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데미풀’이란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이름만 들어도 꽃쟁이들에겐 가슴 설레게 하는 봄꽃, 토끼풀이나 강아지풀처럼 아무데서나 흔하게 만날 수 있는 풀이 아니다. 적어도 해발 800m 이상의 높은 산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희귀한 고산성 식물이기 때문이다. 모데미풀은 한라산, 소백산, 지리산, 덕유산, 광덕산, 청태산, 태백산, 대암산, 점봉산 등 제주도에서 강원도까지 비교적 높은 산, 깊은 골짜기 수분이 많고 기름진 곳에 드물게 자란다. 광덕산 골짜기 모데미풀, 맨 처음 만난 그 때 그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 모데미풀의 생태; 산간계류 근처 습한 곳에 자란다.

그날따라 황사가 극심하여 시야가 좋지 않았다. 어렵게 아내를 설득하여 승용차를 몰고 나섰다. 한 주 전에 모데미풀을 보고 싶어서 야생화 동호회 봄꽃탐사에 따라갔으나 허탕을 쳤기 때문이다. 하필 산불예방기간이라 입구에서부터 출입을 통제한다. 아쉬움 때문일까 꿈속에서조차 모데미풀이 아른거린다. 딱 1주일 후, 꼭 만나보고 싶은 일념에 다시 광덕산 중턱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늘따라 황사에 바람이 드센데다가 안개비까지 내린다. 말만 듣고 샅샅이 살펴보면 찾으려니 생각했다. 물이 흐르는 계곡을 거슬러 200여 미터를 올라갔다. 그러나 눈을 씻고 찾아봤건만 모데미풀 비슷한 것도 못 만났다. 아내는 이처럼 안 좋은 날씨에 감기 들기 십상이라며 어서 빨리 하산하잔다. 낙심천만,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막 다리를 건너려는데 아래쪽에서 젊은 아가씨가 혼자서 올라온다. 무거운 배낭에 카메라 삼각대까지 둘러멘 것을 보아하니 꽃쟁이임이 틀림없다.

용기를 내어 “여기 있다는데 혹 모데미풀 있는 곳을 아세요?” 꼭 한번 만나보고 싶어 왔는데 허탕치고 그냥 돌아간다고 했더니 따라오란다. 옳거니, 난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운데 아내는 마뜩잖게 생각하는 것 같다. 다시 발길을 되돌려 그녀를 따라갔다. 내가 지나갔던 분명 그 길인데, 이게 웬 일인가? 눈이 번쩍, 와! 탄성이 절로 난다. 얼마 안 가서 진짜 모데미풀이 모닥모닥 모여 환하게 웃으며 하얀 얼굴을 드러낸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마치 자신을 알아주는 이에게만 얼굴을 내미는 것 같아 야속하기까지 하다. 아무튼 생면부지 한 아가씨의 도움으로 이렇게 모데미풀과 첫 대면하는 행운을 잡았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잘 생긴 모델을 골라 식물 전체와 잎부터 꽃은 물론 생태사진까지 정성들여 여러 장 담아왔다.

‘모데미풀’이란 국명은 1935년 일본 식물분류학자 오이 지사부로(Ohwi, J.)가 기준표본을 지리산 남원군 운봉면 ‘모데미’라는 마을에서 처음 발견, 채집하고 기재한 데서 유래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모데미라는 마을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한다. 달리 운봉금매화, 금매화아재비라고도 부른다. 정태현 등은 조선식물명집(1949)에서 자생지 운봉에 나는 미나리아재빗과의 금매화 비슷하다고 보고 ‘운봉금매화’라 하였으며, 박만규는 우리나라식물명감(1949)에서 역시 금매화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다는 뜻으로 ‘금매화아재비’라 이름하였다.

학명으로는 ‘Megaleranthis saniculifolia Ohwi’라고 하는데 속명 ‘Megaleranthis'는 ’크다‘는 뜻의 ‘megas’와 ‘Eranthis’를 합성한 말로 그 모습이 ‘너도바람꽃속을 닮았지만 그보다 더 크다’는 뜻이다. 실제의 모습을 봐도 너도바람꽃과 비슷한 모습이지만 전체적인 모습이 훨씬 크다. 종소명 ‘saniculifolia’는 미나리과 참반디속(sanicula)과 닮은 잎(folia)을 가지고 있다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모데미풀은 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와 잎은 하나의 뿌리에서 여러 개가 모여 나오는데 너도바람꽃에 비해 키가 훨씬 커서 40cm 정도까지 자란다.

 

▲ 모데미풀의 잎과 줄기;뿌리에서 여러 개가 모여 나온다.

뿌리잎은 잎자루가 길며, 3개로 완전히 갈라진다. 갈라진 각 조각은 잎자루가 짧고 다시 2~3개로 깊게 갈라진다. 잎 가장자리에는 끝이 뾰족한 톱니가 있으며, 잎 양면에는 털이 없다. 줄기에는 잎이 나지 않는다. 꽃은 4월 중순경이면 피기 시작하는데, 잎처럼 생긴 포(苞) 위에서 난 짧은 꽃자루에 지름 2~3cm 정도의 흰색 양성화가 1개씩 달린다. 꽃잎처럼 보이는 꽃받침잎은 보통 5장, 끝이 얕게 갈라진다. 꽃잎은 노란색, 5개인데 마치 헛수술처럼 보이며 꿀샘으로 퇴화한다. 수술과 암술은 많다.

▲ 모데미풀 꽃의 구조;밑에서 부터 차례로 꽃싸개잎(녹색), 꽃받침(흰색), 꽃잎(노란색), 수술(바깥쪽 긴것), 암술(안쪽-짧은것)

열매는 골돌, 8월에 성숙하면 솔기가 벌어져 작고 진한 흑색 씨앗이 여러 개 드러난다.

▲ 모데미풀의 열매;골돌, 검은색으로 익으며 종자가 검다.

우리나라에는 ‘바람꽃’이란 이름을 가진 미나리아재빗과 식물이 많다. 변산바람꽃을 필두로 너도바람꽃, 만주바람꽃, 꿩의바람꽃, 회리바람꽃, 들바람꽃, 세바람꽃, 나도바람꽃 등 15종이 넘는다. 이들 중 유독 모데미풀은 이름이 ‘바람꽃’ 돌림은 아니지만 틀림없는 바람꽃 종류의 하나로 아주 특이한 식물이다. 분류학상 미나리아잿비과의 모데미풀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인데, 모데미풀속은 물푸레나무과의 미선나무속, 콩과의 개느삼속, 장미과의 금강인가목속, 초롱꽃과의 금강초롱꽃속, 고사리삼과의 제주고사리삼속과 더불어 이들 6가지 속(genus) 자체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한국 특산속이다. 우리나라에는 약 436분류군의 한국특산의 관속식물이 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 특산속식물은 이들 한국 특산식물종보다는 학술적으로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한국 특산식물 중에는 원예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도 있어서 외국인들이 눈독을 들이는 것도 많다. 만약 이들에 대한 보호 관리가 소홀할 경우 우리도 모르는 사에 외국으로 반출될 수도 있다. 마치 미스킴라일락이나 구상나무처럼 외국에서 원예품종으로 개량되어 비싼 가격으로 역수입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국립생물자원관이나 산림청에서는 생물주권 확립의 차원에서 이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특별히 관리한다. 또한 한국 특산식물은 우리나라에서 사라지면 지구상에서 영원히 멸종하는 세계적인 식물자원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 고유종인 모데미풀은 우리나라에서도 소백산에 가장 넓게, 가장 많은 개체군이 분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소백산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는 2007년 모데미풀을 깃대종으로 선정·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꽃 모데미풀, 해마다 이맘때면 가서 상면해야 직성이 풀린다. 4·13총선 날에 꽃동무들과 함께 가기로 하고 난 사전투표를 했다. 전처럼 황사는 아니지만 오늘도 아침부터 이슬비가 흩뿌린다. 오후부터 갠다는 예보를 믿고 출발했다. 다행히 비는 개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주변 산은 유록색 잎이 막 피어나고 벚나무, 살구나무, 복사나무 꽃들이 만발하여 온통 꽃잔치가 벌어진다. 모데미풀을 서울 인근에서 보려면 포천에서 화천으로 가는 광덕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도로 양편에는 진달래가 온통 만발하여 울긋불긋하다.

달뜬 기분으로 광덕산 골짜기에 들어서니 얼레지, 각시현호색, 나도양지, 노루귀, 홀아비바람꽃, 꿩의바람꽃, 금괭이눈 등 온갖 봄꽃들이 만발하여 한 발짝 옮겨 디디기가 조심스럽다. 그러나 봄꽃을 맞이하는 황홀함도 일순간, 모데미풀을 처음 만난 곳 여러 군데에 삽질한 흔적이 역력하다. 필시 누군가가 흙까지 통째로 파 간 것이다. 주위를 살펴보니 꽃이 있는 계곡 바로 옆에 웬 비닐하우스가 들어서 있다. 그리고 도로 위쪽엔 별장 같아 보이는 커다란 집이 들어서 있는 것이 아닌가? 광덕산 모데미풀도 어쩌면 머지않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모데미풀은 이런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위쪽으로 올라가며 몇몇 개체가 남아 있어 보러 오는 이를 위로한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으로 남아 있기를 기대하며 작별 인사를 하였다.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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