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貢曰(자공왈) 貧而無諂(빈이무첨)하며 富而無驕(부이무교)하되 何如(하여)하니잇고 子曰(자왈) 可也(가야)나 未若貧而樂(미약빈이락)하며 富而好禮者也(부이호례자야)니라 子貢曰(자공왈) 詩云如切如磋(시운여절여차)하며 如琢如磨(여탁여마)라 하니 其斯之謂與(기사지위여)인저 子曰(자왈) 賜也(사야)는 始可與言詩已矣(시가여언시이의)로다 告諸往而知來者(고저왕이지래자)온여 자공이 말하기를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도 괜찮기는 하지만 가난할 때도 즐겁고
지난 주 고향 친구 가족들과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파아란 바다와 어우러진 노오란 유채꽃밭을 보니나는 어느덧 동화 속에 들어와 있었다. 편집: 양성숙 편집위원
子曰(자왈) 弟子入則孝(제자입즉효)하고 出則弟(출즉제)하며 謹而信(근이신)하며 汎愛衆(범애중)하되 而親仁(이친인)이니 行有餘力(행유여력)이어든 則以學文(즉이학문)이니라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젊은이들은 집에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밖에 나와서는 공손하며 행실은 삼가고 말은 미덥게 하며, 뭇사람을 널리 사랑하되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해야 한다. 이와 같이 행하고 여력이 있으면 그 다음에 글을 배워야 한다” 원문의 제자(弟子)는 스승과 상대되는 낱말로 쓰인 ‘제자’가 아닙니다. ‘아우가 된 사람(弟)’과 ‘아들이 된 사람(子)’ 두 글자가 합
子曰(자왈) 學而不思則罔(학이불사즉망)하고 思而不學則殆(사이불학즉태)니라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게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위 공자님 말씀을 두 부류의 사람으로 구분해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첫 번째 부류는, 이전 시대의 위대한 성인이나 학자들을 모든 면에서 부족한 우리들이 그대로 따르고 배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분들이 어떤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살펴보지 않고 그분들의 어록이나 사상들을 맹목적으로 따르려고만 합니다. 위대한 성인이나 사상가들을 추
수령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백성을 다스리는 자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네 가지 있으니아래로는 백성을 두려워해야 하고위로는 대간(臺諫)을 두려워해야 하며그 위로는 조정을 두려워해야 하고더 위로는 하늘을 두려워해야 한다.牧民者有四畏, 下畏民 上畏臺省, 又上而畏朝廷, 又上而畏天.목민자유사외 하외민 상외대성 우상이외조정 우상이외천- 정약용(丁若鏞, 1762년~1836),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권12「부령도호부사로 부임하는 이종영을 전송하는 서[送富寧都護李【鍾英】赴任序]」 이 글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이 친구 이재의(李載毅)
曾子曰(증자왈) 吾日三省吾身(오일삼성오신)하노니 爲人謀而不忠乎(위인모이불충호)아 與朋友交而不信乎(여붕우교이불신호)아 傳不習乎(전불습호)아니라증자가 말하였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를 반성하는데 남을 위해 일하면서 최선을 다하였는가? 친구와 사귀며 신의를 잘 지켰는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열심히 익혔는가?” 에는 공자의 말씀만 수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공자가 하신 말씀이 주를 이루지만 공자가 제자들과 나눈 대화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제자들이 단독으로 한 말도 실려 있는데 이 문구가 그 중 하나
-정치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한 지역을 다스릴 때는관직의 높고 낮음, 지역의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반드시 인재 얻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爲政, 無論官之高卑地之大小, 必以人才爲先也.위정 무론관지고비지지대소 필이인재위선야- 윤선도(尹善道, 1587~1671)『고산유고(孤山遺稿)』 권5「제주목사 이회를 전송하는 서[送李濟州序]」 병자호란 당시 소현세자(昭顯世子)를 따라 청나라에 갔다온 이회(李禬)는 효종(孝宗) 때 제주목사에 제수되었습니다. 목사가 되고 나서 윤선도(尹善道) 선생을 찾아가 한 말씀 해주시기를
- 정승의 정자 -높은 자리에 있으면 위태로워질 것을 생각해야 하고방 안에 있을 때는 귀신이 지켜보고 있을 것을 생각해야 한다.居高 不可不念其危也 入室 不可不思其瞰也거고 불가불염기위야 입실 불가불사기감야- 김육(金堉, 1580~1658)『잠곡유고(潛谷遺稿)』권9「구루정기(傴僂亭記)」 이 글은 대동법(大同法) 시행을 위해 평생 노력했던 잠곡(潛谷) 김육(金堉)이 일흔을 넘긴 나이, 집 뒤편에 구루정(傴僂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쓴 글이다. 구루정은 가까이에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목멱산,
巧言令色(교언영색)이 鮮矣仁(선의인)이니라말이나 듣기 좋게 하고 가식적인 얼굴로 비위나 맞추는 사람치고 인(仁)한 사람이 적으니라.이 글은 얼핏 보면 요즘 세상과 맞지 않아 보입니다. 말을 잘하여 어떻게서든 자기의 장점을 PR해야 하고 취업을 하려면 성형도 감수해야 하는 오늘날 어떻게 공자님 말씀처럼 살 수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지나치게 겉치레에 치중하며 살아가는 세태를 꾸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이 이러니 어떻게 해?”라고 하기 전에 '교언영색하며 사는 것
-시련을 주는 의미-하늘이 사람을 성취시키려고 할 때는반드시 어려운 일을 먼저 주어 시험해 본다.夫天欲成就之 必先試艱險부천욕성취지 필선시간험-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권21「거제에 부임하는 이 사관을 전송하는 서[送李史館赴官巨濟序]」 윗글은 거제현으로 좌천되어 가는 이 사관(李史館)에게 이규보 선생이 하신 말씀입니다. 사관(史館)은 역사를 편찬하는 관서이니 이 사관이라 불린 사람은 당대에 글이 뛰어난 엘리트요 앞날의 출세가 보장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뜻
-백성의 부모-백성이 굶주리면 나도 배고프고백성이 배부르면 나도 배부르다.民飢卽予飢 民飽卽予飽민기즉여기 민포즉여포- 정조(正祖, 1752~1800) 『홍재전서(弘齋全書)』권166 「일득록(日得錄) 6」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고 했던 어느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너의 고통을 내가 진정으로 공감하고 함께 아파했기에 할 수 있는 표현이다. 조선시대 성군(聖君)으로 알려진 정조(正祖)도 위와 같은 말을 했다. 백성들을 자식처럼 생각했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이다.정조는 숙빈 최씨(淑嬪崔氏, 영조의 어머니)의 묘소가
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면 不亦樂乎(불역락호)아벗이 먼 곳에서 찾아와 준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이 구절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에 이어지는 구절입니다. 벗은 나와 뜻을 함께 하여 같은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다양하여 각양각색의 벗이 있습니다. 함께 진리를 추구하는 도반(道伴)으로서의 벗도 있지만 모여서 도둑질을 일삼는 잘못된 벗들도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벗은 진리를 추구하며 함께하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도반의 벗을 가리킵니다.중국 춘추(春秋) 시대 때 거문고를 잘 타는
-타고나기는 쉬워도-아름다운 자질을 타고난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만학문이 몸에 배어 이루어진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美質之稟於天者易得 而學問之得於己者難矣미질지품어천자이득 이학문지득어기자난의- 권근(權近, 1352~1409),『양촌집(陽村集)』 권15「이반(李蟠) 군에게 주는 서문[贈李生蟠序] 양촌 권근이 채 20살도 되지 않은 나이로 막 과거에 급제했을 때, 양촌의 할아버지 성재(誠齋) 권고(權皐) 선생이 양촌에게 들려준 말씀입니다.“네 증조할아버지인 문정공(文正公 권보(權溥))은 충렬왕 때 과거시험을 주관하셨던 분이다. 이때에 익재
[편집자 주] 한국고전번역원 이규옥 수석연구위원은 한겨레 창간주주다. 정의로운 시대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창간 주주가 되었다. 현재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한문으로 된 기록물을 한글로 옮기는 일을 한다. 중학교 시절 한학자이신 할아버지의 제자 선생님께 을 배웠다. 한문이 재밌고 잘 맞는 공부란 걸 알게 되었다. 역사에 관심이 커 사학을 전공한 후 한문과 역사, 둘을 아우르는 곳,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이규옥 창간주주는 '이규옥의 '고전산책'을 통해 새겨볼 만한
[편집자 주] 한국고전번역원 이규옥 수석연구위원은 한겨레 창간주주다. 정의로운 시대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창간 주주가 되었다. 현재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한문으로 된 기록물을 한글로 옮기는 일을 한다. 중학교 시절 한학자이신 할아버지의 제자 선생님께 을 배웠다. 한문이 재밌고 잘 맞는 공부란 걸 알게 되었다. 역사에 관심이 커 사학을 전공한 후 한문과 역사, 둘을 아우르는 곳,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이규옥 창간주주는 주로 조선시대 문집에 실린 글에서 소재를 뽑아 대중이 읽기 쉽게 바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