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못

배를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못이다. 그런데 이 못을 두고 말이 많다. 하나씩 풀어보자.

▲ <그림 64> 양구지(兩耳釘), ヒラクギ(히라쿠기)
▲ <그림 67> 현재 사용 중인 못

먼저 <그림 64>는 양구지라고 하는 못이고 <그림 65>는 외구지라고 하는 못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그림 67>과 같은 것이다.

<그림 67>의 1, 2, 3은 크기가 각기 다른 외구지 못이고, 4, 5번은 양구지 못인데 <그림66>의 조선시대의 못과 생김새가 거의 같다.

이 못을 전라도 지방에서는 구지(傴扺)못이라 하고, 경상도 지방에서는 누이 못이라고 하는데, 어쩌면 경상도 지방에서 쓰고 있는 누이란 말이 더 맞는지도 모르겠다.

눕혀서 옆으로 치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는지도 모르겠다. 위의 그림 중에서 양구지는 부자리삼과 밑을 붙일 때나 옆삼과 부자리삼을 붙일 때 사용하고, 외구지는 판과 판을 붙일 때 사용한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못을 보면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구지 못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외구지 못과 같이 곡정(曲釘)이었다. 그 기록들을 살펴보면 곡정(曲釘)은 무두정(無頭釘) 형태에서 머리 부분을 휘거나 꺾어 못 머리가 되게 한 것으로 못 전체가 휘어진 모양이 아니라 머리만 직각으로 꺾어진 것이다.

곡정은 철(鐵) 재료에서만 만들어지는 못으로 무두철정(無頭鐵釘) 다음으로 제작공정이 단순하다.

그러나 쓰임새는 무두철정이나 곡정 모두 같은 용도로 사용되며 특히 판재의 붙임에 많이 쓰였고 가구에서는 궤(櫃)에 주로 쓰였다.

다만 무두정에 비해 곡정이 조여 주는 힘은 더하다.

그런데 표민대화의 못에 대한 기록을 보면 양이정(兩耳釘)이란 말이 나온다.

양이란 귀가 두 개란 뜻일 진데 현재의 양구지를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양이정이란 양귀 못으로 현재의 양구지 못이고, 우리가 외구지라고 부르는 것은 곡정(曲釘)이라고 부르는 것이 본래의 이름이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또한 이 못을 우리가 일본 보다 먼저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우리는 아직도 모든 것을 일본에서 배워온 것처럼 한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나 저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신라 지증왕(智證王) 6년(505) 신라의 교역품에 철정(鐵鋌, 덩이 쇠)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철을 수출하였다면 철을 이용한 여러 형태의 못 등을 만들어 썼을 것이다.

▲ 이 그림은  중국의 못
출처 : 중국 조선사

또한 <입당구법순례행기>에 보면 평철(平鐵)이 떨어져 나갔다는 기록이 있다.

평철이라면 철판을 말한 것인데 이미 이때(838)에 철판을 만들어 사용하였고, 이를 붙이기 위해서는 철 못이 있었을 것이다.

배를 만드는데 여러 나라의 배 만드는 방법에 따라서 급하게 만들지 말고, 쇠못으로 꾸며서 단단하고 정밀하며, 가볍고 빠르게 하고, 그 위의 구조도 여러 나라의 배와 같이 가운데는 높고 밖은 낮게 하여, 물이 배 가로(뱃전으로) 흘러 내려가게 하여 배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 다니기에 편리하게 하고, 일본을 왕래하는 배들은 모두 쇠못을 쓰게 하였다.

또한 정조 22년에는 조선의 경우는 “목삭(木槊)을 쓰고 전선의 경우는 쇠못[鐵釘]을 쓰는데, 목삭은 햇수를 한정하여 고쳐 수리해야 하고 쇠못은 1백 개월쯤은 무사합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볼 때 이 시기에 못을 쓰는 것이 보편화 되었던 것 같다. 또한 성종 24년 대마도주 종정국(宗貞國)이 보낸 서계(書契)에 의하면 큰 배를 만들려고 섬 전역에서 구하려 했으나 쓸 만한 재목이 없다.

“신의 증조부 이후로 털끝만한 것이라도 성은(聖恩)을 입지 않는 것이 없었는데, 또 부탁을 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변방관리에게 명하시어 철(鐵)과 목판(木板)을 내려주게 하소서. 철은 본래 저희 섬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것이니, 못(釘)과 대패(鐋)도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일본에는 철이 없어 우리에게 철을 얻어가기 위해 연(練)2필, 검은 말(馬) 2필을 진상하면서 철을 얻어가야 하는 실정에서 우리보다 먼저 철을 이용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밖에도 못에 관한 기록들을 보면 배를 제조하는 철물(鐵物)을 관찰사가 출납을 하였고, 해도(海道)의 철물은 원래 수군(水軍)이 취련(吹鍊)하게 되어 있으니 절제사로 하여금 저축하여 두었다가 지출케 한 기록으로 보아 이미 이 시대에 못을 사용하였고 이러한 철물들을 관리하는 부서가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조선시대에 이미 이러한 선박들에 대한 관리규정이 있어 체계적인 관리를 하였던 것을 알 수가 있다.

병선이 망실(亡失)되거나 파손 되었을 때 그 값을 징수하는 규정이 없어 그러한 법을 만들었는데 대선, 중선, 소선, 단조선(單造船), 복조선(複造船) 등은 배의 크기나 조선방법에 따라 차등 징수하는 제도를 만들어서 배를 관리하였다. 배의 크기나 조선방법에 따라 징수한다고 하는 것은 배를 만드는 방법이 한 가지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맞대기 이음방식이나 턱 붙여 이음방식 등으로 차등을 두었다고 볼 수 있고, 이보다 훨씬 앞서부터 단조법을 썼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배들은 모두다 턱 붙여 이음방식을 썼다고 하는 것은 잘 못된 판단이다.

단조선이나 복조선은 모두 철 못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판자를 이중으로 붙인다면 철 못이 아니고서는 판자를 붙이기도 어렵지만 나무못을 썼다면 이중으로 붙인 판자의 사이로 스며드는 물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면 1592년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도 단조법을 썼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시기가 단조법의 기록이 있는 때로부터 140년이나 지난 후이기 때문이다.

세종대의 기록을 보면 “판(板)은 5개를 사용하여 철정(鐵釘)으로써 이어 붙이는데.....”,라고 하였으며 성종대에는 “왜인(倭人)이 돌아갈 때에 청구하는 육물(陸物)과 철정(鐵釘)은 헤아려서 주도록 하소서”라고 하였던 것을 보면 요구량을 다 주지 말라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록도 있다.

“국가(國家)의 병선(兵船)에는 철정(鐵釘)을 사용하지 않고, 왜인(倭人)한테 철정(鐵釘)을 주어 그 배에 대어 박도록 하니, 이러므로 왜선(倭船)은 그 견고함을 다하였으나, 우리 병선(兵船)을 돌아보면 모두 목정(木釘)을 사용하여 항상 물에 다니지 못하고 얕은 연안에 정박하여 있으며, 틈이 벌어지기가 쉬우니, 이는 오늘날 변사(邊事)의 큰 폐단입니다.”

또 다른 기록을 보면

“병조(兵曹)에서 아뢰기를, 왜선(倭船)의 체제(體制)와 형세는 가볍고 빠르므로, 적변(賊變)이 있을 경우 취해 쓰기가 매우 편리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철정(鐵釘)을 써야 하므로, 공역(功役)이 배나 무겁습니다.

그러나 전라도(全羅道)와 경상도(慶尙道)는 방어(防禦)가 가장 긴요한 곳이므로 이번에 소 척(隻)을 전라 좌우도 수군절도사(全羅左右道水軍節度使)에게 분부(分付)하여 그 모양대로 제조(製造)하게 하였는데, 경상도에도 그렇게 하도록 하소서.”라고 했던 것을 보면 철 못이 나무못보다는 훨씬 좋은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렇게 하도록 하였다고 본다.

이렇듯 우리는 오래 전부터 못을 만들어 사용하였고 철을 수출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거북선이 단조법을 썼다고 하는 근거가 확실하게 있는 것도 아니고, 턱 붙여 이음방식을 썼다는 근거도 또한 없다. 철 못을 사용하였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턱 붙여 이음방식 보다는 맞대기 이음방식이 더 단단하기 때문에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경세유표>의 기록을 보면 전함사(典艦司)에서 배를 만드는데 자(尺)를 쓰지 않고 눈어림으로 배를 만들기 때문에 만들어 놓은 배들마다 각기 다르게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우리의 연안에는 매년 중국, 유구, 왜구, 여송의 배들이 표착한다. 그때마다 이 배들을 상세히 조사하여 모방한다면 중국에 가서 배워온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들로 볼 때 다른 나라의 배를 모방하여서 우리 것을 만들었고, 우리배의 단점을 보완하였다고 보아진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이 시기보다 앞서부터 외국의 배를 모방하였고 그 조선방법을 참고하면서 배를 만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치 일본이 우리에게 배워 갔듯이…….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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