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거도 독실산 정상, 노거목 아래 동백꽃

 

▲ 가거도 독실산 정상 노거목 아래 동백꽃

선연히 떠오르는 떨어진 동백꽃

동백꽃은 있는 그대로 참 아름답다. 눈 속에 피어 있는 동백꽃은 더욱 아름답다. 떨어져 있는 선연(嬋娟)한 동백꽃은 더더욱 아름답다. 전라남도 가거도 독실산 정상에서 만난 노거목 아래 마치 꽃자리를 펼쳐 놓은 듯 떨어져 누워 있는 동백꽃을 나는 잊지 못한다. 2009년 5월 초 식물상 조사차 가거도에 갔을 때, 등산로도 제대로 나 있지 않아 거친 풀숲을 헤지고 가까스로 해발고도 639m 독실산 정상에 올랐다.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한 아름 됨직한 줄기, 사방으로 뻗어 커다란 바가지를 엎어놓은 듯한 무성한 가지, 반짝반짝 빛나는 잎 사이로 주렁주렁 달린 꽃으로 보아 수령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노거목 동백나무가 반긴다. 동백나무 하면 나는 지금도 바로 그 동백나무 노거수와 함께 떨어진 동백꽃이 선연히 떠오른다.

▲ 가거도 독실산에서 본 동백꽃

 

동백나무라는 식물명

동백은 한자로 ‘冬柏’ 또는 ‘冬栢’으로 쓴다. 측백나무 또는 잣나무를 뜻하는 ‘栢’은 ‘柏’의 속자(俗字)로 둘 다 통용된다. 동백나무는 한자어 ‘동백(冬柏)’에 고유어 ‘나무’를 합성하여 명명한 것이다. 잎 모양은 다를지라도 한겨울 눈 속에서도 푸른빛을 자랑하는 측백이나 잣나무처럼 늘푸른잎을 달고 고운 꽃까지 피우는 나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동백은 한자명일지라도 중국에서 차용한 이름은 아니다. 동백나무를 중국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산다(山茶), 그 꽃을 산다화(山茶花)로, <광군방보(廣群芳譜)>에는 다화(茶花)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백나무 문헌 기록

동백(冬柏)이란 식물명은 문헌상 고려 중기 문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전집》에 들어 있는 다음의 한시 〈동백화(冬栢花)〉에 처음 등장한다.

 

  복사꽃 오얏꽃 비록 아름다워도 (桃李雖夭夭)
  부박한 꽃 믿을 수 없도다. (浮花難可恃)
  송백은 아리따운 맵시 없지만 (松柏無嬌顔)
  추위를 견디기에 귀히 여기도다. (所貴耐寒耳)
  여기에 좋은 꽃 달린 나무 있어 (此木有好花)
  눈 속에서도 능히 꽃을 피우도다. (亦能開雪裏)
  곰곰 생각하니 잣나무보다 나으니 (細思勝於栢)
  동백이란 이름이 옳지 않도다. (冬栢名非是)

 

송백(松柏)은 한겨울에도 추위를 견뎌 푸르름을 자랑하지만 눈 속에서도 능히 꽃을 피우는 동백(冬栢)은 송백(松柏)보다 윗길이라고 상찬한다. 조선시대로 내려오면서 중국명 산다화(山茶花), 다화(茶花), 학단(鶴丹), 학정홍(鶴頂紅), 내동화(耐冬花) 등 다양한 한자명이 등장한다. 동백나무라는 식물 분류학상 명칭은 정태현 외 3명의 <조선식물향명집>(1937)에 처음 등장한다. 이후 정태현 외 2명의 <조선식물명집>(1949)과 이창복<한국수목도감>(1966)에는 동백이란 이름으로 기록된다. 국립수목원의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는 ‘동백’보다는 ‘동백나무’를 추천명으로 삼고 있다. ‘동백’ 그 자체가 나무이기 때문에 굳이 ‘나무’를 붙이지 않아도 되지만 의미를 중복하여 ‘동백나무’로 일반화한 것이다.

 

선교사 Kamel을 기념한 동백나무 학명

동백나무는 국제적으로 ‘Camellia japonica L.’ 라는 학명으로 통용된다. 속명 ‘Camellia’는 게오르그 조지프 카멜(Georg Joseph Kamel, 1661~1706)의 이름에서 비롯한다. ‘Camellia’는 ‘Kamel’의 라틴어 이름 ‘Camellus’에서 온 것이다. 최초 명명자인 린네는 그의 공적을 기리어 그의 이름을 동백나무의 속명으로 삼았다. 카멜은 지금의 체코 동부지방 모라비아(Moravia) 출신으로 필리핀 마닐라에 파견된 예수회 소속 선교사다. 선교가 본업인 가톨릭 수사였지만 박물학에도 조예가 깊어 필리핀 동식물에 관한 책을 저술한다. 동백나무는 그에 의해서 유럽 학계에 최초로 보고되었다. 유네스코는 그의 이런 공로를 인정하여 2006년 그의 사망 300주년을 기념하기도 했다. 종소명 ‘japonica’는 물론 원산지가 일본인 것을 밝힌 것이다.

 

동백나무의 분포

동백나무는 세계적으로는 일본 중부 이남에서부터 타이완까지, 대륙에서는 중국 산둥반도와 저장성까지 올라가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바닷가 근처 산지를 비롯하여 남부 섬 지역에서 주로 자생한다. 한반도 동쪽으로는 울릉도, 서쪽으로는 경기도 대청도까지 올라간다. 바닷가 육지에서는 충청남도 서천군 마량리까지, 내륙에서는 전라남도 지리산 화엄사 경내에 자생하며, 전라북도 고창 선운사 산기슭에 자라는 것이 가장 북쪽이다. 지금은 다양하게 육종한 동백나무 품종을 중부지방에서도 정원수나 공원수로 많이 식재한다. 남부지방에 가면 정원수나 가로수 또는 생울타리용으로 심은 동백나무와 비슷한 것이 있는데 이게 바로 애기동백, 일본산 외래종이다. 일본에서는 동백을 한자로 춘(椿)으로 쓰고 ‘쓰바끼’라 하며, 다매(茶梅)인 애기동백을 ‘사산카’라고 부른다. 같은 차나무과 동백나무속이지만 동백나무는 키가 높게 자라고 꽃이 통째로 떨어지는 통꽃이다. 이에 비해 애기동백은 키도 작고 목련이나 장미처럼 꽃잎이 하나씩 떨어지는 갈래꽃인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 완도수목원에서 본 애기동백
▲ 고창 선운사 골짜기의 동백나무 숲
▲ 고창 선운사에서 본 흰동백꽃
▲ 해남 땅끝에서 본 동백꽃

 

▲ 여수 금오도에서 본 동백꽃

동백나무의 형태상 특징

차나무과에 속하는 동백나무는 따뜻한 남녘에서는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는 11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차츰 북상하면서 이듬해 봄빛이 무르익는 5월까지 핀다. 키는 보통 2~6m 정도이지만 크게는 10m까지 자라는 늘푸른 작은키나무 또는 큰키나무이다. 줄기는 단단하고 껍질은 매끈하며 황갈색 내지 회갈색이고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사계절 달고 있는 진녹색 잎은 끝이 뾰족하고 밑이 쐐기 모양인 타원형이며 잎 가장자리엔 잔톱니가 촘촘하게 나 있는데 가죽처럼 두껍고 겉에는 광택이 난다. 꽃 색깔은 보통 붉은빛이지만 드물게 흰색, 분홍색도 있다. 크고 도톰한 꽃잎은 5~7개가 겹쳐 나팔꽃 모양이지만 밑부분에서는 합착되어 있는 통꽃이다. 하나의 암술을 많은 수술이 모여 둘러싸고 있는데 꽃밥이 샛노란 색이라서 새빨간 꽃잎과 대조를 이룬다. 핏빛처럼 붉은 동백꽃은 꿀을 찾아 날아오는 동박새 눈에 쉽게 띄어 수정을 용이하게 하려는 나름의 전략이다. 호도보다는 약간 작은 둥근 열매는 9~10월이 되면 검붉은 색으로 익어 3조각으로 벌어지는데 그 안에 각진 잣 모양의 갈색 씨가 3~9개 들어 있다.

▲ 완도수목원에서 본 동백나무 열매

 

버릴 게 없는 동백나무

동백나무는 겨울에도 붉게 피는 꽃이 매우 고와 정원수로 인기가 높다. 최근에는 세계 각국에서 육종한 원예품종이 도입되어 중부지역에서도 식재되고 있다. 동백나무하면 동백기름이 생각될 정도로 동백나무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중 으뜸은 역시 동백기름이다. 동백기름은 맑은 노란색인데 변하지도 않고 굳지도 않으며 날아가지도 않고 때도 끼지 않아 여인내의 머리 매무새를 전아(典雅)하게 단장하는 데 최고품이다. 머릿기름용 외에도 식용유나 등잔불을 밝히는 기름으로도 썼는데 다른 기름에 비하여 그을음이 적고 불꽃이 밝다고 한다. 동백기름은 가구의 도료로도 이용하고, 민간에서는 부스럼에 바르는 약으로도 썼다고 한다. 동백나무 목재는 단단하고 치밀해서 악기나 농기구, 가구, 얼레빗, 다식판, 목탁, 목기 등을 만드는 데 좋은 재료가 된다. 피기 직전의 동백꽃을 따서 말린 것을 생약명으로 산다화라고 하는데 지혈작용이 있어 한방에서는 토혈, 하혈, 산후 출혈, 피멍 등에 달여 마시거나 가루를 내어 먹었다고 한다. 동백나무 잎을 태운 재는 도자기의 자색을 내는 유약으로도 요긴하게 썼다고 한다. 우리에게 동백나무는 한 마디로 하나도 버릴 게 없는 요긴한 나무라고 하겠다.

 

동백나무와 부끄러운 고백

옛날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정훈(丁薰)의 <동백>이란 시가 실린 적이 있다.

 

   백설이 눈부신
   하늘 한 모서리

 

   다홍으로
   불이 붙는다.

 

   차가울사록
   사모치는 정화(情火)

 

   그 뉘를 사모하기에
   이 깊은 겨울에
   애태워 피는가.

 

한겨울 눈 속에 피는 꽃이 어디 있을까? 이 시를 가르칠 때만도 나는 동백을 알지 못했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전라북도 서해안으로부터 다소 떨어져 있는 내륙이라서 동백꽃을 본 적이 없었다. 동백꽃도 보지 못한 국어 선생이 <동백>이란 시를 가르친 것이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한 번도 본 적 없으며 어찌 사무치는 정념의 화신 동백을 말할 수 있으랴! 누군가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보는 만큼 안다.’고 말하고 싶다.

▲ 울릉도에서 나리분지에서 본 동백꽃

또한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에 다음과 같은 마지막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있는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잘 알다시피 이 소설의 배경은 강원도 춘천 근교 산골이다. ‘강원도에 동백꽃이 어디 있어?, 그것도 노란 동백꽃이!’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고급 동백기름이 귀한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나 쪽동백의 열매에서 얻은 씨로 기름을 짜서 동백기름 대신 머릿기름으로 썼다고 한다. 진짜 동백꽃은 향기가 없다. 하지만 이른 봄 잎도 나기 전 노랗게 피는 생강나무 꽃은 정말 알싸하고 향긋한 향기가 그만이다. 소년이 점순이의 채취에 취해 정신이 고만 아찔해졌는지 모르겠지만.

▲ 노란 동백, 생강나무

동백나무의 상징

옛날 남녘에서는 혼례식 초례청에 소나무나 대나무 대신 동백나무 가지를 꽂았다고 한다. 동백나무를 신성과 번영을 상징하는 길상(吉祥)의 나무로 여겼기 때문이다. 사계절 푸른 잎을 달고 선연한 꽃을 피우며 풍성한 열매를 맺는 동백나무처럼 오래오래 변치 않는 사랑으로 아들딸 많이 낳고 영화롭게 살았으면 하는 서민들의 소박한 바람이 깃들여 있다 하겠다. 그런가 하면 어느 날 일순간에 조금도 이지러지지 않은 채 통째로 떨어져 하늘을 보고 있는 동백꽃, 어딘지 처연(悽然)해 보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제주도에서는 동백나무를 불길하게 여겨 울안에 심지 않는다고 한다.

 

동백나무와 관련된 잘못된 말

‘뜻밖에 일어나는 불행한 일’을 가리켜 ‘춘사(椿事)’라고 한다.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소설 <La Dame aux Camelias>를 ‘춘희(椿嬉)’라는 이름으로 번역하여 널리 읽힌다. 그런데 이는 일본에서 동백나무를 ‘춘(椿)’이라고 잘못 쓴 데서 연유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에서는 ‘춘(椿)’이 동백나무와 무관한 멀구슬나무과 속하는 전혀 다른 나무라고 한다. 중국 고전 <장자(莊子)> 소요유(消遙遊)에는 "아득한 옛날 대춘(大椿)이란 나무가 있었는데 8,000년 동안은 봄이고 다시 8,000년 동안은 가을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처럼 ‘춘(椿)’은 8,000세까지 장수하는 신령스런 나무이다. 그래서 ‘춘수(椿壽)’란 장수(長壽)를 뜻하고, 남의 아버지를 높여 부를 때 춘당(椿堂) 또는 춘부장(椿府丈)이라고 한 것이다. 본래 춘사(椿事)라는 말은 ‘뜻밖에 일어나는 불행한 일’이 아니라 춘(椿)이라는 신령스런 나무와 같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란 의미다.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

동백꽃을 보러 강진에 가고 싶다. 소나무, 삼나무, 편백나무와 종가시나무, 후박나무, 황칠나무 등, 늘푸른 바늘잎나무와 넓은잎나무가 한데 어우러진 다산초당길을 걷고 싶다. 잠시나마 세사에 찌든 떼를 떨쳐 버리고 느릿느릿 거닐고 싶다. 다산이 그리했던 것처럼 천일각에 올라 멀리 강진만 구강포도 굽어보고 싶다. 내친김에 다산과 혜장이 오가던 산길 따라 백련사 골짜기 동백나무 숲에도 가보고 싶다. 햇빛에 반짝이는 짙푸른 동백잎, 그 속에 붉게 핀 동백꽃, 활짝 핀 얼굴 드러내며 혹여 날 반겨주지 않을까.

▲ 강진 백련사에서 본 동백꽃

 * 참고문헌 : 꽃으로 보는 한국 문화 1-3(이상희지음 / 넥서스BOOkS)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이호균 주주통신원  lee1228h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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