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화원’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그 중 야생화 화원은 태백산 인근 함백산, 금대봉, 대덕산과. 지리산 노고단, 그리고 점봉산 곰배령이 아닐까 한다.

점봉산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존지역이다. 점봉산에 속한 곰배령은 1987년부터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입산이 통제되고 있다. 덕분에 국내에서 생태보존이 가장 잘 된 곳이라 한다.

귀둔리 점봉산 분소에서 곰배령으로 오르는 구간은 국립공원관리공단 탐방예약제 구간이다. 올해는 1차 4월 21일~10월 31일, 2차 12월 18일~12월 31일에만 열린다. 인터넷으로만 예약이 가능하며 한 사람이 최대 2인까지 예약할 수 있다. 하루 입장 인원은 최대 300명이다.

점봉산 분소에서 곰배령을 향해 가는 길은 전체 3.7km로 2.8km는 계곡을 낀 나무가 울창한 숲길이다. 곰배령 전방 0.9km는 계곡과 헤어진 오르막길이다. 나무계단이 연이어 나올 정도로 가파르다.

▲ 울창한 숲길과 계곡

귀둔리 점봉산 분소에서 입장 허가권을 받는데 직원이 어제는 비가 많이 왔고 오늘은 날씨가 따뜻하므로 뱀이 나올 수 있다고 주의를 준다. 탐방허가 시간도 4시까지이므로 곰배령에서 늦어도 2시에는 하산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입구를 통과해 처음 만난 식물은 병꽃나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보통 병꽃나무 꽃은 아래로 매달려 있는데 이 꽃은 고개를 꼿꼿이 들고 서있다. 왜 그럴까 궁금하다. 혹 곰배령의 정기를 받은 변종은 아닐까? ㅎㅎㅎ

▲ 왼쪽은 지난 4월 14일 북한산에서 만난 병꽃나무, 오른쪽이 이번에 만난 병꽃나무

그 다음 만난 식물은 개망초다. 개망초는 망초보다 키가 작지만 꽃은 더 크고 예쁘다. 꽃 모양이 계란 같아 계란풀이라고도 부른다. 망초(亡草) 이름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철도를 깔 때 침목을 미국에서 들여왔다. 그 침목에 씨가 묻어왔는지 기차 길 옆으로 하얀 꽃이 피었다. 번식력이 좋아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 않아 농부들이 “에이, 이 망할 놈의 풀“이라고 부른데서 이름 붙었다 하기도 하고, 일본이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기 위해 퍼트린 풀이라 ‘망국초’라 불렀다가 망초가 되었다 하기도 한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농부들이 꽤나 싫어한 것 같다.

▲ 개망초

산딸기가 군락을 지어 자라고 있다. 건드리면 툭 떨어질 정도로 잘 익었다. 뱀이 좋아한다는 뱀딸기라면 무서워서 근처에도 가지 않았을 텐데... 야생으로 자라는 딸기는 산딸기, 줄딸기, 멍석딸기, 뱀딸기가 있는데 뱀딸기만 맛이 없고 다른 딸기는 먹을 만하다. 오며가며 서리해서 실컷 먹었다.

▲ 왼쪽이 곰배령에서 만난 산딸기, 오른쪽이 뱀딸기(사진 출처 : 익생양술대전)

산과 들 양지바른 길가에 낮게 피는 꿀풀은 꽃을 따서 쪽쪽 빨면 꿀이 나온다 해서 그리 부른다. 흔한 풀이라 귀히 여기지 않지만 어린 순은 먹기도 하고, 줄기는 물이 진하게 드는 염료이고, 꽃에 꿀이 많아 벌을 치는 농가에서 밀원식물로 재배하기도 하는 쓰임새 많은 식물이다.

▲ 꿀풀

수술이 꽃잎보다 길고 많아 마치 흰 털이 가득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터리풀이 참 곱게도 피었다. 터리풀은 국내에서만 자생하는데 깊은 산 계곡 주변이나 축축한 땅 양지에서 주로 자란다. 이 길이 딱 그런 길이다.

▲ 터리풀

노루오줌은 뿌리에서 노루오줌 냄새가 난다하여 이름 지어졌다는 설도 있고, 노루가 물 마시러 오는 물가에 핀다고 지어졌다는 설도 있다. 길가에 서서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라고 예쁘게 인사하는 꽃인데 노루오줌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터리풀과 비슷하지만 포실포실 온기를 주는 꽃 같아 따뜻함이 느껴진다.

▲ 노루오줌

까치 수염을 닮아 이름 붙은 큰까치수염은 까치수염보다 잎이 크고 넓다. 꽃은 약간 분홍빛이 도는 술과 다섯 장의 꽃잎을 가졌다. 이 꽃들이 꽃대에 진주같이 촘촘히 박혀 굉장히 예쁘다. 산이 깊어서인지 6~7월이면 피는 꽃이 아직 몽우리만 달고 있다. 꽃을 보지 못해 아쉽다.

▲ 큰까치수염

초롱처럼 생긴 유명한 초롱꽃도 보았다. 밤이 되면 누구를 위해 등을 밝혀줄까?

▲ 초롱꽃

지난 5월 말에 서리산에서 만났던 청초한 고광나무도 또 만났다.

▲ 고광나무

우산나물은 새순이 돋아 잎이 나올 때 마치 우산이 펼쳐지듯 나온다 하여 우산 자가 붙었다. 6~9월에 꽃이 피는데 아직 개화하지 못했다. 꽃망울만 달았어도 참 예쁘다. 우산나물은 독이 없고 참나물 같은 맛과 향이 있어 어린잎은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고 날로 먹을 수도 있는 고마운 나물이다. 

▲ 우산나물(우상 사진 출처 :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관중은 내가 본 양치식물 중 가장 크다. 산속 그늘지고 음습한 곳에서 무리지어 우산을 활짝 편 것처럼 자란다. 잎을 핀 모양이 마치 가운데 과녁을 꿰뚫은 화살같이 보여 꿰뚫을 관 가운데 중, 관중(貫中)이라 부른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을 수 있고 뿌리는 약재로 사용되지만 환경부 지정 보호식물이라 함부로 채취하면 안 된다.

▲ 관중(왼쪽 새순 사진 출처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

김일성이 꽃 중에 최고는 蘭인데 나무 꽃 중 가장 최고라 여겨 木蘭이라 이름 짓고 國花로 정했다는 함박꽃도 보았다. 산목련이라고도 하는데 목련은 꽃이 핀 후 잎이 나고, 산목련은 잎이 먼저 나고 꽃이 핀다. 한자이름은 천녀화(天女化)다. '하늘에서 온 여인'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순결하고 고귀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 함박꽃

4~5월에 피는 동의나물은 벌써 꽃이 지고 씨가 달렸다. 노란 꽃이 참 예쁜데 씨주머니도 예쁘다. 나물이라 이름 붙었지만 독초라 먹지 못한다. 키 작은 식물들은 잎으로 숲이 뒤덮히기 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영리하고, 부지런하고, 시간을 나눠 쓸 줄 아는 참 기특한 녀석들이다. 길게 내다 보면 인간도 시공을 나눠 쓰는 존재다. 조물주가 만든 생물 중 유일하게 소유의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

▲ 동의나물

5월 초순에 보았던 얼레지도 씨를 맺었고 6월 초순에 보았던 벌깨덩굴도 꽃을 떨구고 씨 맺을 준비를 하고 있다.

▲ 얼레지와 벌깨덩굴

땅만 보고 오르는 올라치기가 끝났다. 곰배령에 거의 다 왔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신비스런 숲이 등장한다. 잠시 어리둥절해서 나무들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나무들 넘어 환한 하늘빛이 쏟아진다.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이제 곧 넓은 평원 곰배령이 나타날 것이다. 천상화원 곰배령 야생화는 2탄에서...

* 국립공원관리공단 탐방예약제  https://reservation.knps.or.kr/information/trailInfo.action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주주통신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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