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 밸리(Rose Valley)

카파도키아를 제대로 경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로즈 밸리' 트레킹이란다. 트레킹을 좋아하는 나에게 얼마나 가슴 뛰는 말인가? 로즈 밸리는 카파도키아 관광 명소 5위에 오르는 곳으로 해 질 무렵 바위가 장밋빛으로 물든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보통 늦은 오후에 로즈 밸리 3~4km를 2~3시간 정도 걷고, 일몰 직후 돌아오는 코스가 인기다. 로즈 밸리 바로 뒤에 ’레드 밸리(Red Valley)‘도 있다. 병풍처럼 쫙 펼쳐진 바위가 있는 계곡이다. 바위 색이 붉어서 레드 밸리라고 이름 붙었다.

해 질 무렵 로즈 밸리와 뒤에 쫙 펼쳐진 레드 밸리(사진 출처 : 무료사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unset_from_K%C4%B1z%C4%B1l%C3%A7ukur_Valley_in_G%C3%B6reme_National_Park.jpg)
해 질 무렵 로즈 밸리와 뒤에 쫙 펼쳐진 레드 밸리(사진 출처 : 무료사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unset_from_K%C4%B1z%C4%B1l%C3%A7ukur_Valley_in_G%C3%B6reme_National_Park.jpg)

‘로즈 밸리 트레킹’은 여행사가 이번 상품의 대표 메뉴로 소개했기에 기대가 컸다. 전날부터 로즈 밸리는 언제 가냐고 가이드에게 묻기도 했다. 아... 드디어 로즈 밸리로 이동한단다. 그런데 오후가 아니고 한낮이다. 오후에 가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최소 2시간 트레킹은 하겠지~~ 적어도 계곡 입구에서 사진 찍고 돌아서지는 않겠지~~ 하고 트레킹화도 신고 물까지 챙기고 철저히 준비했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기 전, 가이드는 40분 줄 테니 트레킹할 사람은 다녀오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요새 애들 말로 빡쳤다. 그래도 안 가는 것보다 가는 게 낫지 싶어, 어디로 가야 40분 안에 돌아오는지 이리저리 둘러보다 10분이나 허비했다. 판단이 서지 않아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저기 보이는 포도밭까지만 다녀오란다. 

입구에서 만난 로즈 밸리와 계곡 사이 포도밭.  
입구에서 만난 로즈 밸리와 계곡 사이 포도밭.  

30분 안에 돌아와야 한다. 부글부글거리는 속을 꾹 누르고 허겁지겁 다녀왔다. 바위 계곡을 즐기기는커녕....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생각에 헐레벌떡 사진만 찍었다. 거기까지 다녀온 사람은 오로지 우리 둘. 다른 팀들은 초반에 길이 가파르고 미끄러워 포기했거나, 시간이 짧아 포기하고 모두 입구에서 사진만 찍었다. 긴 시간을 내고... 돈 들여 멀리 와서...  눈 앞에 보이는 저 로즈 밸리 일부를... 주마간산으로 보고 오다니 땅을 칠 노릇이었다. 너무나 속이 상해 심장이 아팠다. 그나마 간신히 사진으로 담아온 로즈 밸리가 있어 영상으로 만들어 보았다.

 

그 급한 와중에도 조금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약 10명 정도 되는 가족이 왔다. 그 중 한 분이 멋진 바위에 올라 갔다. 나는 위험한데... 저래도 되나 싶어서 가다 말고 가만히 보았다. 뭐라고 한참 재미있게 이야기 하던 분들이 모두 옆 바위로 이동하더니 그 바위가 멋있다고 우릴 보고 단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이렇게  모여 있던 분들. 한 분은 겁 없이 바위에 올라가셨다. 
이렇게  모여 있던 분들. 한 분은 겁 없이 바위에 올라가셨다. 

사진을 찍어 드리니 바위 중턱에 올라가셨던 제일 어르신 같은 분이 너희도 찍어 줄 테니 저기 서라고 하면서 폰을 달라고 했다. 반항하지 않고 공손히 폰을 드리고 사진을 찍혔다. 사진을 찍어주신 그 분은 우리 앞으로 턱~ 턱턱~ 오셔서 가운데 떡 서시곤 그 큰 손으로 우리 둘 어깨를 훅~ 잡아 채고는 일행에게 사진을 찍으라고 하셨다. 속으로 "그래,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잘 ~ 왔다"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아는 사람 대하듯 우릴 대하는 친숙함에 거침이 없었다. 그러고 폰을 넘겨주시곤 씩 웃고 가셨다. 외국 여행에서 이렇게 스스럼없이 사람을 대하는 분을 만나기 쉽지 않은데... 순식간에 튀르키예 아저씨에게 납치당했다고나 할까? 아저씨가 천진난만하게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다시 보니, 그때 '어어~~~ 뭐지?' 하고 살짝 당황하고 어색했던 기억이 오히려 웃음이 되어 떠오른다.

얼굴 나온 사진을 잘 올리지 않는데 이 사진만큼은 재미있어서... 아저씨는 멋진 바위와 자신을 우리에게 남겨 주고 싶으셨나 보다.  
얼굴 나온 사진을 잘 올리지 않는데 이 사진만큼은 재미있어서... 아저씨는 멋진 바위와 자신을 우리에게 남겨 주고 싶으셨나 보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인데... 너무나 허무하게 끝난 '로즈 밸리 트레킹. 안내표지를 보니 코스가 다양하다. 오후 종일 걸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내 생애 다시 올 수 있을까? 쉽진 않겠지. 혹 다시 온다면 카파도키아만 여러 날 있고 싶다.

포도밭까지 내려갔다가 늦으면 안 된다는 남편 성화에... 5분이나 일찍... 허둥지둥 올라와서 아쉬운 마음에 찍은 영상이다. 

 

데브란트 계곡(Devrent Valley 혹은 상상의 계곡(Imaginary Valley))

'Devrent' 란 말은 '구덩이 절벽'이란 뜻이라고 한다. 하지만 계곡에 그런 분위기는 없다. 오히려 경이로운 바위들로 가득하다. 데브란트 계곡은 카파도키아 다른 계곡과 달리 암굴 교회나 수도원이 없다. 로마인 무덤도 없다. 이곳엔 사람이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바위와 주변들은 전혀 훼손되지 않고 깨끗하다. 사람이 살지 않은 이유는 모르겠다. 평지가 아니고 언덕이 많아 주변이 확 트여서 은둔형 암굴과는 맞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데브란트 계곡 가는 길에 달리는 버스에서 찍은 영상이다. 황야에 세워진 바위성이랄까? 사막에 세워진 모래성이랄까? 어떤 사람들은 달 표면 같다고도 한단다. 

 

영상에서 본 것처럼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여러가지 동물을 연상케하는 바위가 빼곡하기 때문이다. 마치 조각 동물원에 온 것 같다. 낙타, 물개, 돌고래, 펭귄, 불곰, 뱀 등 동물 형상을 닮은 바위가 이 계곡의 주인이다. 특히 위풍당당한 낙타 모양의 요정의 굴뚝은 시선을 압도한다. 이 계곡에서 가장 유명해서 데브란트 계곡을 홍보하는 대표 사진으로 늘 등장하는 바위다.  

데브란트 계곡의 낙타 바위
데브란트 계곡의 낙타 바위
데브란트 계곡의 기기묘묘한 요정의 굴뚝
데브란트 계곡의 기기묘묘한 요정의 굴뚝
데브란트 계곡의 기기묘묘한 요정의 굴뚝
데브란트 계곡의 기기묘묘한 요정의 굴뚝

수백만 년 동안 물과 바람이 부드러운 응회암을 어루만져 갖가지 빛깔의 암석에 동물들을 조각해 놓았다. 자연의 위대함이다. '상상의 계곡'이란 별칭도 있다. 상상력을 발휘하면 새로운 동물들을 찾을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좀 더 가까이 조각 동물을 보고 싶으면 트레킹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데브란트 계곡에서 두 번째 납치를 당했다. 이번엔 흰 원피스를 곱게 차려 입으신 할머니께서 느닷없이 남편을 잡더니 우리에게 사진을 찍자시며 다른 할머니를 불렀다. 길 건너 계시던 다른 두 할머니가 막 달려오셔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세 자매 중 원피스 입은  멋쟁이 할머니가 큰 언니다. 이스탄불에서 오셨다고 하셨다. 

이 사진도 재미있어서... 이스탄불에서 오신 할머님과 따님이 싫어하진 않겠지?
이 사진도 재미있어서... 이스탄불에서 오신 할머님과 따님이 싫어하진 않겠지?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고 말도 안 했는데 아시는 것 같았다. 친근하게 말을 건네는 할머니들이 너무 곱고 예뻤다. 서로 호감이 오고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팔도 손도 자연스럽게 잡았다. 기분이 좋아 기념으로 우리 폰으로도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사진을 찍어주시던 따님께서 우리를 배경으로 자신이 나오게 셀카를 찍었다. 내 얼굴을 모르는 사람에게 주다니... 나는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이다. 흔치 않은 과감하고 귀여운 행동에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자신도 그 시간에 함께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그날 만난 두 가족은 우리를 친구처럼 대해주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참 이상했다. 튀르키예인이 돌궐 민족(튀르크(Turk)족)이라는 북방 몽골계 유목민의 후예이고, 한민족도 몽골인과 유전자가 많이 유사하다고 하고, 특이한 몽고반점을 갖고 태어나는 것도 똑같고, 1,300년 전 고구려와 돌궐족 간에는 긴밀한 유대관계가 있었다고도 하고, 연개소문 장군이 돌궐 공주와 혼인하였다고 하지만 너무 과거의 일이다. 튀르키예인은 우릴 형제 국가라고 생각한다는데... 그게 그냥 말만이 아니라 진정 마음에서 그리 생각하는 걸까? 그래서 그리 정답게 대해주는 걸까? 나에겐 미스테리다. 

파샤바 계곡(Pasabag Valley/ 수도자 계곡 (Monks Valley))

파샤바는 '장군의 포도밭’이라는 뜻이다. 파샤바 밸리에 포도밭이 많아서 붙은 이름이다. 파샤바 밸리에는 현무암 원뿔 모자를 쓴 버섯 모양 요정의 굴뚝이 나란히 서 있다. 만화영화 '개구쟁이 스머프' 작가는 이곳 바위에서 영감을 얻어 만화를 그렸다고 한다. 스머프네 집 모양이 이 바위와 똑같아서 '스머프 바위'라고도 불린다. 

파샤바 계곡 버섯 바위(사진 출처 : 김미영)
파샤바 계곡 버섯 바위(사진 출처 : 김미영)

그들은 마치 긴 수도복을 입고 걸어가는 수도자들 같다. 수군수군 말하며 바짝 붙어 있기도 하고, 조금씩 움직였다가 다시 모이기도 하는 것 같다. 생동감이 느껴진다. 스머프 작가도 바위에서 그런 생동감이 느껴져 영감을 얻은 것이 아닐까? 

파샤바 계곡 버섯 바위(사진 출처 : 김미영)
파샤바 계곡 버섯 바위(사진 출처 : 김미영)

파샤바 계곡 바위는 다른 계곡에서 본 바위와 다르다. 여러 개의 머리가 있는 바위도 있고 몸체가 여러 개의 바위도 있다. 바위가 독창적인 모습이다. 현무암과 응회암층이 뚜렷하게 반복되는 바위도 있다. 

파샤바 계곡 버섯 바위(사진 출처 : 김미영)
파샤바 계곡 버섯 바위(사진 출처 : 김미영)

인간이 멋지게 깎아 놓은 지붕 같지만 모두 물과 바람의 산물이다.

파샤바 계곡 버섯 바위(사진 출처 : 김미영)
파샤바 계곡 버섯 바위(사진 출처 : 김미영)

바위층이 유난히 선명하게 구분되는 버섯 바위도 있다.  

파샤바 계곡 버섯 바위(사진 출처 : 김미영)
파샤바 계곡 버섯 바위(사진 출처 : 김미영)

파샤바 계곡은 수도자 계곡(Monks Valley)이라고도 불린다. 고립된 지역이었기에 운둔자들에겐 매력적인 장소였다. 성 시메온을 포함하여 많은 수도자가 이 지역으로 옮겨와 살았다.  

파샤바 계곡 성 시메온 바위(사진 출처 : 김미영)
파샤바 계곡 성 시메온 바위(사진 출처 : 김미영)

성 시메온 바위는 '성 시메온'이 살던 곳이다. 그는 5세기 알레포(시리아 북부 도시) 근처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가 기적을 이뤘다는 소문이 났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그런 관심을 원치 않았기에 사람들을 피해 카파도키아로 옮겨 왔다. 처음에는 2m 높이 한 개의 돌기둥에서 살았지만, 나중에는 15m 높이의 버섯 머리가 세 개 있는 독특한 바위 윗부분에 올라가 살았다. 그는 최소한의 음식과 물을 가져오기 위해서만 내려왔다. 하지만 성 시메온 추종자 대부분은 바위를 파고 살았다. 바위 아래서 위로 10~15m 높이로 굴을 만들어 바위 침대에서 기도하며 수도 생활을 했다. 그렇게 수도자가 늘어나면서 파샤바 계곡은 버섯 바위에 굴을 파고 사는 수도자가 넘쳐나게 되었다.

파샤바 계곡 성 시메온 바위(사진 출처 : 김미영)
파샤바 계곡 성 시메온 바위(사진 출처 : 김미영)

로즈 밸리에서 데브란트 계곡, 파샤바 계곡까지 세 계곡을 보았지만, 카파도키아에는 이 계곡 외에도 입이 떡 벌어지는 계곡과 바위들이 많다. 비록 가보진 못했지만 책(Cappadocia(저자 :Murat Gülyazz/ 출판사 : Digital Dünyası))에서 소개하는 멋진 계곡과 바위 몇 개는 다음 편에서 간단히 소개하겠다.  

오른쪽부터 로즈 밸리, 파샤바 계곡, 데브란트 계곡 
오른쪽부터 로즈 밸리, 파샤바 계곡, 데브란트 계곡 

* 파샤바 계곡 사진은 일행인 김미영 님께서 제공해 주셨다. 사진을 공유해 주신 김미영 님께 감사 드린다.

- 참고 사이트 : 다음백과, 위키백과
- 참고 서적 : Cappadocia(저자 :Murat Gülyazz/ 출판사 : Digital Dünyası)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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