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모장군(禦侮將軍) 전방삭(全方朔) (10)

조선중기 보성군의 현황과, 전방삭장군과 함께 전투한 장수들의 이력을 알아본다. 전종실 주주통신원l승인2020.02.13l수정2020.02.1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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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기 위해 보성군의 지리와 인구 분포 등을 알아보고 군과 접해있는 지역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이를 알아야 다음에 나오는 전방삭 장군 전투지역의 이해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보성군의 역사로 조선중기 시절의 기록을 찾지 못했다. 다행스럽게 조선후기의 기록을 찾아서 서술하니 감안하시기 바란다.  조선 후기에 전라도는 전주, 나주, 남원, 제주의 4부로 나뉘었는데, 이때 보성군은 나주부의 관할이었다. 그 뒤 전국을 8도에서 13도로 개편한 뒤 전라남도 광주부의 관할이 되었다. 당시에는 면(面), 호(戶), 토지결수(土地結數)를 기준으로 각 군의 등급을 1등에서 5등으로 나누었는데 보성군은 2등에 속했다.
보성군은 14개 면과 209개 리로 편성되었고 인구는 22,274여 명이 살고 있었다 한다. (보성군사. 의향의 역사에서 인용)

보성군의 행정구역 개편은 여러 차례 있었다. 이 내용을 전부 기록하기는 번거로워 본 주제에 관련된 내용만 기록해 본다.
현 보성군 벌교로 나오는 지명은 1910년 일제에 국권을 피탈 당하면서 식민지 지배를 받게 되었을 때 식민지배의 수행을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지방행정제도의 대폭적인 개편을 단행했다.
1915년 낙안군에 속해있던 고상면과 남면을 합쳐 벌교(筏橋)로 개칭하고 보성군에 편입시켰다. 이렇게 행정구역을 개편한 일제의 의도는 다음 기회에 설명하겠다.

전방삭 장군의 의병 훈련지가 벌교 영등마을이기에, 이 지명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 주기 바란다.

조선중기의 보성군의 인접 지역은 남쪽으로는 흥양현(현 고흥군), 동쪽으로 낙안군 (현 순천시), 북쪽으로 화순군, 서쪽으로 장흥군이 접하고 있다. 지금도 변함은 없다.
        

▲ 보성군 지도

전방삭 장군과 협동으로 전투를 했던 향리의 장수는 보성 출신으로 최대성, 황원복, 정회이며 고흥(흥양) 출신으로는 송대립, 김덕방이다.

∎전방삭(全方朔)
•생몰 : 1545~1598  •자(字) : 일진(日進)  •호(號) ; 규암(葵庵)
보성군 우산리 택촌에서 태어나, 선조 을해(1575년)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에 재직 중 1592년 건공장군 부정에 오르고 임진왜란 발발하여 광해군 세자를 호종했으며, 전라좌수영 이순신 막하에서 군무를 도와 혁혁한 공을 세운 뒤, 뜻한 바 있어 고향 보성에서 의병을 창의하여 고향과 인근 지역으로 침입하는 왜적을 무수히 막아내고 고향 보성군 득량면 죽전벌로 침입하는 왜군 지휘관 미노베 가하치로(美濃部喜八郞)를 격파한 뒤 적탄에 맞아 순절하였다.
                     

▲ 전방삭 장군 사우 충효사

∎최대성(崔大晟)
•생몰 : 1553~1597  •자(字) : 대양(大)  •호(號) : 운암(雲庵)
보성군 겸백면 사곡리에서 태어나. 선조 을유(1585년)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첨정(訓練院僉正)을 거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이순신 막하에서 한후장(捍後將)을 지내면서 많은 공을 세웠고, 향리로 침입하는 왜적을 여러 번 격퇴하고 보성 안치산 전투에서 아깝게 순절하였다.

▲ 최대성 장군 사우 충절사

∎송대립(宋大立)
•생몰 : 1550~1597  •자(字) : 신백(信白) 
흥양(고흥) 동강면 마륜 출신으로 1594년(선조24) 임진왜란 중 무과에 급제한 후 이순신 휘하에 있었다. 그 뒤 도원수 권율 휘하로 옮겨 창의별장(倡義別將)이 되어 전공을 세웠으며, 흥양(고흥)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고흥 망저포(현 죽암), 첨산전투에서 큰 승리를 하였으나 복병의 적탄에 맞아 순절하였다.

▲ 송대립 장군 사우 서동사

∎김덕방(金德邦)
•생몰 : ? ~ ? (미상)  •자(字) : 백언(伯彦)
흥양(고흥) 출신으로 선조대(?)에 급제하여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역임하다, 임진왜란 당시 훈련원 부장으로 충무공 이순신 막하로 들어가 전라 좌수군 관할 흥양(고흥), 보성 일원에 출몰하는 적을 상대로 유격전 형태로 “전방삭, 송대립, 최대성과 함께 큰 전과를 거두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당포, 노량해전에서 왜선 수십 척을 불태우고 전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일본 포로로 끌려가 일본에서 침술을 전파한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 김덕방 장군 일본 고치성 의원 (나향미 한의학 박사 제공)

∎정회(鄭繪)
•생몰 : ?~1597  •자(字) : 화지(華之)  •호(號) : 남파(南坡)
보성군에서 태어나, 1597년 정유재란때 궁마(弓馬)를 갖추고 가동(家僮)을 인솔하여 최대성 장군을 찾아 보성의 방수장이 되었다. 6월 보성 득량면 죽전전투에 참여하고 안치산 전투에서 최대성 장군이 순절함을 보고 정자천까지 적을 추격하다 복병의 흉탄에 맞아 순절하였다.

∎황원복(黃元福)
•생몰 : 미상  •자(字) : 백수(佰綬) 
보성군에서 태어나 일찍 무과에 합격(연대 ? )하였다. 1592년 적진포 해전에 참전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보성 예진 및 고흥 망저포로 침투한 왜적을 섬멸하였다.

위에서 보는 6명의 장수가 보성을 지켜냈다. 그런데 보성에서 전해온 구전은 “5성(姓 : 全, 崔, 宋, 金, 黃) 장군이 보성을 지켜냈다 ”라고 전한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들은 전방삭, 최대성, 송대립, 김덕방, 황원복 장수들을 뜻한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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