 심각한 표정은 사라지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로 대화를 즐기고 있었다.

▲ 자신만만했던 소피안(오른쪽)

 

▲ 교수님 수상스키 실력은 선수급

호수를 한 바퀴 돌고 나서 보트를 잠시 멈추더니 교수님이 수상스키를 타보라고 하셨다. 실험실에서 제일 운동신경이 좋은 알제리 포닥 소피안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시도 해보겠다고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자신감 넘치던 표정과는 달리 수상스키 위에 서질 못하고 물속에서 계속 허우적거렸다. 실험에서도 포기를 모르고 뛰어난 질김을 보이는 소피안은 여러 번 시도 끝에 3초간 서있기에 성공하고는 물속으로 풍덩 빠졌다. 소피안이 처절하게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본 친구들은 나를 포함하여 모두 수상스키 타기 시도 자체를 거부했다.

▲ 튜브 타는 나와 클라우디아

자연스레 다음 종목은 튜브 타기가 되었다. 보트가 앞으로 움직이면 뒤에 매달려있는 튜브가 통통 튀기면서 호수의 파도를 타는 놀이인데, 보통 2명이 튜브를 타고 떨어지지 않도록 손잡이를 꼭 잡고 있어야 한다.

첫 번째 주자는 나와 박사과정을 같이 하고 있는 클라우디아. 우리는 파이팅을 외치며 튜브에 매달렸다. 보트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처음엔 파도를 타는 게 재밌어 클라우디아와 같이 시시덕거리며 이거 별거 아니잖아? 하면서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별안간 교수님이 보트를 좌우로 마구 움직이기 시작했고, 서로 말은커녕 눈도 뜨지 못했다. 나는 극기훈련이라 생각하고 튜브에 매달려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클라우디아가 괜찮은지 눈을 살며시 떠보니 그녀는 온데간데없었다. 뒤를 보니 물속에 빠져 있었다. 나도 '에라 모르겠다'고 손을 놓아버렸고 호수로 풍덩 빠졌다.

그렇게 사람들이 돌아가며 튜브타기를 즐겼다. 노래를 들으며 다 같이 덩실덩실 춤도 추었다. 다들 허기가 지자 별장으로 돌아와 바비큐를 해먹었고 디저트로는 마시멜로를 장작에 구워 초콜릿과 과자에 얹어 먹었다.

▲ 마시멜로 구워 먹기

저녁 7~8시쯤 되니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하루 종일 우리를 대접하느라 여기저기 뛰어다니셨던 교수님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너무 재밌었다면서 신나게 떠들었다. 신나게 놀고먹어서인지 다들 차안에서 골아 떨어졌다.

두 번째 회식은 크리스마스 전이었다. 이번에는 교수님이 자기 집으로 실험실 식구들을 초대했다. 일을 일찍 끝내고 5시 30분 정도 다 같이 교수님 집으로 가니 각종 와인, 칵테일, 애피타이저가 예쁜 크리스마스트리와 함께 준비되어 있었다. 이번에도 교수님은 무엇을 마시고 싶은지 물어보고 기호에 따라 칵테일을 만들어주거나 와인을 따라 건네주었다. 그리곤 다 같이 동그랗게 앉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며 각 나라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한 시간 정도 대화 후 근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캐나다는 한국과 다르게 공금에서 사용할 수 있는 회식비용이 없다. 그래서 실험실 회식을 할 경우 무조건 사비, 대부분 교수님 주머니에서 지불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비싼 스테이크 집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주셨고 다들 먹고 싶은걸 고르라 했다.

▲ 교수님 집 앞에서

밥을 다 먹고 교수님 제안으로 교수님 집으로 3차를 갔다. 몬트리올 식당은 술값이 아주 비싸다. 단체로 술을 먹기에는 좀 부담되었던 것 같다. 집에 도착하자 교수님은 우리를 위해 와인을 따르고, 칵테일을 만들고, 케이크도 썰어주고, 커피도 타주었다. 그러곤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강남스타일을 틀어주시며 춤을 보여 달라 하셨다. 사실 한국에서 강남스타일 춤을 춘 적은 거의 없지만, 술김에 ‘될 대로 되라지’하고 대충 몸 가는대로 막춤을 추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교수님도 어설프게 동작을 따라 하며 추기 시작했고 곧 모든 실험실 식구들이 강남스타일을 추기 시작하였다. 너무나 웃기면서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마음이 따듯해지는 순간이었다.

▲ 처음엔 점잖던 분위기가 나중에는 막춤 분위기로 ㅎㅎㅎ. 우리를 위해 계속 뭔가를 만들고 계신 저 뒤의 교수님.

지나고 보니 회식 날 그 날만큼은 교수님이 호랑이 교수님이 아니라 옆집 아저씨처럼 털털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대화도 실험이 아닌 인생 그리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다 같이 긴장을 풀고 자유롭게 즐겼다.

사실 이런 분위기가 처음부터 익숙하고 편했던 건 아니다. 술을 두 손으로 받고 따르고, 고개를 돌려 술을 마시고, 혹시나 무례하지는 않았는지... 항상 벌 서듯 긴장 하고 치렀던 한국 회식과는 정반대였기에 처음엔 어쩔 줄 몰랐다. 내가 하는 행동이 왠지 예의에 어긋나는 거 같아서 교수님 이름을 잘 부르지도 못했다. 술을 줄 때면 두 손으로 받아야 할 거 같아 손이 허둥지둥 거렸지만, 모두들 편하게 서로를 친구처럼 대하는 걸 보고는 나도  덩달아 편하게 분위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회식이라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에선 칼 같고 냉정한 교수님이지만 회식 때만큼은 철저히 우리를 위해 열심히 뛰는 모습이 참 보기 좋고 고맙다. 나이, 학벌, 직업, 인종, 성, 지위 등등을 따지지 않고 기본적으로 개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사회이기에 이런 회식 문화가 가능한 게 아닌가 싶다.

실제 우리기관 엘리베이터 옆에는 이런 글이 있다.

‘개개인은 존중 받아야한다. 개인의 인격을 무시하는 행위는 폭력과 마찬가지다. 소리 지르는 행위, 뒤에서 남을 흉보는 행위 등은 철저히 금지되어야 하고 이런 일이 있을 때는 xxx로 연락 바란다.’

이 글을 볼 때면 나의 인권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나도 항상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우리기관은 다양한 직종이 어우러져 있는데 직종이 무엇이든 항상 서로 웃으며 인사하고 안부를 물으며 기본적인 매너를 지킨다.

한국도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학교로부터 개인을 존중하라고 배웠고 윗사람을 공경하라고 배웠다. 하지만 지위가 높거나 나이가 많아지면 종종 ‘존중’에 대한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 같다. 서로 존중하지 않으면 각 계층 간 거리가 생기게 되고, 결국 대립과 갈등만 형성되는 것 아닌가?

본인이 갖고 있는 ‘타이틀’이 그렇게 중요한 걸까? 서로에 대한 존중을 상실할 만큼 가치 있는 걸까? 잠시 무시하고 있던 개인에 대한 존중을 되새기면서 주위사람들을 대하면 좀 더 밝고 평화로운 사회가 될 것 같은데... 아쉬운 마음에 그런 생각을 한 번 해본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이지산 주주통신원  elmo_part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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