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 4월 26일 마지막 '박근혜퇴진집회'를 마치고

김미경 편집위원l승인2017.05.06l수정2017.05.1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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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9일, 제 23차 집회를 마지막으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은 해체할 예정이다. 2000개가 넘는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퇴진행동]이 주최한 '박근혜정권퇴진 촛불집회'는 2016년 10월 29일 시작해서 2017년 4월 29일까지 딱 6개월 동안 총인원 1천7백만 명이 참석했다.

‘박근혜정권퇴진 촛불집회'는 ‘촛불시민혁명’이라는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 과거가 되었다. 이 ‘촛불시민혁명’의 시작은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라고 본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국민들은 박근혜 정부의 무능한 대처에 분노했다. 무능을 넘어서 무책임하고 몰상식한 후속 조치를 보면서 국민의 분노는 차곡차곡 쌓여 갔다. 하지만 시민들의 분노는 점화될 듯 될 듯 하면서도 불을 피우진 못했다. 박근혜 정권의 온갖 음해와 방해공작이 있었기 때문이다.

1년 7개월 후인 2015년 11월 14일 백남기 농민이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혼수상태가 되었다. 세월호 침몰 영상을 본 것처럼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쓰러지는 생생한 영상을 모든 국민은 보았다.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버리는지, 어떻게 죽이는지 똑똑히 보았던 것이다. 세월호와 백남기 농민 사건으로 국가 존재에 의문을 품는 분노가 시민들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고 본다. 이 두 분노는 고농도로 응축되어 작은 자극에도 폭발하기 일보직전이 되었다.

그 후, 10개월이 지난 2016년 9월부터 한겨레와 경향의 최순실 보도가 한건씩 나오기 시작했고, 9월 25일 백남기 농민은 사망했다. 박정권은 백남기 농민의 ‘외인사 사망’도 은폐하려 시도했고 최순실 농단은 부인하기 급급했다. 백남기 농민 사망 후 민중의 조용한 분노는 꿈틀대기 시작했다. 부검을 위한 시신탈취를 막기 위해 시민들이 제주에서부터 몰려왔고, 그 시민들을 먹이기 위한 희망포장마차가 나타났다. 희망포차에는 전국에서 택배로 보내온 물품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 희망포장마차에 쌓인 물품

10월 24일 JTBC 태블릿 PC 보도가 나왔다. 꼼짝달싹 할 수 없는 결정적 보도였다. 시민들은 더 이상 앉아서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민중의 쌓이고 쌓인 조용한 분노에 불이 붙어버린 것이다. 10월 29일 청계광장에서 시민들은 ‘이게 나라냐’를 외치며 ‘박근혜퇴진’을 요구했다. 3000~4000명이 올 것이라고 예상한 집회는 3만이 모이면서 청계광장에서 광화문광장까지 시민들로 꽉 찼다.

11월 5일 10만이 모인 2차 촛불집회는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가족단위 참가자들 행렬은 광화문에서 종로로 이어지면서 끝이 보이질 않았다.

▲ 11월 5일 광화문 교보 앞 행진 인파

11월 12일 3차 촛불집회는 주최 측 추산 100만 명, 11월 19일 4차는 150만 명이 모였다. 특히 수능을 끝낸 고3학생들을 비롯하여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대거 참여하기 시작했다.

▲ 11월 19일 집회에서, 중고등학생들도 대규모로 나오기 시작했다.

첫눈과 진눈깨비가 섞여 내리던 11월 26일 5차 집회도 150만 명이 모였다. 이날 처음으로 청운동에서 광화문, 삼청동에 이르는 ‘청와대 에워싸기’가 진행됐다.

▲ 11월 25일 집회에서

한겨울이 시작되었지만 계속되는 최순실과 박근혜의 국정농단 증거는 집회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궜다. 12월 3일 열린 6차 집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앞 100m 집회가 허용되었다. 이 날 주최 측 추산 170만이라는 최대 인파가 광화문에 집결했다. 광화문 주변 길이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했다. 6차 집회 전 박근혜의 제3차 국민담화는 국회에 안정적 퇴임을 요청한 것이었다. 이는 오히려 국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전국 포함 230만이 넘는 국민들이 ‘박근혜 하야’가 아닌 ‘박근혜 즉각퇴진, 탄핵’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 힘으로 6일 후, 12월 9일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12월 10일 치러진 7차 집회에서는 탄핵소추안 가결에 고무된 100만이 넘는 시민이 다시 광화문을 찾았고 '박근혜정권 끝장내자'고 외쳤다.

▲ 170만이 모였다는 바로 그 날

탄핵 가결 후 촛불집회의 인원은 조금 주춤했다. 12월 17일 30만이 모인 8차 집회는 ‘헌재의 조속한 박근혜 탄핵’과 ‘황교안 퇴진’을 요구했다. 12월 24일 성탄전야 9차 집회는 ‘하야 크리스마스’라는 축제 같이 진행되면서 역시 헌재에 조속한 탄핵을 촉구했다. 12월 31일 열린 10차 촛불집회는 송박영신(送朴迎新, 박근혜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 집회였다. 주최 측 추산 90만 명이 참가하면서 집회참가 누적인원이 1000만 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 12월 31일 마지막 밤을 박근혜 탄핵으로

2017년 1월 7일 열린 11차 촛불집회는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추모하는 집회였다. 시민들은 ‘진실을 인양하라’, ‘세월호 진상 규명’을 외쳤다. 1월 14일 10만명이 모인 12차 촛불집회는 겨울이 시작된 후 제일 추운 날이었다. 11차 촛불집회 후 분신한 정원 스님의 시민사회장이 진행된 후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박근혜 즉각퇴진’, ‘재벌총수 구속’을 외쳤다.

▲ 정원스님 영결식. 청와대 앞에서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열린 1월 21일, 13차 촛불집회에 나온 32만 명 시민들은 재벌 빌딩 앞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재벌구속’을 외쳤다. 또한 박근혜 퇴진이 아니라 ‘박근혜 구속’을 외쳤다. 이미 박근혜는 드러난 죄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기 때문에 파면 후 ‘즉각 구속’을 요구한 것이다.

설 연휴가 지난 2월 4일 14차 촛불집회가 열렸고, 2월 11일, 탄핵 보름달과 함께 15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후 열린 2월 18일 16차 촛불집회는 ‘특검연장’을 요구하는 횃불이 등장했고 촛불파도타기는 진화해서 멋진 레드카드 퍼포먼스가 선보였다. 2월 25일 17차 촛불집회는 다시 100만이 모였다. 박근혜의 탄핵지연 꼼수에 분노한 시민들은 ‘박근혜 조기탄핵’을 외쳤다.

▲ 레드카드 퍼포먼스
▲ 아이들도 특검연장, 탄핵

3.1절, 비 오는 날에 열린 18차 집회는 탄핵반대세력의 방해 공작에 무척 산만한 집회였지만 노란 리본을 당당히 태극기에 단 참가자들이 눈에 띈 집회였다. 3월 4일 19차 집회는 ‘헌재 탄핵 인용!’ ‘박근혜 구속!’ ‘황교안 퇴진!’을 요구하는 95만의 시민이 다시 모였다. 드디어 3월 10일 탄핵이 인용되었다. 3월 11일은 전국에서 70만이 모인 ‘촛불 승리 20차 범국민행동의 날’로 탄핵인용 자축 파티와 같았다.

2주 후인 3월 25일, 21차 촛불집회는 ‘세월호 진상규명’과 '박근혜 구속‘을 외쳤다. 박근혜 탄핵과 맞춰 3년 만에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6일 후 3월 31일 구속되었다. 세월호의 핏값이라고나 할까?

4월 15일 열린 22차 집회는 세월호 참사 3주기 하루 전 집회였다. 그동안 촛불집회를 주도한 [퇴진행동]은 ‘세월호 3주기 22차 범국민행동의날’을 열었다. 10만이 모여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미수습자 철저 수습, 선체 조사 등을 요구했다.

▲ 4.15 집회

그리고 지난 29일 마지막으로 열린 23차 집회는 5만이 조촐히 모여 촛불을 들었다. 이념논쟁과 색깔씌우기로 이전투구장이 되어 버린 대선정국에 1천7백만 촛불 민심을 다시 알리기 위한 집회였다. 촛불개혁과제를 수용하고,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과 진상규명, 사드철회, 언론개혁, 재벌개혁, 검찰개혁, 노동개악철폐 등을 외쳤다. 특히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이던 고 이한빛 피디의 어머니 김혜영님은  비정규직 차별과 대기업 횡포에 분노하여 세상을 버린 아들이 바랐던 ‘청년들이 행복하고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연대하자고 호소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처절한 절규는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 박근혜 잔당 정부는 뭐든지 도둑같이
▲ 미대사관 앞에서 사드철회를 외치는 시민들
▲ 4월 15일 세월호 3주기 집회에 다녀온 엄마는 집회에 또 참가하고 싶어 하셨다. 이번에는 엄마의 성당 언니 내외분도 함께 하셨다

세월호 참사와 백남기 농민 사망, 그리고 최순실 국정농단에서 시작된 촛불집회는 마지막까지 비폭력 평화시위로 마감했다. 6개월간 1천7백만명, 이렇게 많은 인원이 참석한 집회에서 폭력사태를 비롯하여 단 한 건의 불미스러운 사건가 없었다는 것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사례라고 한다. 우리 국민은 못난 지도자를 부끄러워했지만, 인내하며 슬기롭고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했다. 그 결과 박근혜 탄핵과 구속, 이재용 구속, 최순실 구속, 김기춘 구속, 블랙리스트 관련자 구속 등과 5월 9일 대통령 선거까지 이루어냈다. 어리석은 지도자가 팽개친 국격을 국민이 깨끗하게 닦아 바로 세워 놓은 것이다. 대한민국 시민은 민주시민이라는 것을, 대한민국은 민주국가라는 것을 온 세상에 다시 알린 것이다.

우리는 다음 주면 새 대통령을 갖게 될 것이다.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광장의 외침을 들어달라는 것이다. 해방 후 온갖 특권과 편법, 몰염치로 이룬 적폐를 청산해달라는 거다.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국가 자존심을 지키며 현명하게 대처해달라는 거다. 없는 이들도 함께 더불어 사는 나라로 만들어 달라는 거다. 그리고 선거법도 개혁하고 헌법도 개정하여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거다. 5년 단임 대통령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조금씩이라도 해결되는, 하나라도 나아지는 모습을 우리가 실감하게 해달라는 거다.

5월 9일이 지나면 내 한 장의 권리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이젠 언제든지 달려갈 광장이 있다. 올바른 것에 귀 기울여 달라고 외칠 수 있는 광장,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외칠 수 있는 광장, 같이 나누어 먹고 함께 살자고 외칠 수 있는 광장, 연대하여 외치면 해낼 수 있다는 경험을 얻은 광장이 있다. 부디 새 대통령은 광장의 힘으로 당선되었음을 잊지 말고 광장의 외침을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23회 집회 중 17회 참석했다. 나의 분노를 쏟아낼 수 있는 광장을 마련해주고, 평화롭고 안전하며 즐거운 집회를 이끌어준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에게 깊은 감사를 보낸다.

▲ 울 엄마는 다음에 조사받고 구속되어야 할 사람을 이명박이라고 지목했다.
▲ 이 젊은이는 우병우를 다음 구속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참고자료 사이트: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http://www.bisang2016.net/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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