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은망덕하지 말고 착하게 살자

중산랑전 연재를 마치고 후속으로 세 편의 글을 소개합니다.

첫째 중산랑전은 중국 명(明)나라 때 문학가 마중석(馬中錫:1466∼1512?)의 소설이고, 둘째 설화는 1884년 구전설화를 구술한 것입니다. 마지막 토끼의 재판은 방정환(1899∼1931) 선생이 지은 글입니다.

이렇게 세 편을 나란히 소개하는 까닭은 이야기의 소재가 비슷해도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죠.

공통된 교훈은 나쁜 맘 먹지 말고 착하게 살자, 즉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지 말자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면 세 편을 감상하세요.

▲ 토끼의 재판그림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waybook&logNo=220838295910

첫째, 중산랑전

김종운 번역

조간자는 중산지방에서 큰 사냥에 나섰다. 우인이 앞에서 길잡이를 하고, 사냥개와 사냥매가 뒤에 포진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을 안겨주었다. 화살에 맞아 떨어지는 재빠른 새와 사나운 짐승의 수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런데 이리 한 마리가 길 한가운데서 사람처럼 서서 울고 있었다. 조간자가 손을 들어 수레에 오른 후 명궁 오호를 들고 숙신의 화살을 활시위에 걸었다. 화살을 쏘니 화살 깃까지 이리 살 깊숙이 박혔다. 이리는 실성한 듯 비명을 지르고는 즉각 도망쳤다.

조간자는 화가 나서 수레를 몰아 이리를 뒤쫒았다. 휘날리는 흙먼지가 하늘을 가리고 발걸음은 지축을 울려 불과 열 발자국 앞의 사람과 말도 분간이 어려웠다.

이 때 묵가를 신봉하는 동곽선생이 관직을 얻으려고 북쪽으로 가다 마침 중산에 이르렀다. 그는 볼품없는 나귀를 타고 책을 보따리에 싣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 길을 잃고 있던 차 멀리 흙먼지가 이는 것을 보고는 놀라 심장이 뛰었다. 이리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나 목을 뒤로 빼어 뒤돌아보면서 말했다.

“선생, 당신은 세상을 돕는데 뜻이 있지 않나요?”

예전에 모보가 검은 거북을 방생하여 강을 건너고, 수후가 뱀을 구해 구슬을 얻었습니다. 거북과 뱀은 진실로 본성이 본래 이리에 비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일은 어찌 나를 자루에 넣어 숨을 이어가도록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중에 내가 재능을 발휘하게 되면 선생의 은혜는 죽은 자를 살리고 뼈에서 살이 돋아나게 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감히 거북을 본받고 뱀의 충성을 다하도록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선생이 말하길

“아, 내가 이리를 숨겨주는 것은 세도가에 죄를 짓는 것으로 장차 화를 예측하기 어려운데 어찌 감히 보답을 바랄 수 있을 것인가? 다만 묵가의 도가 ‘겸애’를 근본으로 하는 바, 내 끝내 너를 살려 화를 벗어날게 할 것으로 사양하지 않을 것이다.”이어 책을 꺼내 포대를 비우고는 천천히 이리를 포대 속에 넣었다. 그런데 이리의 턱살이 짜집힐까 염려하고 꼬리가 눌리까 걱정이 되어 세 번이나 넣는데 실패하였다. 동작이 더디고 머뭇거리는 동안 추격해 오는 사람들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리가 간청하여 말하길

“사정이 급해졌어요! 선생은 불난 곳이나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때 예절을 차려가며 구할 것인가요? 도적을 피할 때 방울소리를 내면서 도망갈 것인가요? 바라건대 선생은 속히 도모하시오”라고 말하고는 네 다리를 움츠려서 새끼줄을 당겨 속박하도록 하였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허리를 웅크려 턱까지 굽혀 고슴도치와 자벌레처럼 몸을 움추려 뱀똬리를 틀고, 거북이처럼 숨을 간신히 쉬며 선생에게 재촉하였다. 선생은 그 말에 따라 이리를 포대에 넣은 후 주둥이를 묶고는 어깨에 들쳐 맨 후 나귀 등에 올려놓은 후 길가로 피한 후 조씨 일행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오래 지나지 않아 조간자가 도착하였다. 이리를 찾지 못하자 크게 화를 내며 칼을 뽑아 수레채를 잘라 버리고는 동곽선생을 보고는 소리쳤다.

“감히 이리의 향방을 감추려 든다면 수레채 꼴이 될 줄 알아라.”

동곽선생은 두 손을 땅바닥에 대고 엎드려 말하기

“저는 불민한 사람이지만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은 생각이 있어 이 먼 곳까지 와서 저도 길을 잃었는데 어찌 이리의 종적을 알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사냥개와 사냥매에게 이리를 자취를 쫒도록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일찍이 듣건대 큰 길을 지나다 갈림 길이 많아 양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무릇 양이란 어린 아이도 가히 돌볼 수 있을 정도로 온순하지만 길이 많으면 잃어버리게 되는 것인데 이리는 양에 비유할 수도 없을 정도로 중산의 갈림길이란 가히 길이 많아 양을 잃어버린 길과 같습니다. 만일 큰 길을 따라서 이리를 추적한다면 이는 수주대토나 연목구어와 같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사냥은 수렵군인 우인의 소관사항이니 당신은 수렵관에게 가서 물어야지 길을 지나는 행인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제가 비록 우둔한 사람이지만 설마 이리를 모르겠습니까? 이리의 본성은 탐욕스럽고 잔인하고 승냥이와 짝패를 이뤄 사람에게 해를 끼칩니다. 당신이 이리를 없애려고 한다면 내가 마땅히 와서 미력한 힘이나마 보태야할 것이지 어찌 몰래 사실을 숨기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조간자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수레로 돌아가 길을 갔다. 동곽선생도 나귀를 쫒아 길을 재촉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한참이 지나자, 조간자 일행의 깃발이 점차 멀어져 보이지 않게 되고 수레와 말의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자 이리는 조간자가 이미 멀리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자 자루 속에서 소리를 내었다.

“선생, 이제 내 생각을 해서 나를 자루 속에서 꺼내 주시오. 나를 묶었던 끈을 풀고 내 앞 발의 화살을 뽑아 주시오. 나는 열고 나가고 싶소.”

동곽선생이 손으로 이리를 나오도록 꺼내주었다. 이리는 동곽선생에게 포호하며 말하기를 “방금 사냥꾼이 나를 쫒아올 때 그들의 속도가 매우 빨랐는데 다행히 선생이 나를 구했소. 지금 나는 배가 매우 고픈데 굶주리고 먹을 것도 없으니 종국에는 틀림없이 죽어버릴 것이오. 길에서 굶어 죽으면 짐승들에게 먹이가 될 것이니 사냥꾼의 손에 죽어 귀족 집의 제삿상에 올려지는 것만 못할 것이오. 선생은 이왕 기꺼이 자기 몸을 버려 세상을 구하는 묵가의 신도로 고생도 마다않고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분이시니 어찌 내게 몸을 주어 먹이가 되는데 인색하여 내 작은 생명을 보존하지 않게 하겠습니까?”

하고는 동곽선생을 향해 주둥이를 크게 벌리고 날카로운 발톱을 세웠다.

동곽선생은 황망하게 손으로 이리를 부여잡고 격투를 벌였다. 격투를 벌이다가 도망하여 나귀의 뒤에 숨기도 하고 주위를 맴돌며 도망 다녔다.

이리는 시종 우위를 점하지 못했고 동곽선생도 온힘을 다해 저항하여 피차 매우 피곤해져서 나귀를 사이에 두고 숨을 헐떡였다. 동곽선생이 말했다.

“이리야. 내게 미안하지도 않니?. 이리야 내게 미안하지도 않니?”

이리가 말했다.

“난 당신에게 조금도 미안하지 않소. 오직 하늘이 너희를 나게 했을 때 본래 우리에게 잡혀 먹히도록 한 것이오.”

서로 한참을 대치하자 해 그림자가 점차 서쪽으로 옮겨갔다. 어두워지면서 동곽선생이 가만히 생각하니 만약 이리떼가 또 오게 되면 나는 곧 죽을 것이다. 이리하여 이리에게 꾀를 내어 말하길

“속설에 따르면 ‘일을 해결하기 어려우면 반드시 세 분의 어르신에게 여쭤보라.’라고 했다. 우리도 다만 앞으로 가서 세 분의 어르신을 찾아 물어보기로 하자. 만약 내가 마땅히 네게 잡아먹혀야 한다면 네게 먹혀도 좋고 만약 먹히지 않아야한다면 날 잡아 먹지 마라.” 이리도 크게 기뻐하여 바로 동곽선생과 함께 함께 길을 떠났다.

한참을 지나도 길에 지나는 사람이 없었고, 이리는 배가 매우 고팠다. 길가에 고목이 한 그루 서있는 것을 보자 동곽선생에게 말했다.

“저 나무에게 가서 물어 봅시다.”

동곽선생이 말하길

“초목은 어떤 식견도 없는데 그에게 물어 뭐하겠는가?”

이리가 말하길

“그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말할거요.”

선생이 부득이하여 고목에게 두 손을 모으고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물었다.

“일이 이리 되었으니 이리가 나를 잡아먹는 것이 당연하겠는가?”

나무 그루터기에서 중후한 소리가 나며 동곽선생에게 말하길

“나는 은행나무요. 예전에 농사꾼이 나를 심을 때는 단지 은행나무 씨를 심었을 뿐이오. 1년이 지나 꽃이 피고 또 1년이 지나 열매가 열렸고, 삼년 만에 양 손가락을 모을 정도로 자랐고 십년이 되니 양팔을 둘러야 될 정도로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현재 20년이나 되었소. 농사꾼과 그의 아내 그리고 아들과 밖으로는 손님 그리고 하인까지 모두 내 열매를 먹었소. 또한 열매를 장에 내다 팔아 돈벌이를 하여 농사꾼에게 내 공로가 매우 컸소. 현재 내가 늙어버려 꽃과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자 농사꾼은 화가 나 내 줄기를 잘라버리고 가지와 잎을 제거해버렸소. 또 장차 나를 장인에게 팔아 돈으로 바꾸려고 한다오. 아! 내가 이렇게 늙어 쓸모없는 나무가 되어버리니 도끼날을 베어지는 것을 면하기 어려워졌는데 당신이 이리에게 무슨 은덕을 베풀었다고 죽음을 모면하길 바라겠소? 당연히 당신을 잡아먹어도 되오.”

나무가 말을 마치자 이리는 주둥이를 크게 벌리고 발톱을 세워 동곽선생에게 달려들었다.

동곽선생이 말하길

“이리야, 약속위반이구나. 세 어른에게 묻기로 맹서를 했지 않았느냐? 지금 은행나무 하나를 만났을 뿐인데 어찌 이리 급박할 수 있느냐?”

이리하여 이리와 동곽선생은 다시 함께 길을 떠났다.

이리는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한 마리 늙은 암소가 퇴락한 낮은 담장 가에서 햇빛을 쐬고 있는 것을 보고는 동곽선생에게 말했다.

“저 늙은 소에게 물어봅시다.”

동곽선생이 말했다.

“종전에 초목이 식견이 없어 허툰 소리로 일을 그르쳤다. 지금 저 소는 가축에 불과할 따름인데 또 어찌 그에게 물어 본단 말인가?”

이리가 말했다.

“아무튼 그에게 물어 봅시다. 물어 보지 않으면 당신을 잡아먹겠소.”

소는 눈살을 찌푸리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코를 핥으며 입을 크게 벌리고 동곽선생에게 말했다.

“늙은 은행나무의 말이 옳소. 내가 당초 송아지일 때도 근력이 매우 좋았는데 늙은 농부가 칼 한 자루를 팔아 나를 사서 나를 소들이 밭을 가는데 돕도록 했소. 내가 힘이 세지면서 소들은 하루하루 노쇠해져서 일이란 일들은 모두 내가 맡아 하게 되었소. 그가 사냥을 할 때면 나는 사냥하는 수레를 끌고 편리한 길을 골라 질주하였소. 그가 파종을 할 때면 나는 수레를 벗고는 야외로 가서 밭을 일궜소. 늙은 농부는 나를 그의 양팔로 여겼소.

입고 먹는 것을 나에게 의존하여 풍족하게 지냈고, 혼인도 내게 의지하여 완수할 수 있었으며, 세금도 내 덕분에 납부하고, 곡식창고도 내 덕에 가득 차게 되었소. 그런데 내 생각해 보니 내가 죽고 나면 말이나 개처럼 돗자리를 가지고 시체를 덮는 신세가 될 것이요. 예전의 그의 집은 한 두 석의 곡식도 없었는데 지금은 가을에 추수하는 밀이 십 곡도 넘소. 종전에서 궁벽하게 거주하여 누구도 돌보거나 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마을에서 어깨를 으쓱거리며 걷게 되었소.

예전에는 술잔과 술병에 먼지만 가득 쌓여 입과 입술도 말라버렸고, 살아오면서 술이 가득 찬 탁주잔을 들어보지도 못했지만 지금은 곡식으로 술을 담그고 각종 좋은 술잔들로 입을 축이며 호기롭게 처첩을 대하고 있소. 옛날에는 허름한 옷을 입으며 목석과 동무하며 예절도 모르고, 서책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손에 초급 서책이나마 들고서 갓을 쓰고 가죽혁대를 매고 맵시 있는 옷을 입고 있소.

옷 한 벌 밥 한 술 모두 다 내 공로임에도 지금 도리어 내가 늙고 쇠약해졌다고 업신여겨 나를 벌판에 버리니 찬바람이 눈을 찌르고 추운 날 홀로 내 그림자를 위로하고 있소. 수척한 몰골은 산과 같고 늙은 눈물이 빗물처럼 쏟아지고 침이 흘러도 훔치지도 못하고 다리를 구부리거나 펴지도 못하겠고 모피도 다 닳아버렸고 상처는 아직 낫지도 않았소. 늙은 농부의 처는 못되고 사납게 밤낮으로 말합니다.

“소의 온몸이 못쓰게 되었으니 고기는 육포로 만들고 가죽은 피혁으로 만들고 대가리와 뿔은 갈아 그릇으로 만듭시다.”

큰 아들에게 말하기를

“너는 푸줏간에서 백정 일을 배우기를 수년이나 했는데 왜 숫돌에 칼을 갈아 소를 잡지 않느냐?”

“이러한 행동거지로 보건대 반드시 나에게 불리하니 내 장차 어디에서 죽을지도 모르겠소. 내 공이 있는데도 그들이 이리도 무정하여 내 장차 화를 입을진대 당신이 이리에게 무슨 은덕이 있다고 화를 모면하길 바라겠습니까? “

늙은 소가 말을 마치자 여우는 또 주둥이를 벌리고 발톱을 세워 동곽선생에게 달려들었다.

동곽선생이 말했다.

“서둘지 마라!”

멀리서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오는 것이 보였다. 수염과 눈썹이 모두 하얗고 의관이 단아하여 도인처럼 보였다. 동곽선생이 기쁨에 놀라 이리를 뿌리치고 나아가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읍소하며 말했다.

“노인장, 한 말씀만 해 주셔서 저를 살려 주세요.”

노인이 까닭을 물으니 동곽선생이 대답했다.

“저 이리가 사냥꾼에게 쫓겨 도망을 와서 내게 살려 달라고 하여 이리를 구해 주었어요.”

지금은 도리어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니, 힘을 다해 구해주고도 도리어 죽음을 면하기 어려워 촌각을 다투고 있습니다.

처음에 세 분의 어른께 물어보고 이 일을 정하기로 약속을 해서 처음에 늙은 은행나무를 만났습니다. 이리는 내게 은행나무에게 묻도록 핍박하였는데 초목은 그 어떤 식견도 없어 나를 거의 죽게 할 뻔했답니다. 이어서 늙은 암소를 만났는데 이리는 또 그 암소에 물어보도록 강요하였는데 짐승도 그 어떤 식견도 없어 또 죽을 뻔했답니다.

이제 노인장을 만났으니 하늘이 이 서생을 죽게 하지는 않겠지요? 절 살려주시는 말씀 한마디만 해 주세요.”

말을 마치고는 노인의 지팡이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노인의 말을 고대하였다. 노인은 동곽선생의 말을 듣고는 여러 번 탄식을 하고는 지팡이를 두드리며 이리에게 말했다.

“네가 잘못했구나. 다른 사람이 네게 은덕을 베풀었는데도 너는 도리어 배신을 했으니 이 보다 더 못된 일은 없다. 유가에 이르길 다른 사람의 은혜를 입고도 차마 배신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고, 어린 아이들마저도 반드시 효를 안다고 했다. 또 가령 짐승일지라도 부모 자식의 정을 안다고 했는데 지금 너는 이처럼 배은망덕하니 부자지간의 정마저도 없구나.”

노인은 더욱 준엄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리야! 너는 빨리 떠나거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지팡이로 널 쳐서 죽일 것이다!

이리가 웃으며 말했다.

“노인장은 지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오. 내가 정황을 잘 설명할테니 노인장은 잘 들어 주기 바랍니다. 동곽선생이 날 구해 줄 때 새끼줄로 내 다리를 묶고 나를 자루에 넣고는 서책들로 날 눌러서 내 머리가 쳐 박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답니다. 또 조간자에게 횡설수설하였는데 동곽선생의 의중은 나를 자루에서 죽게 만들어 자기가 독차지 하려고 한 것이니 이런 자를 어찌 잡아먹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노인이 고개를 돌려 동곽선생에게 물었다.

“과연 이 말대로라면 당신은 일 처리를 못했으니 구해 주려고 했다 하더라도 잘못했소.”동곽선생이 불복하여 그가 이리를 자루에 넣을 때 이리를 애지중지했던 마음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이리도 쉴 새 없이 교활한 말로 자기가 유리하도록 말했다.

노인이 말했다.

“이 말들을 모두 그대로 믿기가 어려우니 한 번 더 자루에 넣어 정황을 내가 직접 보고 곤란했는지 여부를 알아보겠소.”

이리는 신이나 그 말을 따라 동곽선생에게 다리를 뻗었다.

동곽선생은 다시 이리를 새끼줄로 묶고 자루에 넣고는 어깨로 걸쳐 나귀 위에 올려놓았는데 이리는 노인의 의중을 깨닫지 못했다.

노인은 입을 동곽선생의 귓가에 대고 물었다.

“칼이 있소?”

동곽선생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칼을 건네주었다.

노인은 동곽선생에게 눈짓으로 그에게 칼로 이리를 찌르라고 하였다.

동곽선생이 말했다.

“이리하면 이리를 해치는 것이 아닙니까?”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짐승이 이처럼 배은망덕한데 당신은 아직도 그를 차마 죽이지 못하는군요. 당신은 비록 어진 사람이라 하지만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소. 다른 사람이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 그를 구하려고 따라서 우물에 뛰어들고, 추운 겨울에 자기 옷을 벗어 다른 사람에게 입혀주어 그를 구한 후 자신은 도리어 얼어 죽는다면 이것이 상대에게는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을 죽이는 일이 아니요? 선생은 대체로 이런 종류의 사람이 아닌가요? 인의 뒷공론에 빠져 어리석음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니 진실로 군자가 할 바가 아니오.”

노인이 말을 마치고 한바탕 웃자 동곽선생도 따라 웃었다. 노인은 손을 뻗어 동곽선생이 칼로 이리를 찔러 죽이는데 도움을 주고는 이리를 길가에 버리고 길을 떠났다.

 

둘째, 설화 꾀많은 토끼의 재판

최만기 구술(1984년)

잇날에, 잇날에는 좀 호래이도 말을 하고 오만(온갖) 짐승도 말 했답니다. 그러이 잇날에 중이, 중이 절이 고만 허술해가주고, 캐가 _동냥 좀 해가 절을 좀 번창해야 할따._ 하고 고마 참 중마중을 딱 나서서 댕기미 하이. 하로 얼마꼼 해 모두고 이래해서, 이래는데. 중도 인제 이런 동네 한자루 했는 겉으만 그 또 또 한 등을 넘어가서 또 동냥을 할라 이카니. 그거 산고개를 넘어 갈라고 이래본께, 양달편에서 _대사, 대사,_ 이래 불러,

“그 누가 부르노?”

“좀 이리와 봐. 이리와 봐.”

“거 이상하다.”

질도 아이고 그 양달 가야 되는데, 가본께로 호래이가 함중(함정)에 문에 덜컥 갇히가주고, 대사뚜로(1)대사더러. 살리 돌라 카는기라.

“내가 이래가 있는데, 대사가 안 살리마 살릴 사람이 없은께 대사는 나를 좀 살리주고 가라.”

“어, 그래 살리주지.”

문을 살짝 열어 좄다. 준께, 나와서 호래이가,

“아 이거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이거, 천상에 대사를 자아 먹어야 되지요 안 자아 먹고 내가 죽을 터이고 이거. 천상에 자아 먹어야 되겠다.”

“아이, 함정에 갇힌 거 살리 준 것도 고마운데 자아 먹어. 그런 그석은 없다.”

“어허 자아 머야 되.”

그래 그차 또 이칸께 다라미가, 다라미가 이래 깅과(경과)를 보고 다라미 이 언청 어깐이 없은께,

“다라미 여 선생 이리 와 봐라. 이런 경과를 한분 해도가.”

“그래 어떻기 됐나?”

“아이, 내가 이래 간께 _대사, 대사._ 불러가주고 가보이, 그래 갇히 있는걸 살리 주이 날 자아 멀라 카는데. 이 어떻기 해야 되겠노?_ 다라미 선생님이 좀 판단해 도가.”

“아, 니, 저 그 인간이라 카는 걸 마카 씰어 없애는 기 좋기는 좋지. 곡식이라 카는 거는 전부 저어집으로 다 가이 가고, 그 자아 머었뿌리, 자무우라.”

칸께, 호래이뚜로 이칸께,

“봐, 자 자무라(잡아 먹으라) 카지.”

토끼가 또 어데서 훌훌 쫓아대이미(쫓아 다니면서) 이래 보고,

“토끼선상, 토끼선상. 여여 이거 여 판단 좀 해도.”

“무신 판단을?”

“아이, 내가 이리 저리 질로 가드라인께 _대사._ 라고 불러싸서 가서 보이 함정에 갇힌 걸 열어주인께, 날 자아 물라 카이 자아 무야 되겠나 안 자아 무야 되겠나. 판단을 해도.”

“그것 참 딱한 일인데, 처음에 우옛는데 한번 가보자.”

이놈의 호래이가 그 그 함정에 척 들앉아서,

“이길 이리 앉아서 내가 저리 내다보고 저리 대사가 가거든. _대사, 대사._ 불렀다.”

“그래, 그 재판 받아 보마 아지.”

둘러 앉는 걸 고만 토끼가 문을 털컥 잠갔거든.

“아, 대사 고마 가. 인지 해결, 재판 다 했다.”

이러카고 토끼가 그래 참 끼(꾀)가 많애가주고 그래 판단을 잘해 주더랍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정경란 구비문학대계 7-16쪽 수록)

 

셋째, 토끼의 재판

방정환 지음

▶ 때: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때

▶ 곳: 산속

▶ 나오는 인물: 호랑이, 토끼, 나그네, 소나무, 길

산속 외딴길에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커다란 호랑이를 넣은 궤짝이 놓여 있다. 바람 부는 소리와 나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호랑이: 아! 뛰쳐나가고 싶어 못 견디겠다. 아이고, 배고파.(머리로 문짝을 떠밀어 보고) 안 되겠는걸!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먼저 사슴이나 토끼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야지. (머리로 또 문을 밀어보고) 아무리 해도 안 되겠는걸. (그냥 쭈그리고 앉는다.)

 

나그네가 지나간다.

호랑이: (반가운 목소리로) 나그네님!

나그네: 누가 나를 부르나? (사방을 둘러본다.)

호랑이: 나그네님, 저를 좀 구해 주십시오.

나그네: (궤짝을 들여다보고) 이키, 호랑이구려! 무슨 일이오?

호랑이: 나그네님, 제발 문고리를 따고 문짝을 좀 열어 주십시오.

나그네: 뭐요? 문을 열어 달라고? 열어 주면 뛰쳐나와서 나를 잡아먹을 것이 아니오?

호랑이: 아닙니다. 제가 은혜를 모르고 그런 짓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앞발을 비비면서 자꾸 절을 한다.)

나그네: 허허, 알았소. 설마 거짓말이야 하겠소? 내가 이 궤짝 문을 열어 주리다. 그 대신 약속을 꼭 지키시오.

호랑이: 네, 얼른 좀 열어 주십시오. 배가 고파서 눈이 빠질 지경입니다.

나그네가 문을 열자 호랑이가 뛰쳐나와서 잡아먹으려고 덤빈다.

나그네: 이게 무슨 짓이오? 약속을 지키지 않고 …….

호랑이: 하하하,궤짝 속에서 한 약속을 궤짝 밖에 나와서도 지키라는 법이 어디 있어?

나그네: 조금 전에 은혜를 모를 리가 있겠느냐고 하면서 애걸복걸하지 않았소?

호랑이: 은혜 모르기는 사람이 더하지. 그러니까 사람은 보는 대로 잡아먹어도 괜찮아.

나그네: 그런 법이 어디 있소? 우리, 누가 옳은지 한번 물어보세.

호랑이: 그럼 재판을 하자는 말인가? 좋아, 해 보세.

 

나그네가 두리번거리다가 소나무한테 묻는다.

나그네: 소나무님, 소나무님! 당신도 보셨으니까 사정을 아시지요? 호랑이가 옳습니까, 제가 옳습니까?

소나무: 물론 호랑이가 옳지. 사람들은 은혜를 몰라. 내가 맑은 공기를 마시게 해 주는데도 마구 꺾지를 않나, 베어 버리지를 않나 ……. 호랑이야, 얼른 잡아먹어 버려라.

호랑이: 자, 어때? 내가 옳지?

나그네: (머리를 긁으며) 길한테 한 번 더 물어보세. 길님, 길님! 다 보고 들으셨지요? 호랑이가 옳습니까, 제가 옳습니까?

길: 물론 호랑이가 옳지. 사람들은 날마다 나를 밟고 다니면서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지. 코나 흥흥 풀어서 버리고 침이나 탁탁 뱉잖아? 호랑이야, 얼른 잡아먹어 버려라.

 

호랑이가 입을 쩍 벌리고 나그네를 잡아먹으려고 한다.

나그네: (기운 없는 목소리로) 잠깐, 한번더 물어봐야지. 재판도 세 번은 해야 하지 않소?

호랑이: (자신만만하게) 그래? 그러면 이번이 마지막이다.

나그네: 이번에는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하나? 마지막인데 ……. (풀이 죽은 모습으로 고개를 숙인다.)

 

그때 하얀 토끼가 지나간다.

나그네: 토끼님, 토끼님! 재판 좀 해 주세요. 이 궤짝 속에 갇힌 호랑이를 살려 준 나하고, 살려 준 나를 잡아먹으려는 호랑이하고 누가 옳습니까?

토끼: (귀를 기울이고 한참 생각하다가) 누가 누구를 살려 주었어요? 누가 누구를 잡아먹으려고 해요? 아, 당신이 이 호랑이를 잡아 먹으려고 해요?

나그네: 아니지요. 내가 호랑이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 호랑이가 궤짝에 갇혀 있었는데 내가 살려 주었어요.

토끼: 네,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호랑이하고 당신이 이 궤짝 속에 갇혀 있었다고요?

나그네: 아니지요. 호랑이가 갇혀 있었고 내가 지나가다가······.

토끼: 그러니까 호랑이가 지나가다 보니까······.

호랑이: (답답한 듯이 화를 내며) 아이고, 답답해.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지? 이 궤짝 속에는 내가 있었어, 내가!

토끼: 그랬습니까? 호랑이 속에 궤짝이 갇혀 있었다고요?

호랑이: 무얼 어째? 궤짝 속에 내가 갇혀 있었다니까!

토끼: 하하, 궤짝 속에 내가 갇혀? 아니지요. 호랑이가 이 양반 속에 갇혔는데 궤짝이 지나가다 보니까 ……. 아이고, 모르겠네. 왜 이렇게 알 수가 없을까? 죄송하지만 좀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눈으로 보면 쉽게 알 수 있겠는데······.

호랑이: (화를 벌컥 내며) 내가 자세히 설명을 해 줄 테니 잘 들어라.

나는 호랑이야, 호랑이. 알겠느냐?

토끼: (공손하게) 네, 호랑이님.

호랑이: (으스대며) 저기 서 있는 것이 사람이야. 알겠니?

토끼: 네, 호랑이님.

호랑이: 그리고 이것이 궤짝이야, 궤짝.

토끼: 네, 궤짝입니다. 호랑이님.

호랑이: 이 궤짝 속에 내가 갇혀 있었어. 알겠지?

토끼: 네 ……. 아뇨, 또 모르겠어요. 이렇게 큰 몸이 어떻게 이 궤짝 속에 들어가나요? 믿을 수가 없어요.

호랑이: 아이고, 답답해. 그래도 몰라? 바보 같으니. 잘 봐라. (궤짝 속으로 몸을 굽혀 들어간다.) 자, 이렇게 들어가지 않니? 이렇게 갇혀 있었단 말이야. 알았지, 알았어?

 

토끼가 얼른 달려들어 문고리를 걸어 잠근다.

토끼: (웃으면서) 이제야 알겠습니다. 설명하시지 않아도 잘 알겠습니다. 호랑이님이 어떻게 이 궤짝 속에 들어갔는지 잘 알았습니다.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호랑이: (놀라서 말을 못 한다.)

나그네: (토기를 쫓아가며) 토끼님, 대단히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호랑이: (궤짝 문을 차고 흔들면서) 나그네님, 이번에는 정말 잡아먹지 않을 테니 한 번 만 더 살려 주십시오. 토끼님, 토끼님! 은혜를 잊지 않을 테니 제발 살려 주십시오.

 

호랑이는 다시 궤짝 속에 쭈그려 앉아 있고, 나그네는 고개를 넘어간다.

즐거운 음악이 흐르며 막이 내린다.

(초등학교 교과서 국어 3-1 가 5. 내용을 간추려요(126쪽∼133쪽 수록) )

 

편집: 양성숙 부에디터

김종운 주주통신원  jong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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