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식뮤직 판타지 7. 악마의 트릴 (Devil's Trill)

심창식 편집위원l승인2019.07.30l수정2019.08.1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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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뜸을 들이며 나의 표정을 살피던 모짜르트가 입을 열었다. 18세기 잘츠부르크와 빈에서 유행하던 바로크 시대 귀족풍의 호화스런 의상을 입은 모짜르트는 한층 격조 있는 붉은 색 재킷과 금빛 단추로 인해 얼굴이 더욱 빛나 보였다.

"그대는 내가 콘스탄체에게 편지 속에서 언급한 12자리 숫자의 중요성에 대해 잘 모를 것입니다. 하긴 나도 그 숫자가 그렇게 나의 목을 조를 줄은 미처 몰랐었지요. 그건 순전히 악마에게 내 영혼을 팔면서 욕망을 추구했던 나의 탓이 큽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한건지 몸서리가 처지는 일이지만요." 

▲ 바로크 복장을 한 모짜르트

모짜르트가 파우스트 박사처럼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단 말인가. 

주세페 타르티니의 바이올린 소나타 '악마의 트릴(Devil's Trill)'이라면 혹시 모르겠다. 때는 1749년. 바로크 최후의 바이올린 음악의 대가였던 타르티니는 아름다운 악상(樂想)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던 중에 꿈속에서 악마가 나타나 그의 영혼을 가져가는 대가로 악상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악마는 기막힌 소나타를 연주했고, 꿈에서 악마가 들려준 곡을 악보로 옮겨 탄생한 곡이 바로 '악마의 트릴'이다. 트릴(Trill)은 2도 차이가 나는 음 사이를 빠르게 전환하는 꾸밈음, 즉 떨리는 음을 말한다. '악마의 트릴'이라는 제목은 최후의 제 3악장에서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기 매우 어려운 트릴이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고, 꿈속에서 악마에게 배웠다고 하여 작가 자신에 의하여 붙여진 것이다. 제목과는 달리 이 음악을 들으면 의외로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 뮤즈의 악마

하지만 모짜르트같은 음악의 신동에게 '악마의 트릴'이라니. '악마에게 영혼을 팔면 재능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고대 시대부터 유럽에서 전설처럼 떠돌던 이야기이다. 블루스의 창시자 로버트 존슨의 신들린 기타 연주도 그 전설을 뒤받침하고 있다. 로버트 존슨이 ‘블루스 음악을 하고 싶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설이 아직까지 분분할 정도이다.

그래도 그렇지 '마술피리'나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하기 위해 모짜르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을 것 같지는 않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재능을 구하는 방식은 적어도 모짜르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모짜르트의 표정이나 말하는 뉘앙스로 볼 때도  그건 아닌 듯 하다. 더구나 그것이 12자리 숫자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영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소상하게 밝힐 수 없는 나의 입장을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나는 비록 천상의 음악을 작곡하긴 했지만, 악마와 거래한 죄로 징벌을 받았지요. 그게 바로 편지 속의 12자리 숫자를 지상에 있는 사람이 해석할 때까지는 천국에 오르지 못한다는 벌칙이었어요"

12자리 숫자에 그런 사연이 있을 줄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모짜르트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12자리 숫자를 해석했으니 모짜르트는 이제 천국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것에 감사하기 위해 나를 이곳에 데려온 걸까. 하지만 모짜르트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건 아닌 듯 했다.

"그런데 그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한번 해석으로는 어림없고, 동일한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두 번에 걸쳐 해석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한 번은 12자리 숫자에서 숫자'0'을 제외한 채 해석하고, 다른 한 번은 12자리 숫자에서 숫자'0'을 반드시 넣은 채 해석해야 한다는 부대조건도 붙어 있습니다. 그 조건을 충족해야만 비로소 내가 천국에 오를 수 있습니다"

 

듣자하니 모짜르트가 천국에 오르는 열쇠를 내가 쥐고 있는 셈이다. 모짜르트 사후 그 누구도 편지 속의 12자리 숫자에 관심이 없었으니 말이다. 모짜르트의 망령이 나에게 달라붙었던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대는 나에게는 은인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제 12자리 숫자에서 숫자'0'을 제외한 채 해석했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숫자'0'을 포함한 12자리 숫자를 한번 더 해석해주어야 비로소 내가 옥쇄에서 풀려날 수 있습니다. 너무 염치가 없지만 한번만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은혜는 두고두고 갚겠습니다"

모짜르트가  머리를 조아리며 나에게 부탁을 한다. 이걸 어쩌나. 그렇다고 모짜르트의 부탁을 단박에 거절하자니 마음이 편치 않을 듯하다.

200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12자리 숫자를 해석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그동안 모짜르트는 일종의 정신적 고문을 당한 셈이 된다. 하지만 나로서는 미션 임파서블이 아닐 수 없다. 12자리 숫자에서 숫자'0'을 빼고서야 2년 만에 겨우 해석을 했는데 숫자 '0'을 넣고 재해석하라니. 내가 왜 모짜르트를 위해 그 고생을 해야 하는 걸까.

▲ Where Mozart Lives | by romanboed

천국행 티켓을 위해 12자리 숫자를 해석하라는 조건이 붙은 배경도 의아스럽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으로 다른 벌칙들이 많이 있을 텐데 하필이면 왜 12자리 숫자를 해석해야 하는 조건이 붙은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군요"

"그런 의문이 들기도 할 겁니다.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이제 와서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그 이유는, 아내 콘스탄체에게 보낸 편지가 나의 간음과 불륜을 감추기 위한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찼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뼈에 사무치게 반성하라는 의미에서 그런 벌칙이 내려진 것이지요"

콘스탄체에게 보낸 편지에 사랑한다는 고백이 지나치게 많은 점이 수상하긴 했다. 그 모든 것이 간음과 불륜을 감추기 위한 편지였다니. 그렇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말이 바로 그 말인가? 나는 다시 한번 모짜르트를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가련하게 보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초라하게 보이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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