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일기장 33수동이가 86년도 새 일기장을 사 줬다. 규격이 좀 크고 내용도 다양하다. 그래서 값도 3,500원이나 줬다고 한다. 내년에 기록될 새 일기장을 보면서 또 한 해를 투병 기록으로 적어 나가야 하는 내 신세가 한심하기도 하다. 투병 기록이 아닌 일기가 담긴다면 얼마나 좋으랴. 어쨌든 운명의 갈림길에 섰던 1985년을 무사히 넘긴 데 대해 감사하다. 나로서는 행운이요, 가족들에게는 크나큰 곤욕을 끼친 것이다. 아무튼 지난 바람은 후하다는 속담과 같이 이 해를 무난히 보내도록 나를 아껴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 오
아버지의 일기장 32호떡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됐다. 한 개 50원이라는 점도 유리하지만 우리는 올해로 장사를 3년째 하는 셈이다. 우리의 경험과 기존 손님 확보 등으로 유리한 고지에 서 있어서 신설한 건넛집을 서서히 누르고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노력이 큰 밑바탕이 되었으니 즉, 아내의 꾸준한 끈기로 항상 타 업소를 제압해 왔다. 또한 우리의 유일한 신조는 손님의 권위를 절대 존중하는 것. 코흘리개 꼬마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차별없이 대접하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우리 업소는 항상 성황을 이룬다. 그로 인해 일개 떡볶이 장사 노부
아버지의 일기장 31아침부터 불길한 뉴스가 전해져서 우울했는데 결국 KAL기의 격추 가능성을 발표해서 나라 전체가 침울한 하루가 되었다. 오후에는 며칠 전부터 시화전을 열고 있는 수동이를 아내와 함께 방문해서, 행사를 축하하고 격려해 주었다. 저녁 식사 값을 주고 돌아왔다. 좀처럼 동부인하지 못하는 형편인데 명이가 점포를 봐 주기로 하고 오후 5시에 집을 나섰다. 아내는 몹시 즐거운 표정이다. 수동이가 쓰고 내가 그린 시화. (1970년대 말)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8월 19일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실시간 행진 중 스케치 행진 끝나고 집에 가면서 1호선에서...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아버지의 일기장 30울산여중 2학년 학생들은 내일 수학여행을 가느라고 오전 수업을 끝내고 삼삼오오 떼를 지어 희희낙락하며 귀가한다. 꿈 많은 소녀 시절이라 얼마나 부푼 가슴들일까? 그런데 우리 일 거드는 인경은 가정 형편이 안 돼서 수학여행을 못 간다고 하니 안타깝다. 돌이켜 보면 우리 집 아이들도 형편이 안 돼 수학여행을 포기한 일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부모로서 몹쓸 짓을 한 것 같아 마음이 항시 아프다. 큰 아이와 둘째 수동이는 고등학교 여행을 포기하고 명이는 초등학교 때 못 보내서 수학 여행 시즌만 되면 죄스럽다. 이 아비
아버지의 일기장 29평소 대화가 없는 우리 부부가 요즘은 흘러간 얘기로 시간을 보낸다. 주로 우리가 살던 부산의 전포동 이야기다. 자식 키울 때의 갖가지 고초, 영업상의 애로, 대인 관계의 수난 등등으로 20년 세월을 보낸 전포동을 지금도 못 잊어 그 때를 되풀이 얘기한다. 어떻든 우리 청춘을 다 보낸 곳이다. 어려운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 끈덕지게 살아온 그 곳의 기억은 우리 머릿속에서, 아니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생활의 기록이 되리라. 풍전등화 같았던 우리 가족이 무사히 살았고 교육도 남들 정도는 시켰으니 별로 후회할 것도 없다
1박2일 대전 촛불 수련회를 마치고 상경(수련회는 대성공이었다!). 시청역에서 민웅.백초롱선생과 헤어지고 1호선을 타고 노량진역으로 가는 중, 어쨌거나 그림을 쉬지 말자, 하고 앞에 선 아가씨를 그렸다. 이제부터 상습적인 그림은 그리지 않기로 해서 배경을 다르게 처리했더니 신선하다. 모델이 된 아가씨가 이 그림을 보고 매우 좋아해서 사진을 찍어 갔다. 내가 그리고 있을 때 모델이 되고 있다고 승객들이 웃으며 신호를 주더라~~ 한다. 무더위 속 상쾌한 숏 스토리이다. 내 맘에도 드는 그림이다.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아버지의 일기장 28오늘은 빗속에 소포가 우송됐다. 서울의 재동이가 내가 즐겨 먹고 있는 영지버섯을 부쳐 왔다. 그간 거르는 날이 있어 아직 전번 것이 남아 있는데 날짜를 따져 다 먹은 줄로 알고 보내온 것이다. 나이가 들어 가고 더욱이 교육계에 몸담고 있으니 가정과 부모에 대한 이해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재동이는 본성이 착해서 진심으로 정성을 다하는 성격이지만 말수가 적어서 처음 사귀는 사람은 정 붙이기 힘들 것이다. 아무튼 정성에 감사한다. 아버님은 영지버섯을 드시고 많이 좋아졌으나 의사가 못 먹게 해서 악화하셨다. (1980
국토학교 입학신청 마감 이후 8월21일부터 일반인 참가자 모집오는 9월15일 국토학교프로그램을 일반인에게 개방합니다. 원래 지난 5월19일자 한겨레:온에 다음과 같이 국토학교를 개설하고 입학생을 모집하는 공지를 낸 바가 있습니다.'국토학교'를 개설합니다오는 8월20일에 정규입학신청을 마감하고, 21일 이후에는 매월 일반참가자를 위한 신청을 받기로 했습니다. 다만 자리가 넉넉치 않기에 선착순으로 접수를 받고자 합니다.원래 국토학교는, 기후위기를 위시하여 4대강, 원전위험과 에너지문제에 해법과 비전을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당대의
아버지의 일기장 27막내 명이 결혼 날이다. 계획한 대로 수동이가 8시 넘어서 병원으로 차를 몰고 왔다. 새삼 용기를 내어 차에 올랐다. 마음가짐때문인지 예상 외로 큰 지장은 없었다. 영하 6도의 강추위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10시 정도가 되었다. 벌써 집안 사람들이 음식물을 정리하고 있다. 온 집안 사람들이 걱정해 주는 가운데 따뜻한 방에서 몸을 쉬었다. 2시가 다 돼서 식장에 도착하니 이미 하객들이 장내를 메우고 있었다.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딸 아이를 인도했다. 몸은 말을 듣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사히 신랑에게 명이
아버지의 일기장 26오전 중에 처형이 다녀갔다. 바쁘게 사느라고 외출복(한복) 하나 제대로 없는 아내는 자존심을 죽여가며 언니의 나들이 한복을 빌렸다. 모레 윤동이 결혼식에 참례할 예정이었던 것. 형제간에 의복을 빌려 입는 거라 조금도 꺼리낌이 없다고는 하지만, 나로서는 정말 낯뜨거운 일이다. 남들은 우리 나이에 다소나마 안일한 생활을 하고 사람다운 짓(예절)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러나 우리 부부는 이러한 것들을 크게 신경쓰고 살아 가지는 않을 것이다. (1988년 어머니 사진)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아버지의 일기장 25수동이가 소설 부문 문학상 당선 (최우수작)을 알리는 학교 신문을 갖고 와서 온 가족이 한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작품명은 '에덴의 동산'이다. 심사한 교수의 호평을 받았다. 명이는 오늘 어버이날 선물로 카네이션 두 송이와 우리 내외의 속옷 몇 가지 씩을 사왔다. 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집안 일을 거들고 집안 청소도 훤하게 해 놓아서 대견하다. 재동이도 귀가했다.자그마한 화단에 무엇을 심어야할 지 망설여진다. 이것저것을 생각하다가 마침내 호박과 상추를 심기로 하고 아내와 함께 씨를 뿌렸다. 오랜만에 호미를 쥔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아버지의 일기장 24심한 열과 기침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 해 부석부석 부은 얼굴로 병원에 갔더니 종합 진찰 결과는 절망적이다. 의사의 설명대로라면 시한부 인생이다. 지금껏 간호해온 결과가 허무해 나도 모르게 낙루하고 아내도 울었다. 다시 부산의 최하진 박사에게 진찰을 받으니 그렇게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병실에 아내가 왔다. 재동이 수동이가 오고 명이도 친구 집에 왔다가 합류해서 우리 가족이 다 모인 셈이다. 얼마 뒤 재동이 친구 상석군이 방문했다. 반찬까지 만들어 왔다. 정성이 대단하다. 일가친지 몰래 입원했는데도 가까운 친지는
아버지의 일기장 23전하동에서 반구동 울산여중 앞으로 이사 와서 장사를 시직하여 토요일을 처음 겪는 지라, 하교 시간을 몰라 미처 준비를 못하였는데 학생들이 들이닥쳤다. 우리 부부는 두 시간 동안 쩔쩔 맺다.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 와 여기저기서 주문을 독촉하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오늘은 좀 여유있게 물품을 넣었으나 모두 동이 나고 오뎅 몇 개가 남았을 따름이다.그저께 울산여중 여교사의 부탁인, 자기반 학생 (불우 학생)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여, 여학생이 오늘부터 점포에 와서 일을 시작했다. 매우 부지런한 학생이다. 건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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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석정현, 혜연, 그 아들 태랑이(뿌리 그림 엄청나게 잘 그림), 반쯤 한국 사람인 일본 만화가 세이지와 그 아들 아끼, 기획자 나가사와씨와 저녁을 먹었다.옥천서 올라오다 브레이크 고장으로 죽다 산 만화가 탁영호가 주빈. 탁영호는 돈이 궁할 때 나에게 다리 한 짝을 팔아 영호의 다리 하나는 내 거다. 나는 사용료를 내라 하고 영호는 유지 관리비를 내라 한다.일본 만화가 이와미의 아들 아끼가 이와미씨를 소개하면서 "나의...." 하니까 이와미가 "아들입니다." 라고 말한다. 일본 만화가 이와미씨의 아들 아끼를 그려 주었다. "(쇠
일본 만화가 손님들과 안동국시에서 식사를 마치고 인사동을 내려오는 길 마지막에 있는 내 화장실 갤러리에 들렀다. 전시된 내 그림들을 보고 매우 좋아했다. 나는 화장실 화가가 되고 싶어 하여 꽤 옛날에 성사되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아버지의 일기장 22전하초등학교 체육대회 날이다. 아침 일찍부터 학교 정문 근처는 노점들이 즐비하게 늘어 서 있다. 우리 점포 앞에는 좀 넓은 공터가 있어 장사꾼의 자리로는 안성맞춤이다. 8시가 넘자 학생, 학부형 등 수천 명의 인파가 밀어 닥쳐 마치 큰 경기장에 가는 것 같다. 마침 본교 교장과 친면이 있어 잠깐 들러 찬조금(1만 원)을 내고 돌아 왔다. 마침 공휴일이라 서사에서 현조, 규태가 와서 종일토록 돕고 갔다. 오늘은 하루 종일 분주했고 특히 하교 때는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매상도 예상대로 제법 올랐다. 온 가족이 피로
가 새 앱으로 기사를 내보내고 있어 자꾸 이것저것 들여다보게 된다. 얼마나 더 좋아졌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말이다. 그런데 자꾸 부족한 점이 눈에 띈다.이번에 발견한 것은 카테고리를 클릭해도 기사가 뜨지 않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보면 클릭이 되지만 모바일로 보면 클릭 되지 않는다.먼저 PC로 보면 기사가 아래와 같이 보인다. 빨간 동그라미 '사회'를 클릭하면 '사회'에 속한 기사가 , '환경'을 클릭하면 '환경'에 속한 기사가 나온다. 모바일로 보면 이렇다. '사회'나 '환경'이 클릭 자체가 되지 않는다. 다른 카테고리인 '
아버지의 일기장 21명이는 윤서방이 추천한 울산공대 면접은 통과 되었다고 한다. 정오경 수동이가 휴가를 얻어 귀가했다. 오는 길에 재동이에게 들러 첫 봉급으로 내 시계, 아내 지갑, 명이 공책 등을 사 보낸 것을 가져왔다. 자식에게 무엇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흐뭇하다.봄날 집에만 있으려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아내와 함께 백양사에 다녀 왔다. 신혼 때 갔던 곳이니 오랜 만에 걸어 보는 길이다. 맑은 물과 공기를 마음껏 마셨다. 세 시간 이상 걸었는데 다리에 경련이 없어 천만다행한 일이다. 요즘은 뒷산에 가서 나물과 냉이를 뜯어 오기
아버지의 일기장 20명이는 윤서방의 노력 덕분에 세왕약품 공업사 (약 도매상)의 경리 사무직에 취직되어 출근하고 있다. 아내와 쇼핑 갔다오면서 내가 소원하던 먹을 하나 사왔는데 뜻밖에 숯먹이어서 실망했다. 명이가 부산 가는 길에 좋은 것을 구해 주겠다고 위로한다. 저녁에는 난생 처음으로 매난국죽을 쳐 본다. 정말 마음대로 안 된다. 학문(예능)이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벌써 한 달 정도 글을 써왔지만 발전을 했는지도 모르겠고 부족한 것이 많아 갈수록 어려운 것 같다. 마음 가짐이 안정되고 정성을 다 해야 올바른 글씨
아버지의 일기장 19부산생활 20여 년의 장사가 오늘로 끝을 고했다. 그동안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고향 울산 삼풍 아파트로 이사 간다. 아침부터 계속 비가 내린다. 시간을 기다릴 수 없어 비를 맞으면서 짐을 실었다. 동네 분들도 나와 비를 맞으면서 도와주고, 석별의 정을 나눴다. 특히 필교 처남 내외, 박평선 씨 내외, 김 씨 부인 등은 눈물로 전송해 줬다. 눈물을 보이지 않기로 했지만 나도 모르게 이별의 눈물이 앞을 가리며 쏟아 졌다. 아파트에 도착한 뒤에도 종일 비가 내려 이서방과 동생들이 큰 수고를 했다. 처형과 처제는 떡과
아버지의 일기장 18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왔다. 점심을 막 끝낸 뒤 김일용 씨가 왔다. 머뭇거리는 태도가 이상했으며 무언가 심각한 낌새로 보아 중대 사안인 듯했다. 혹시 어머님 소식일까? 직감적으로 느꼈다. 지난 밤 꿈자리가 좋지 않더니 적중했다. 어머님이 운명하셨다는 소식이다. 아내는 식사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떠났다. 명이만 남겨 두고 앞 뒤 볼 것 없이 울산행 직행버스에 몸을 실었다. 몇 시간 흐른 뒤의 어머니 모습은 평온해 보인다. 아직 온기가 있는 어머니를 잡고 한없이 울었다. 졸도한 뒤 한 마디 말씀도 없이 가신 어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