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비율 면 단위 압도적인데 의료·복지시설은 읍 쏠림
전국 최초 면 단위 의료복지사회협 조직한 홍성군 홍동면민

홍동면에 위치한 홍성의료사협 우리동네의원 전경
홍동면에 위치한 홍성의료사협 우리동네의원 전경

돌봄 수요와 공급은 어긋나있다. 1읍8면 옥천 상황을 놓고 보면 면 단위 고령화가 압도적으로 높은데 반해 고령자 돌봄을 책임질 시설은 읍 시가지에 몰려 있다. 옥천군보건소 홈페이지 자료를 보면 군내 30개 병·의원 중 28개가 65세 이상 고령화 비율이 약 23%를 기록한 읍 지역에 쏠려 있다. 의원급 의료기관이 이원면 1개소, 청산면 1개소가 있고 이외 6개면에는 전무하다. 의원급 의료시설이 없는 면 지역의 고령화 비율은 △안내면(51%) △청성면(54%) △안남면(48%) △군서면(46%) △군북면(41%) △동이면(43%) 등으로 무시할 수 없는 수치를 보이고 있다(9월말 인구기준).

의료시설 뿐만 아니라 복지시설 역시 마찬가지다. 옥천만 따져봐도 노인복지관 거점 공간은 옥천읍과 청산면 2곳이 전부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자료를 보면 이 같은 상황이 전국적 상황임을 알 수 있다. 2019년 말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읍부(36.1%)보다 면부(63.9%)에 쏠려 있는 한편 노인복지관은 정반대로 읍부(78.8%)에 치우쳐져 있다. 면부에 위치한 노인복지관은 21.2%에 불과하다. 사회복지관도 △읍부(77%) △면부(23%), 지역자활센터는 △읍부(89.8%), 면부( 10.2%) 수치를 기록했다. 돌봄 수요와 공급이 안 맞는 것이다.

고령 사회를 비교적 잘 대비하고 있는 ‘행정’의 움직임도 읍 중심인 경우가 많다. 선도 사업으로 주목받는 진천군, 청양군 역시 읍 중심 서비스를 시작으로 면 단위로 확대하는 방식을 택했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보건·복지·의료 기반이 있는 읍이 기반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면 단위 공공돌봄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홍성군 홍동면 ‘우리동네의원’은 ‘민(民)’ 주도로 탄생한 면 단위 공공돌봄 기관이다. 전국 최초 면 단위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조직해 동네의원을 운영하고 각종 돌봄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홍성의료사협 금창영 이사장은 “우리가 주간보호센터도 아닌데 왜 어르신들 모시고 같이 화환을 만들고 있을까. 새마을 부녀회도 아닌데 왜 반찬배달사업을 하고 있을까 질문하게 되지만 결국 필요하니까 하는 거다. 지역내 노인 대학 역할을 하던 교회도 구성원이 나이가 들어 문을 닫았다. (지역내 돌봄 공백을) 누군가는 맡아야 하는 거다”라며 면 단위 고령화와 공동화가 미룰 수 없는 문제라고 봤다.

금창영 이사장
금창영 이사장


■ 읍으로, 도시로 가는 대신 ‘우리동네의원’으로 … 환자 진료 시간 15분 이상, 물리치료는 1시간 이상, 의료질은 상승

홍성군 홍동면민의 깊은 역사를 가진 주민자치력과 이 가치를 알아본 ‘공보의’ 이훈호 의사의 만남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면 단위’, ‘주민주도’ 공공돌봄을 만들었다. 

지역 주민이 기억하는 이훈호 의사는 “특이했다”. 공중보건의로 2010년 홍동면과 인연을 맺은 이훈호 의사는 공보의 일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을 주민을 만나는 일에 열정을 쏟았다. 공보의로 ‘집에서 하는 응급처치법’, ‘노년의 허리건강법’ 교육 프로그램이나 돌봄 관련 영화 보기 등 활동을 해나갔고 이렇게 보낸 3년(공보의 복무기간)이라는 시간은 홍동면민이 ‘이훈호’를 알아가는데, 그리고 이훈호 의사가 ‘지역’을 알아가기에 충분했다. 

관계 속에서 신뢰는 싹을 텄고 이훈호 의사가 홍동면에서 의원을 내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을 때 채승병 초대 이사장, 신관호 2대 이사장 등 오피니언 리더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구심점을 모아내며 2015년 ‘조합원이 주인이 된’ 홍성우리마을의료생협을 만들었다. 초대 이사장을 중심으로 한 홍성우리마을생협 창단 조합원들은 농촌고령화와 공동화를 지속가능한 지역사회의 걸림돌로 보고 보건·의료 인프라가 빈약한 면단위 의료생협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훈호 의사가 봤던 주민자치력은 의료생협을 만드는 초창기에도 발휘됐다. 주민들로 구성한 견학팀을 구성해 일본 미나미 의료생협을 직접 다녀오는 등 열성적인 공부가 시작됐다. 300명 이상 조합원을 모아야 생협을 만들 수 있는데 3천명이 조금 넘는 홍동면 입장에서 면 인구 10%에 해당하는 조합원을 모아낼 수 있었던 것은 지역 활동가를 배출하는 풀무학교, 이를 바탕으로 한 오랜 면 자치 역사와 협동조합 경험 등이 한몫했다. 조합원 수 500명이 넘어야 하는 ‘의료사협’ 전환 때도 숫자를 채우지 못해 전전긍긍하지는 않았다.  

금창영 이사장은 “의료생협도 그렇고 의료사협도 그렇고 5명 모여서 뚝딱 만드는 협동조합 같지 않다. 300명, 500명을 모아내야 한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신뢰를 쌓았던) 이훈호 원장이 하겠다니까, 지역 원로들이 적극 지지를 하니까 가능했다”며 “그 당시 젊었던 저는 일년에 병의원 가는 횟수가 몇 손가락에 들었는데 의료생협 만드는 일을 나의 일처럼 생각했다. 차 타고 읍내 병의원 쉽게 오갈 수 있었던 주민들도 자기 일처럼 생각했다. 면 단위에서 325명의 조합원이 4천100만원을 출자해 의료생협 형태로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주민들이 모였기 때문이다”고 회상했다. 

이훈호 원장
이훈호 원장


■ 의료진-주민 간 신뢰관계, 주인의식 속에 유지되는 공공돌봄모델

이훈호 ‘원장’이 진료를 보는 ‘우리동네의원’은 면민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홍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홍성의료사협)이 운영하는 우리동네의원은 2022년 이용자수(1천667명)가 홍동면민 수(3천400여명)의 49%에 달한다. 차로 10여분 거리에 홍성의료원이 있고 읍 시가지로 나갈 수 있지만 홍동면민은 우리동네의원을 찾고 있다. 이훈호 원장이 쌓아온 관계도 영향을 미쳤지만 ‘진료 시간’부터 타 병·의원과 차이가 나는 등 의료 서비스 질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훈호 원장이 환자와 나누는 대화 시간은 15분이 넘는다. 환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가족 병력은 있는지,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지, 어떤 생활 습관이 있는지 ‘질문’하는 시간이다. 물리치료 시간은 무려 1시간이다. 병상을 늘리지 않고 4개만 두되 한 사람이 받는 물리치료 시간을 늘렸다. 아픈 부위 마사지를 받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스트레칭 하는 법 등 운동법까지 전수되는 시간이다. 

현재 우리동네의원은 가정의학과 전문의 1명, 물리치료사 1명, 간호사 2명, 총 4명의 의료 인력이 있다. 1차 의료기관으로서 질병 예방, 만성질환 관리 등을 위해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식단 및 운동법 교육, 프로그램 전후 혈당 및 혈압 측정, 체질량 검사 등) △금연치료 지원사업 △방문진료(요청 시)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진료를 받는 환자 수가 늘어야 의원 재정은 풀리는데, 치료가 아닌 ‘예방적 프로그램’을 의원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훈호 원장은 “아무리 병·의원을 안 가더라도 예방접종 때문이라도 주민들이 동네의원을 방문한다. ‘자발적’으로 주민들이 방문하는 곳이 동네의원이다”며 “주민이 자발적으로 찾는 기관에서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여유를 가지고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병명으로 분류되지 않는 건강상의 문제도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차 의료기관 그래도 좀 동네주민과 관계를 유지 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고 덧붙였다. 

‘우리동네의원’은 홍동면민에게 ‘내 의원’이다. 의료생협에서 의료사협으로 전환하고 우리동네의원을 이전할 때 누군가는 트럭에 잔뜩 장비를 싣고 오고, 누군가는 인부들의 밥을 샀고, 면내 중학생들은 페인트칠을 하는 등 자발적인 나눔이 있었다. 우리동네의원을 운영하는 원칙을 정하고 따르는 데도 ‘주인 의식’은 이어진다. 항생제 사용과 약 처방을 최소화하는 데 조합원의 합의가 있었다. 의료생협, 의료사협을 만들고 의료 인력에게 운영을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의 주인의식이 발휘되고 있다.  

금창영 이사장은 “음료를 사본 기억이 없는데 (우리동네의원 이전 공사할 때) 현장에 남은 음료수병들이 굴러다니더라. 지나가는 음료수 한 박스 사주고 간 거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자 입장에서는 약 처방 많이 하고 주사 놓는 거 좋아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우리동네의원에서는 조합원들이 의료진에게 이런 부분을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조합원들도 진료가 끝났는데도 계속 질문하는 의사가 처음이라 생소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과잉처방 하지 않는 동네의원을 운영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편이다”라며 “의료진의 진료나 치료에 대해서 100% 지지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상균 사무국장
안상균 사무국장


■ 예방, 진료 활동 뿐 아니라 마을돌봄 촉진하는 홍성의료사협…먹거리, 진료 매개로 끊임없이 만남의 장 북돋아

우리동네의원을 운영하는 홍성의료사협은 단지 의료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출자한 조합원들을 위해 조합부를 중심으로 조합원의 다양한 건강 욕구를 수렴해 이를 프로그램으로 만든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지역 주민들과 함께 건광관리를 하거나 서로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만남의 장으로, 사실상 마을돌봄의 성격을 띠고 있다. 

금창영 이사장은 “치매 초기 단계 어르신들이 조합사무실에 와서 주기적으로 노래도 배우고 그림도 그리는데 나중에는 서로가 친해져서 계속 오게 되더라. 이 사업은 3년간 이어졌다. 그래서 관계가 중요하다”며 “소모임도 지원한다. 홍동면에는 기존 자조모임, 마라톤을 하거나 침뜸을 하는 등 건강 관련 소모임이 만들어져 있었다. 홍동면은 공동체가 발달돼 있지만 그만큼 공동체 활동에 대한 피로감도 있어서 조직을 새로 만들기 보다 기존 모임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성의료사협은 소모임 지원 사업 일환으로 지난해 ‘우리마을 건강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런닝, 채식, 축구, 침뜸, 놀이, 태극권, 요가, 족구 등 다양한 주제로 결성된 소모임이 나와 모임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됐고, 이훈호 원장이 각자 갖고 있는 건강 문제와 관련된 소모임을 추천하기도 했다. 

홍성의료사협 안상균 사무국장은 “건강한 관계, 지속적인 관계도 건강권 안에 포함되지 않나. 조합원들이 건강꾸러미를 들고 이동이 어려운 취약계층을 직접 찾아뵙는 사업도 있다. 일부 조합원은 마을에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웃을 찾아뵙기도 한다. 의료사협의 사업 자체가 공급자와 수혜자가 나눠져 있지 않고 마을 안에서 관계를 계속 맺어가는 형태인 것이다”라며 “건강꾸러미는 과거에는 풀무신협, 올해부터는 충남 사회서비스원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지원을 받아서 하는 사업이다 보니 예산이 있고 없고에 따라 사업이 끊기기도 했는데 꾸러미는 매개일 뿐 직접 찾아 뵙고 안부를 묻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이 사업은 상시적으로 해볼려고 논의 중이다”라고 말했다. 

■ “의사가 지역을 배울 수 있는 기회 있었으면...”, “정부가 퇴직의사-지역 연결하는 매개체 해야” 


이훈호 원장은 지역에서 일할 의료인력이 역부족인 상황에서도 ‘지역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의료인력이어야 지역 주민들과 상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훈호 원장이 선뜻 동네의원을 개원하겠다고 했을 때 마을 주민들이 호응했던 것은 그가 공보의 복무를 마치고도 홍성에 남아 주민들과 건강 관련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며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이다. 

이훈호 원장은 “국내 한 지역에는 연봉 2~3억을 준다고 해도 의료인력을 못 구했다”며 부족한 의료 인력 현실을 설명하면서도 “의료인력을 지역에 유치해야 한다면 주민들도 개원이나 정주 여건 등 직접적인 지원도 고려해야겠지만 의료진이 지역을 이해하고 관계를 잘 만들어가도록 도움을 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대부분 도시출신인 공보의가 시골에 배치되면 지역에 오랜기간 좋은 의료 활동을 해 온 인사를 초대해 교육을 진행하는 건 어떨까. 대학졸업하고 대형병원에서 수련받는 구조에서는 지역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애초에 알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조언했다.

금창영 이사장도 “나이 많은 의사들 정년 퇴임하면 내려올거야라는 말은 되게 무책임한 말이다. 정부나 이런 곳에서 명단을 주고 연락처를 주고 이 사람한테 연락해봐 올 생각 있어, 이렇게 해야 해볼 만한건데 그렇지 않고서는 지역에서 의료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확신도 없어지고 동력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라며 “그렇다고 돈 더 줄게 하는 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까 우려된다. 얼마전 예비의료인들이 의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 희망을 봤다. 시간을 내서 이곳을 둘러보고 지역의 가치, 의료사협의 가치를 공감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이런 식의 교류가 더 활성화돼야 한다”고 공감했다.

옥천신문  허원혜·이현경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 이 기사는  옥천신문(http://www.okinews.com)과 제휴한 기사입니다. 

옮긴 이 : 김미경 편집위원

옥천신문 허원혜·이현경 기자  minho@okinews.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옥천신문 기사더보기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