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하면 등 푸른 생선으로, 안동 간고등어로 유명하다.이 고등어를 두고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생김새가 칼과 비슷하다고 고도어(古刀魚,古道魚), 고두막(高斗邈)이라고도 했으며, 자산어보에서는 벽문어(碧紋魚)로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의 생선이 등이 푸르거나 어두운색이고 배 부분은 하얀색이다. 이것은 바닷물의 색깔과 거의 같아 눈에 잘 띠지 않기 위함이고, 배가 하얀 것은 물속의 적들에게 쉽게 보이지 않게 함이라고 한다.고등어는 성질이 급해 물 위에 올라오면 바로 죽는다.동해안에서 잡힌 고등어가 안동까지 오려면 옛날에는 하루가 걸렸다
'후계자란 어떤 일이나 사람의 뒤를 잇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그렇다. 앞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서 그 기술을 배우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지금 7~80대 사람들은 기술을 배우기 위해 상당히 오랜 기간을 공부하고, 열심히 일해서 영광스럽게 기능전승자나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는다. 요즘 사람들은 조금만 뭐라고 해도 인권이 어쩌고 야단들이다.지금 기능을 인정받고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일을 배울 때는 입에 담기도 싫은 말을 들어도 참고 일을 했다. 어디 그뿐인가 당시엔 차량이 거의 없었다.일을 할 곳이 좀 먼 거리에 있으면 그
2021년 6월 19일 05시 05분 완도항에서 바라본 여명이다.한 쪽 편은 붉은 빛을 띠고 있지만또 다른 쪽의 하늘은 다른 빛깔, 다른 구름이다.정녕 이것이 하늘의 조화이런가.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밤나무의 꽃말은 진실, 호화로움, 정의, 공평, 포근한 사랑이다.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밤나무는 평창의 운교리에 있는 수령 370여 년 된 나무로 천연기념물 제 498호로 지정되어 있다.고려 예종 13년(1118)에 왕이 말하기를 농경지를 제외한 모든 땅에 밤나무를 심으라고 했던 때도 있었다고 하네요.밤나무는 씨앗을 심어 나무가 다 자라도 뿌리와 나무의 중간 지점에 씨앗이 그대로 붙어있어서 어머니의 모성애에 비유되기도 한다.그래서인지 위패를 만들 때는 꼭 밤나무를 쓴다고 합니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진상채복선이란 전복을 채취하여 임금에게 진상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배다.1875년의 기록을 보면 진상 채복선(進上採鰒船)이 47척이 되었고, 침복선(沈鰒船)이 1척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아마도 침복선은 각 군영마다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먼 곳까지 가지고 가야하는 폐단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러했을 것이다.침복선이란 잡아 올린 전복을 살리기 위해 배에 물이 차도록 하여 전복을 살리려고 만든 배를 말한다.당시에는 전복이 자연산 밖에 없었고 단가마저 높아서 서민들은 먹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임금에게 진상을 하려고 전복이
요즘 바다 쓰레기 문제가 심각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완도 문화예술협동조합에서는 바다 쓰레기를 수거하여폐플라스틱으로 가득찬 고래 조형물을 만들었다.그림에서 보듯이 고래의 입에도, 고래의 창자에도 폐플라스틱이 가득하다.우리 모두는 자그마한 쓰레기라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또한 모두가 이를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편집 :양성숙 편집위원
나는 아들이 하나 밖에 없는데 손자마저도 하나이다. 손녀도 하나 있는데...., 그래서 좀 아쉬움이 있었다.할아버지의 욕심인가?요즘 세상에 아들을 선호한 사람이 나 뿐일까?그래서 귀하게 키웠다.할머니가 둘이니 귀할 수밖에 없었다.어쩌다 제 어미(며느리)가 아들을 나무라면 증조할머니께서 야단을 치니, 자식에게 하는 말이라도 조심스럽게 하고 또 시할머니 눈치를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그래서 며느리는 아이들에게 말도 크게 못하면서 지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결코 잘한 일은 아니었다.하나밖에 없는 손자 녀석이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해태란 김을 말한다. 해태라고 하기 전에는 해의(海衣)라고 했다. 바위에 붙어 자라는 김이 바위를 덮고 있어서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바다 옷이라고 했을 것이다.이 글 제목의 해태왕국 완도는 1937년 12월 16일 자 동아일보의 기사 제목이다. 이런 해의(海衣)에 대한 최초기록은 1425년(세종 7) 경상도 지리지에 토산품에 해의(海衣)로 기록된 것이 최초이고, 1530년(중종 25)에 동국여지승람에 광양 특산품으로 기록되어 있다.해태란 이름은 일본인들이 지은 이름이다. 김이란 이름은 광양에 사는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제
꽃이 만개한 계절입니다.산과 들에도 온통 꽃이네요.5월 꽃들이 질 무렵이면 그래 나는 이제 핀다고 말하듯 6월 꽃이 핍니다.엉겅퀴의 꽃말은 '독립, 고독한 사람, 엄격, 건들지 마세요' 라네요.피를 잘 엉키게 한다고 엉겅퀴라는 이름이 붙었답니다.완도에서는 한갈쿠라고 하지요.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접시꽃은 그 이름도 참 여러 가지로 불린다.원산지는 중국이다.꽃은 점액이 많아 한방에서는 점활제(粘滑劑)로 사용한단다.이 꽃을 서울 지역에서는 어숭어평안도에서는 둑두화남부 지방에서는 접시꽃이라고 한다.꽃말은 단순, 편안, 다산, 풍요이다.도종환은 이란 시를 짓기도 하였다.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참으로 짧습니다. 이하 생략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사진에 보이는 산은 완도군 신지도 해발 352m인 상산(象山)이다.상산과 마주보이는 곳에 살기에 문만 열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오래 살며 수년을 지켜보았으나 이러한 사진은 처음 얻었다. 하늘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지난 겨울에 찍은 사진이다.이 한 장의 사진을 찍으려고 새벽부터 추위와 싸워야했다.추워 차량을 옆에 두고 나갔다 들어오기를 몇 번씩 하고 얻은 것이다.겨울이면 기회가 가끔 찾아오지만 얻기는 쉽지 않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완도~고흥 해안관광도로 국도(國道) 승격 국비 9천 억 투입, 약산~금일 등 5개소 연도교 건설 완도군민의 오랜 숙원사업인 완도~고흥간 해안관광도로의 국도 승격이 최종 확정됐다.지난 12일 국토교통부에서는 국도로 승격된 완도~고흥간 해안관광도로는 약산~금일~금당~고흥 거금도 42.4km 구간을 5개의 교량으로 잇는 사업으로 국비 9,008억 원이 투입된다.약산~금일간 연륙교 건설 사업을 최우선 하여 추진할 계획이란다. 군은 그동안 고흥 거금도에 있는 국도 27호선 기점을 완도 고금도로 변경하여 국도로 승격시키기 위한 전방위적인 노력
완도의 부속섬 소모도(小茅島)...이 섬은 완도군 청산면에 속한 섬이다.행정구역은 청산면 모도리에 속하고, 해안선의 길이는 3km 정도이다.동경 126° 33′, 북위 34° 14′에 있으며 청산도의 서쪽에 대모도와 나란히 있는 섬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도서(島嶼)'조에 따르면 영암의 부속도서로 되어있다.1620년 황씨가 처음으로 입도한 후 최씨, 서씨 등이 입도하여 마을을 이루었다.1971년에는 42가구에 275명이 살았고, 2007년에는 31가구에 44명(남 22, 여 22)이 살았으나, 2018년 현재의 가구 수는
10여 m 되는 높은 곳 바위 틈에 뿌리 내린 나무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법화경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물의 역사는 수억만 년이지만 물결의 역사는 불과 몇 초에 지나지 않는다.'그 물과 물결이 둘이 아니다. 물을 떠나서 물결이 있을 수 없고, 물결을 떠나서 물이 따로 있을 수가 없다. 즉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물은 보지 않고 물결만 보고 그 모양새가 어떻다고만 한다.그 사람이 살아오는 과정이나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도 한번 쯤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우리 속담에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말이 있다.'그 자리에 앉을 것만 생각 말고, 자신이 그 자리에 가서 일을
우리나라의 연호는 단기(檀紀)이다. 단기란 단군기원(檀君紀元)의 줄인 말로서 BC 2333년을 말한다.그러나 삼국유사에서는 기원전 2308년 설이 있고,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는 기원전 2357년 설이 있다. 그런데 백문보(白文寶)는 공민왕 10년에 올린상소에서 단군이 나라를 연지 3600년 되던 해라고 했다. 이렇게 계산하면 기원전 2239년이 된다. 한편 대동야승의 해동야인 태조 조에는(저자:허봉(許篈) 당요원년(唐堯元年) 갑진년으로부터 홍무(洪武:명나라 태조의 연호)원년 무진년까지는 모두 3천7백85년이 되며, 단군원년 무진년
청산 장도(長島)섬의 생김새가 길게 뻗어 있다고 '장도'라고 하였단다.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진섬(긴섬)이라고 한다. (이곳 방언으로는 '길다'를 '질다'라고 하는데서 '긴섬'을 '진섬'이라고 부름)동경 126° 58′, 북위 34° 12′에 위치한 이 섬은 완도군 청산도에 속하는 섬이다. 청산면과는 불과 200m 떨어져 있으며 해안선의 길이는 5km이며 면적은 0,109㎢, 최고봉이 48m다.이 섬에 사람이 처음으로 살기 시작한 것은 약 250년 전에 김해 김씨가 살았다고는 하나, 후손이 없어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1960년에는
대나무가 많은 섬 죽굴도(竹窟島)...섬 전체에 왕대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죽도(竹島)로 부르다가, 죽굴도(竹窟島)라고 개명하였다. 지금도 섬의 절반 이상이 대나무의 자생지다.섬의 면적이 0.12㎢이고 해안선의 길이는 3km, 산의 높이가 61.5m인 이 섬은 동경 126° 30′, 북위 34° 09′에 있으며 본섬인 노화도와 는 17km의 거리에 있어서 진도군과의 경계지점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행정구역으로는 노화읍 방서리(넙도)에 속한다. 이 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200여 년 전에 해남에서 이씨가 처음으로 들어
~ 당제 때 고기를 올리지 않는 섬, 후장구도(後長久島)이 섬은 동경 126° 36′, 북위 34° 9′에 있는 섬이다.면적은 0,2㎢, 해안선의 길이는 2,1km,최고봉은 45m이다.이 섬은 어미섬인 노화도에서 서쪽으로 14km 떨어져 있다. 2007년에 6가구 12명(남 5, 여 2)이 살았다.1971년에는 15가구 80명이 살던 때도 있었다.2018년에는 7가구 14명(남 7, 여 7)이 살고 있다.주소득원은 해조류와 전복 양식으로 비교적 여유롭게 살고 있다.섬의 생김새가 장구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고, '대'장구도의 뒤에
신작로(新作路)신작로의 사전적인 말은 새로 만든 길이라는 뜻으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게 새로 낸 길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그런 길들이 지방도, 국도, 고속도로 등의 이름으로 너비나 굴곡 등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 지고, 철도도 고속철이라 하여 더 빠르게 갈 수 있게 변해 왔다.신작로가 만들어지고 나서 참 좋아졌다고들 했다. 그러나 그때 완도에서 광주를 가려면 버스를 타고 7시간을 가야 도착할 수가 있었다. 그래도 빨리 왔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옛날 완행버스는 가다가 고장이 나면 손님들이 내려서 밀고 다시 목적지까지 갔
강항(姜沆)은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유봉마을에서 1567년 6월 23일(음력 5월 17일)에 태어났다. 1618년 6월 27일(음력 5월 6일)에 생을 마감한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의병장이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태초(太初), 호는 수은(睡隱)이다. 좌찬성 강희맹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강극검(姜克儉)이고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강항은 16살에 향시, 21살에 진사에 합격하고 27살에 과거에 합격해 벼슬길에 들었다.1597년 휴가로 고향에 머물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그때 강항은 남원에서 명의장군 양원(楊元)에게
시청료를 올려야 한다는 말이 나온 지는 상당이 오래되었다. 이유인즉 물가가 그동안 얼마나 올랐는데 라고 한다.그동안 물가가 많이 오른 것은 사실이다. 완도의 경우는 70년대 전기가 들어와서 호롱불을 면했다.내가 TV를 산 것이 71년이다. 설치가 끝나고 드디어 화면에 그림이 나오자 할머니께서 한참을 보시더니 나를 보고 하시는 말씀 저기에서 쌀도 나오느냐고 물으셨던 일이 생각난다.그 시절에는 무엇보다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최 우선이어서 아마도 그런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그땐 우리 집밖에 TV가 없었다. 그래서 밤이면 온 동네 사람들
거북선이란 이름은 언제부터였을까?거북선 말만 하면 우리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한다. 그러나 거북선에 대해서 묻는다면 그냥 막연하게 대단한 배였다고 자랑만 할 뿐이다. 자랑을 하면서도 우리는 거북선에 대해 너무도 모르고 있다. 세계의 해전사에서 23전 23승이란 전쟁은 없었다. 이순신이란 명장이 있었기에 거북선은 더 빛을 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북선이 없었다면 이순신도 명장이 되지 못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거북선이 언제부터 우리의 전선으로 사용하였을까? 우리는 일찍이 이렇게 훌륭한 군선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나라를 지켜냈다
고양이라는 이름을 묘(猫)라고도 하고 膏粱以라고도 쓴다. 수고양이를 낭묘(郎猫), 암고양이를 여묘(女猫), 바둑무늬의 얼룩 고양이를 화묘(花猫), 검은 고양이를 표화묘(豹花猫)라 부르기도 한다.고양이의 임신 기간은 약 65일 정도이며, 한배에 4∼6마리의 새끼를 낳는다고 하며 수명은 20년 정도로서 애완동물 가운데 수명이 가장 길다고 한다.이러한 고양이가 한때는 쥐를 잡는 동물로만 여겨왔다. 그러던 것이 이제 집안에서 가족처럼 키우고 있다.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 아프리카 리비아 야생고양이가 이집트인에 의해 길들여져 세계로 퍼
~ 마안도(馬鞍島)이 섬은 동경 126° 38′, 북위 34° 13′에 있다.해안선의 길이가 3,5km, 면적 0,134㎢이다.어미섬인 노화도에서는 0,5km 떨어져 있다.이 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250년 전에 김해 김씨가 입도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대한민국 3,601개 섬 중 ‘용’이나 ‘소’ 또는 ‘말’을 닮았다는 섬은 많아도 말의 안장을 닮았다는 섬은 유일하게 이 섬뿐이다.사람이 말을 탈 때 편리하게 하는 보조기구인 말의 안장을 닮았다하여 처음에는 ‘말안장섬’이라 하였다가 한자 표기를 빌어 ‘馬鞍島’라 하
개를 기르지 않는 대장구도(大長久島) 동경 126°30′, 북위 34°09′에 있는 전라남도 완도군 노화읍(蘆花邑) 내리(內里)에 속하는 섬인이 섬의 해안선 길이는 2,9km, 최고봉이 73m이다.이 섬은 생김새가 개가 산을 물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대장구도'(大長久島)’라 부른다고 한다. 이 섬에서는 개를 기르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지명과 연관하여 개가 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개가 없는 섬 대장구도는 임진왜란을 피하여 해남에서 신씨(申氏)성을 가진 사람이 처음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그 이후에 1971년에는 13가구
거북선의 크기는 얼마나 되었을까?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이름 거북선, 말만 들어도 이순신을 떠 올리는 이름이다. 이러한 거북선을 두고 아직도 이렇다 할 배를 못 만들고 있다.다행스럽게도 해군사관학교에서 3번째 거북선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 거의 끝나는 단계로 알고 있다. 이번만은 '아 그래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거북선에 관한 기록은 1795년에 쓰여 진 이충무공전서의 기록이 표준이 되고 있다. 이 기록에는 배의 밑판 길이가 64,8척이고, 배의 전체 길이는 113자라고 기록 되어 있다.그런데 신경준(1
이충무공전서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이충무공전서에는 이순신에 대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거북선에 관한 대표적인 기록으로는 이충무공전서 뿐이라고 한다.그럼 이충무공전서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이순신에 관한 선양사업은 정조 때에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정조는 경전에서 국조보감(國朝寶鑑)을 살펴보면서 임진왜란 때의 사적과 이순신의 활약에 관심을 가졌다. 정조께서는 임자년(1792,정조16)에 대보단(大報壇)을 참배하면서 충무공과 같이 공과 명성이 있는데도,
~ 양도(羊島)이 섬은 완도군 군외면 당인리에 속한 섬으로 완도군에 속한 섬인데, 해남군 땅끝과 아주 가깝다.지명 유래를 보면 염소를 방목하여 키우던 섬이라 양도라고 했다고 전한다.해안선의 길이가 0,4km, 면적 0,016㎢, 해발 40m인 아주 작은 섬이다.이 섬의 지적(地籍)은 완도군에 있으나 실제 소유자는 해남사람이다.25년 전까지는 현 소유자의 부친이 양식과 가축을 키우면서 사셨는데, 이 분이 돌아가시면서 사실상 무인도가 되었다. 본래 무인도였던 섬에 1996년 11월에 본래 소유자의 아들이 섬에 들어와 전복양식 등을 하면
배목수이야기 50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서투른 글 끝까지 싫다하지 않고 편집해주신 김미경 위원님 감사합니다. 컴을 다루는게 서투러 때론 짜증도 나셨을 터인데 모든 걸 잘 마무리 하도록 애써 주심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 글을 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옛날에 만들었던 배들은 당시에 사진촬영 사정이 좋지 않아 찍을 수 없었던 것이 못네 아쉽다. 편집 : 김태평 편집위원
3. 바람의 이름바람이 우리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우리 어선들은 거의 돛을 달고 다니는 풍선이었다. 바람 때문에 뱃사람들은 울기도하고 웃기도 했덩 것이다. 모두 동력선으로 바뀌었어도 단 하나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배 자체가 전 재산인 뱃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큰바람이 불어온다고 하면 피항할 곳이 마땅치 않다.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곳을 일컬어 팔풍석(八風席)이라고 한다. 팔풍이란 동에서 시작하여 다시 동까지 돌아오는 모든 바람을 말한 것이다. 이러 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