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전면 중단 기사를 봤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있다. 바로 주주통신원 김정진씨다. 그는 작년에 개성공단에 들어갔다. 몸담았던 회사가 사업을 접는 바람에 나왔던 개성에, 10년 만에 다시 스스로 사업체를 열고 들어간 것이다.

관련기사 : 10년 만에 다시 개성으로 간다.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48

그는 거기서 작은 문구점을 냈고, 추후 이런저런 소식을 한겨레:온에 보내왔다. 세 편의 글에서 개성은 우리와는 다른 체제와 문화를 가졌지만, 살짝 훔쳐보고 싶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도시였다. 한겨레:온에서 그의 소식은 9월 말로 끊겼지만 ‘말할 수 없는 무슨 사정으로 글을 쓰지 못하는구나.’ 생각했지 그가 무슨 일로 사업을 접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의 글에서 5년 동안 준비한 사업에 대한 끈질긴 애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 전까지 생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개성공단이 중단된 지금 그는 무얼 하고 있을까? 전 재산을 투자해서 개성공단으로 갔을 터인데 그야말로 느닷없이 생업을 빼앗기고 쫓겨난 지금 그는 서울에 있을까? 서울에 있겠지...

마음속으로 그에 대한 걱정과, 이랬다저랬다 이해할 수 없는 막무가내 정책을 펴는 이 정부에 대한 성토만 하며 답답해하고 있을 때 지난 주 토요일 한겨레신문에 박유리 기자가 쓴 '북측 노동자들과의 실랑이조차 그립습니다.'란 개성공단 박창수 사장의 인터뷰기사가 실렸다.

관련기사 : 북측 노동자들과의 실랑이조차 그립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31266.html

▲ 박창수 사장.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이 사진을 보고 아무 감정도 못 느끼는 사람은 없었으리라. 절망에 얼굴을 가리고, 분노에 얼굴을 가리고, 무력감에 얼굴을 가린 모습이다. 아니 말할 수 없는 고통의 눈물로 일그러진 모습을 차마 내보일 수 없어 두 손으로 얼굴을 꼭 가린 모든 개성공단 사장님들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도대체 왜? 어쩌려고? 어린 학생들의 목숨도 모자라, 농민도 물대포로 쏘아 사경을 헤매게 하더니, 이젠 열심히 일하는 그 많은 기업들까지 궁지 아닌 사지로 몰아넣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서 그랬을까? 정말로 위안부 협상, 3월에 폭발 대기 중인 누리과정 예산, 최악의 경제위기설 등을 잠재우기 위해서 그랬을까? 그렇게까지는 생각 안하지만 만일 그랬다면 물 타기는 성공했다. 모두 개성공단 사태가 빨아들였으니까.. 또한 총선용으로 일단 터트리고 선거 전 깜짝 해결로 지지도를 높이는 북풍을 원했다는 얘기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우리 개성공단 기업들에 대한 배려나 합의도 없는 이성을 잃은 결정같다. 국제적으로도 자칫하면 망신을 살 결정이다. 벌써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 논란이 있고 국내법으로도 위헌, 불법 논란이 있지 않은가?

북한은 어떤가? 마치 박정권의 개성공단 전면중단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보인다. 그 다음날로 개성공단 폐쇄, 자산 동결, 북한 근로자 철수, 군사통제구역 선포 등을 미리 준비된 것처럼 착착 실시했다. 남측이나 북측이나 똑같다. '나도 죽고 너도 죽어라'고 하는 전쟁놀이만 좋아하는 것 같다. '나도 살고 너도 살자'는 영리한 통치외교술은 찾아볼 수 없다. 아니다. 북한은 그래도 우리보다 영리했다. 북한정권은 이번 조치로 손해 보는 것이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지금은 자산 동결이지만 몇 달 지나 자산 몰수로 가면서, 중국자본 들여와 기계 움직이고 우리가 숙련시킨 노동자를 움직이면 월급을 더 많이 준다고 하니까.. 북한경제에는 더 많은 외화를 보탤 수 있는 거다. 그러니 협력이고 평화고 다 내버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강경 대결 국면을 택한 거다. 육십대 박근혜 대통령이 이십대 김정은에게 말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어떤 이는 처음에 개성공단 중단을 남측이 아니라 북측이 한 것으로 알았다고 했다. ‘2013년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했던 병이 도졌구나. 젊은 김정은이 뭔가 비위가 틀려서 제 성질대로 또 저질렀구나.’ 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설 지나 뉴스를 다시보니 남측이 한 짓인 것을 알고 놀랐다고 했다. 이제 국민은 알았다. 이 정권은 누군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없는 이들뿐만 아니라 있는 이까지도 목을 죄어버린다는 것을...

남북 모두 몰상식한 지도자들이 정권 유지를 위해 벌이는 소모적인 비평화적인 치킨게임. 오죽하면 노엄 촘스키 MIT 명예교수가 현 사태에 대해 이런 말을 했을까?

“미국이 북한 문제에 별로 관심도 없고 위협을 느끼지 않는 이유도 남한 내 미국 이익을 보호하는 보수·수구 세력, 권위주의·반민주 정권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남북한 관계 개선은 보수 정권이 권력을 잃게 하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남한의 보수 정권이 남북 평화정책을 펼 이유가 없다. 늘 외부로부터 위기를 받고 있다는 점을 부추기며 위기의식을 일깨우는 것이 보수에 이익이 되고 기득권 수호에 중요하다. 끊임없는 전쟁 상태, 테러와의 전쟁이 기득권에 유익한 것과 비슷하다.”

김정진 주주통신원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대학생 시절, 한겨레 창간호를 받아들고 버스를 탔던 기억이 납니다. 벅찬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들었습니다. 한겨레 창간호가 나왔다는 것에 기쁨으로 벅찼고 한겨레를 들고 있다가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그는 28년 전의 그 벅찬 설렘과 같은 마음으로 개성공단에 사업을 열었던 것으로 안다. 아마 벅찬 설렘 속에는 사업이 계속 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숨어있었을 거다. 그래도 28년 전 그 두려움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이 되었다. 세월은 28년이나 흘렀지만 대한민국은 그 때보다 더 불안해졌고 더 예측할 수 없어졌다.

그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누구나 다 아는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부디 건강만은 잃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참고기사 : [노엄 촘스키 MIT 명예교수 한겨레 인터뷰] /진보적 지식인이 말하는 미국, 그리고 한반도 / “위기론 득 보는 남한 보수정권, 평화정책 관심 없어”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31329.html?_fr=st4

편집: 이동구 에디터

김미경 부에디터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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