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쇄원 가는 농로에서 만난 구렁이, 이른 봄 다사로운 햇볕을 쬐며 체온을 조절하고 있다.

구렁이입니다. 무섭고 징그럽습니까? 저도 깜짝 놀랐지만 한편 반가웠습니다. 어릴 적 고향에서 본 구렁이를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곳에서 조우할 줄이야! 국립공원 무등산 깃대종 털조장나무를 보러 광주에 갔다가 내친김에 한국의 전통 정원 소쇄원도 둘러보려고 담양까지 갔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 소쇄원 근처 농로 따라 가다가 길가에서 전혀 예기하지 않은 구렁이를 만났습니다. 삼동 겨우내 땅속에서 잠자면서 지내느라 기력이 쇠진하고 추웠을까, 꼬리 일부는 다 드러내지 못하고 그냥 구멍 속에 넣어 놓은 채 밖으로 나와 꿈쩍도 않습니다. 따뜻한 봄볕을 쬐며 체온을 덥히고 있나 봅니다.

 보시기에 좀 징그러울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늘은 구렁이를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분류학상 척삭동물문(Chordata) 파충강(Reptilia) 유린목(Squamata) 뱀과(Colubridae) 뱀속(Elaphe)에 해당합니다. 국제적으로 “Elaphe schrenckii Strauch(1837)”이란 학명으로 통용됩니다. 세계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에 분포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서식합니다. 먹구렁이와 황구렁이도 있습니다만 색깔만 다를 뿐 학술적으로는 구렁이와 같은 종이랍니다. 세줄무늬뱀과 누룩뱀은 구렁이 사촌쯤 되는 녀석들입니다.

 산림지역, 호수, 하천, 경작지, 민가 주변을 비롯하여 서·남해안과 섬 지역에서 주로 관찰되지만 개체 수가 매우 적습니다. 다람쥐, 등줄쥐, 청설모와 같은 소형 설치류를 비롯하여 조류와 양서류까지 잡아먹고 삽니다. 조류의 경우 둥지 안에 있는 알과 갓 태어난 새끼를 즐겨 먹습니다. 4월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5월부터 6월까지 짝짓기를 합니다. 암컷은 7월부터 8월까지 보통 8~22개의 알을 산란하며, 45~60일 후에 부화합니다. 11월부터 산사면의 땅속, 바위틈, 돌담 등에서 겨울잠을 잡니다.

 몸 전체 길이는 1.1~2m 정도 나갑니다. 국내에 서식하는 뱀 종류 중에서는 가장 큰 종이지요. 개체에 따라 몸 색깔의 변이가 심합니다. 등 면은 검은색, 암갈색, 황갈색 등 다양합니다. 배 면은 대부분 황백색, 회백색이며, 흑갈색의 반점이 산재한 경우도 있고 반점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몸통 가운데 비늘 열은 대부분 23줄이며, 바깥쪽 3~5줄을 제외하고 나머지 비늘에는 용골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내 고향에서는 구렁이를 흔하게 만나 봤습니다. 동네 뒷동산에서도, 올벼 논 새를 보다가 논두렁에서도 구렁이를 만났습니다. 한번은 우리 집 울안 채전밭 울타리 근처에 엄청 큰 구렁이가 나타난 적이 있었습니다. 깜짝 놀랍고 무서워 달려가 어른들께 말씀드렸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머리카락을 가져다 태워 냄새를 풍기며, 잘 들리지 않는 소리로 뭐라고 혼자서 중얼거리시며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우리 집 수호신 ‘임자’의 현신으로 생각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구렁이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종입니다. 환경부에서 법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는 희귀종입니다. 몸에 좋다는 헛소문에 성행하는 밀렵과 무분별한 개발로 서식지가 갈수록 파괴되어 개체수가 급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밀렵을 강력히 단속하고 서식지를 적극 보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국가기관 및 학계에서는 구렁이의 증식 및 복원을 위한 연구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어릴 적 어른들은 그해 이른 봄 맨 먼저 만나는 미물로 한해 운세를 점쳤습니다. 알록달록한 꽃나비를 만나면 고운 옷을 입을 수 있고, 흰나비를 만나면 상을 당할 조짐이라 하였습니다. 벌을 만나면 벌처럼 부지런해지고, 능구렁이를 만나면 능구렁이처럼 게을러질 징조라 하였습니다. 나는 올해 구렁이를 맨 처음 만났으니 정말 구렁이처럼 게을러질까요? "내사 게을러져도 괜찮으니 온 몸에 햇볕 충분히 받아 차가운 피 따뜻하게 올리려무나! 기력 회복하고 몸 관리 잘 하여 좋은 배필 만나 자손 많이많이 늘려라!" 빌어 봅니다. "구렁이야, 구렁이야, 안녕!"

※참고 :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https://species.nibr.go.kr/index.do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이호균 주주통신원  lee1228h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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