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처럼 우직하고 한결같은 사람이 있다. 지난 8월, 31년 6개월의 교직생활을 서울 신길초등학교에서 마치고 명예퇴직한 정영훈(57) 한겨레 창간주주다. 그의 성정은 어려서부터 이미 나타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급식으로 받은 빵을 빼앗은 덩치 큰 아이와 싸워 약자에게 빵을 되돌려주었다. 이런 게 알려져 반 아이들의 적극 추천으로 이후 반장으로 연속 선출되었다. 중학교 때까지 1등, 고교 3년 장학생이었지만 이건 습관화 한 ‘독서’ 덕이었다. 한겨레 주주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어린시절부터 남들이 많이, 쉽게 가는 길이 아닌
[편집자 주] 지난해 여름 "민중은 개·돼지"라는 한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발언은 평범한 시민들의 머리와 몸을 깨우는 죽비가 되어 돌아왔다. 이만하면 세상은 많이 좋아졌다고 여기며 하루하루 버거운 삶을 살던 평범한 사람들이 “이게 나라냐”고 자각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다. 백만 개, 천만 개의 촛불이 모이자 시민이 주인인 세상이 열렸다. 지난 3월말 취임한 이상직 ‘문화공간 온 협동조합’ 이사장도 광화문 촛불 하나를 보탠 평범한 시민이다. 대학 나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기업에서 샐러리맨으로 평
2017년 활동을 결산하는 두 개의 한겨레 주주독자 사랑 모임이 11일 잇따라 열렸다. 먼저 한겨레 주주 인터넷 뉴스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주주통신원 회의인 한겨레주주통신원회(이하 한주회) 제3차 정기 총회가 11일(토)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 ‘문화공간 온’에서 열렸다. 이 날 행사에서 2018년 활동을 이끌 새 임원진 선출이 있었다. 김진표 위원장이 연임했고, 이요상 ‘문화공간 온’ 상임이사가 수도권위원장을, 심창식 '문화공간 온' 이사와 허익배 주주통신원이 감사를 맡았다. 이날 총회에서는 주
한겨레주주통신원회(이하 한주회) 제3차 정기 총회가 11일(토) 오전 10시부터 서울 종로구 인사동 ‘문화공간 온’에서 열린다. 한주회(위원장 김진표)는 한겨레주주 인터넷 뉴스커뮤니티 을 꾸려가는 주주 기자들의 모임이다. 의 주주 기자들은 2015년 1월 창간 후 지금까지 약 5000건의 기사를 쏟아내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한주회는 이들이 주도하여 그해 11월 자율적인 상호협력 단체인 한주회를 결성했다. 한주회는 그동안 자발적인 커뮤니티 모임을 활성화 해왔고 특히 2016년에는 한겨레 주주와 시민들의
[편집자 주] 약 1년 전인 2016년 9월20일, 한겨레 특별취재팀은 K스포츠재단의 이사장을 실제로 임명한 사람이 박 대통령의 측근인 최순실씨라는 '단독'기사를 냈다. 이후에도 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체를 파헤치는 수많은 단독 기사를 1면에 배치하는 등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관련기사 보기]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34결국 세간의 이목이 절대권력의 '비선실세'와 그 '몸통'에 모아졌다. 약 한 달 뒤
한국에서 산지 어언 28년, 한국의 4계절 외에도 정말 좋아하는 것이 바로 때밀기입니다. 결혼 첫해, 저는 여전히 대만 생활 습성이 몸에 배어 날이 어두워지면 샤워를 했습니다. 그해 겨울날 아침 시어머니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는 일기예보를 보시더니, 저에게 '오늘 밤은 몹시 추워진다며 씻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지자 전 평소와 다름없이 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습니다. 시어머니는 제가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날씨가 추워지면 감기에 걸릴까 봐 씻지 말라고 했는데 또 씻었냐?
◆ 인간에게 소리란 무엇일까? 음악의 사전적 풀이는 박자, 가락, 음성, 화성 따위를 갖가지 형식으로 조화시키고, 결합하여 목소리나 악기를 통해 사상 또는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이다.글보다 앞서는 것이 소리다. 현생인간과 가장 유사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태초 지구에 출현했을 때 글도 그림도 무용도 아닌, 소리가 가장 먼저 소통으로 쓰였을 것이다. 소리는 말 이전의 단계다. 소리에는 높낮이가 있고, 소리의 크고 작음이 있다. 소리가 음악적 요소를 지닐 때 말이 발전하였을 것이다. 동서양의 음계가 두루
지금 아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한마디로 잘~~ 지내고 있다. 평일에는 학교에서 공부만 하고 주말 저녁에는 알바하면서 생활비와 용돈을 벌며 제 표현대로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아들은 초등학교, 중학교는 2번씩 옮겨 다녔고 고등학교와 대학은 3번 옮겼다. 사실 아들 탓이 아니고 상황 탓이지만, 피해를 본 건 아들이다. 적응할 만하면 옮기고 친구 사귈 만하면 옮겼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하지만 아들의 적응력은 좀 발전하지 않았나 싶다.처음 대학은 아들 맘에 드는 학교는 아니었다. 하지만 거기서 큰 성과를 얻었다. 최고
양상우 한겨레 대표이사가 지난 20일 전 직원에게 메일을 보내고 최근 악의적인 ‘삼성’의 광고 축소에도 한겨레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메일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법처리와 함께 시작된 한겨레에 대한 삼성의 보복적 광고 축소는, 이 부회장의 1심 판결을 앞둔 지난 6월부터 더욱 극단적이고도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삼성이 에 실은 광고는 다른 언론사에 비해 현저하게 적다. 이런 사정은 작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국면부터 본격화 했다. 이에 대해 양 대표이사는
광주의 진실을 알린 독일의 한 기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가 지난 20일 개봉한 후 1000만 관객을 넘자 당시 광주의 참혹한 현장을 담으려 목숨을 걸었던 박화강 전 기자가 새삼 주목 받고 있다. 박 기자는 당시 (지금의 광주일보) 기자였다. 는 22일 인터뷰 기사(아래 링크)에서 박 기자가 광주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신군부의 검열을 거부하고 편집국 회의에서 주도적으로 20일치(1980년5월) 신문의 검열 거부를 결의하고 1면 머리기사를 썼다고 소개했다. 회사 임원들의 방해로 그날
무도회에서 왕자님과 춤추고 급히 도망쳐 나와 사라진 신데렐라. 왕자가 그녀를 찾을 수 있었던 건 무도회장 정원에 벗어놓고 간 유리구두 한 쪽 덕이었다. 수많은 여인들 중 그 구두가 발에 맞는 사람은 신데렐라뿐이었으니까.서울역 근처 염천교에 구두거리가 생긴 건 1925년 경성역(지금의 서울역)이 생긴 이후다. 역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니 이곳이 번화가가 되었고 가죽 노점상들도 많아졌다. 양복과 중절모 쓴 모던보이와 신여성들이 구두 노점상을 찾았다. 6.25 전쟁 전후에는 미군의 중고 군화로 구두를 만드는 집도 생겨났다. 1970년대는
47년 동안 구두 만들던 손으로 피켓을 들었다. 좀 어색하지만, 다른 시도를 해봄으로써 나와 주변에 새로운 파장을 만들고자 용기를 냈다. 시위가 끝나면 성수동에서 구두공방으로 출근하기 바쁘지만 말이다.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시위를 하는 것은 한 가지, 뿌리깊은 불공정 갑질 경제 체제로는 수제화 장인도 그 누구도 점점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제화 산업의 존폐 위기에 앞서 구두장이가 외치고 싶은 것을 정리해본다. 구조적인 상황을 알리기 위해 수제화 유통 구조를 아래의 표로 단순화했다. [갑, 중의 갑 &n
얼마 전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선수의 지원을 위한 첫 상면식에서 누군가 나에게 “시민운동을 이렇게 열심히 하는 어떤 계기가 있느냐?”고 물어온 적이 있었다.그런데 왜 그렇게 물었을까? 칭찬의 의미(그런 듯 보였다)라면 그냥 "시민운동을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라고 묻는 게 상식일 것 같은데, 마치 내게 그런 '계기'가 있었다는 걸 알고 물어보는 듯하다. 사실 내가 시민운동에 오랜 세월 투신하고 있는 데는 계기가 있다.그것은 아직도 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우리 국군의 군사작전
[편집자주] 박봉우 창간 주주(숲과문화연구회 회장, 강원대 명예교수)는 임학과 조경학을 전공하고 강원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정년퇴직했다. ‘산이 공동체의 중요자산이라 인식하고, 잘 활용하여 미래세대에 물려줘야겠다’는 생각으로, 1992년 동료들과 숲과문화연구회를 발족하여, 25년 동안 변함없이 활동하고 있다. 또한 1992년부터 시작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숲 찾아가기’는 137차 진행하였다. 2003년부터 시작한 ‘해외의 아름다운 숲 탐방’은 10차 진행하였다. 이 글은 10차 해외 숲 탐방 후기이며 앞으로 ‘숲 탐방’에 관한 기
'사드반대! 대화하고 평화협정 체결하라!', '우리는 더 이상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은 한국에서 어떠한 군사행동도 조장하지 말라.' 이요상 한겨레 주주통신원(전 전국운영위원장)이 미국 백악관 앞에서 사드반대 피켓을 들었다. 그는 11일 아침 SNS를 통해 이 소식을 알렸다. "오늘 백악관 앞에서 1인 시위 시작했습니다. 현지 시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준비했던 구호 다 내걸고 현지 시간 10일 오전 11시부터 지금까지 7시간째 씩씩하게 진행중입니다." 워싱턴에 아는 사람 한 명
출처 : pixabay.com영화 '트루먼쇼'에서 주인공 트루먼은 30년이 지난 어느 날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잘 짜여진 각본의 가상 세계'였음을 자각하게 된다. 한편 영화 '매트릭스'에서의 주인공 네오 역시 어느 날 자신이 AI(인공지능)들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완전한 가상의 세계'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두 영화는 모두 진짜가 아닌 가짜의 세상을 전제로 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트루먼쇼에서의 가상현실은 물리적인 가상현실이라는 것, 즉 트루먼의 삶의 기반은 완
"당신은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하노이, 내게는 그저 일하기 힘든 도시-40년 만의 더위가 하노이를 공습하여, 대낮에는 그 복잡한 거리가 텅 빌 정도의 찜통에도 하얀 긴 팔 남방에 양복바지를 입고 며칠을 바쁘게 드나들다가, 체크인 후 처음으로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나가는 나를 벨 보이가 웃으며 쳐다본다. 나도 웃어주면서 베트남 말로 몇 마디 아는 체를 해 주었다. 문을 열어 주는데 한낮의 열기가 덜 식어서 후끈한 바람이 온몸을 덮친다. 5시간의 치열한(?) 미팅을 끝내고 돌아와 슬리퍼를 끌고
'노빠'나 '문빠'라는 표현은 보수성향의 사람들이 진보 측 인사들을 폄하할 때 쓰는 말이다. 이제 진보정부가 들어서면서 "나는 노빠다" 혹은 "내가 문빠다"라고 자랑스럽게 외치는 시대가 되었다.그렇다면 '한빠'는 무엇인가? 여기서 '한빠'의 '한'은 '한겨레'이다. 한겨레 창간주주로서 요즘 한겨레에 대해 느끼는 정서를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러다가 생각해낸 말이 '한빠'다."나는 한빠다"를 외치는 사람이 "나는
1988년 ‘한겨레’ 창간 때부터 애독, 양평동 사옥 인근 관악고 교련교사, “독재유산 군사훈련 폐지 주장” 사표 표명렬 장군 ‘한겨레’ 기고 보고 동참, 조부 최구현 의병활동 뒤늦게 ‘발굴’ “촛불정신 이어갈 젊은 민주군인 기대” “1988년 5월15일 창간호를 몰래 숨어서 읽은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때 마침 서울 양평동 관악고에서 교련 교사로 재직중이었는데 바로 인근에 한겨레신문사가 들어섰잖아요? 너무나 바르고 옳은 기사들이 한가득 실려서, 어찌 이런 신문이 나왔을까, 한편으로 주위 시선이
5월 첫날 오후 4시 '문화공간 온'에서 영화 (2006)를 상영합니다.'통일'이라는 당위성에 공감하는 대다수의 사람들도 막상 '민족'을 이야기하면 말문이 막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쉽지 않은 이야기이자 무거운 주제이며 생각과 달리 정서적 차이를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다큐멘터리 영화 는 이러한 난제를 한 번에 해결 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영화는 재일 조선인 1세들이 세운 민족학교인 '조선학교'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김명준 감독이 3년5개월이라는 긴 시
조계종 종단으로부터 승적을 박탈 당한 명진 스님이 22일 오전 10시 수원 화성행궁 여민각 앞 길에서 '석가탄신일 맞이 법회'를 열었다. 이날 법회는 경기불교문화원에서 열기로 되어 있었으나 문화원이 갑자기 '법회 공간 대여 불가'를 통보해 장소를 바꿔 거리에서 진행됐다.경기불교문화원의 법회 공간 대여불가 통보는 19일 명진 스님이 ‘김용민 브리핑-강력한 인터뷰’에 출연해 자승 총무원장과 종단을 비판한 것이 에 보도 된 이후에 이뤄져서 외압 의혹을 받고 있다.
이번 대선 국면의 화두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행복한 고민을 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었다. 물불 가리지 않는 네 편 내 편의 문제가 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라는 결론도 내렸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와 경쟁 후보에 대한 자질을 가지고 대립해야 하는 부담에서 이제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어느 평론가도 지적했듯이 어떤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지난 정권처럼 끔찍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 물론 후보 각자에게는 지금의 국면이 절실한 상황일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투표권을 쥔 국민들은 이제 그 문제에 있어서 어
[편집자 주] 그랬다. 하지만 이게 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김대중 정부 때는 "전라도 신문"이라고, 노무현 정부때는 "노빠 신문"이라며 신문을 끊는 이가 많았다. "한겨레가 변했다."거나 "이제 한겨레를 떠날 때가 되었다."는 말을 듣는 것에 한겨레에서 일하는 이들은 익숙하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29일 임인택 수도권팀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속내를 밝혔다. ----------------------------------------------------------------------
관악구에 사는 박오수(50세)씨는 대학교 1학년 때 20만원을 내서 창간주주가 되었다. 학교 선생님인 형님(56세)도 창간주주다. 87년 6.10 항쟁 후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크게 좌절했다. 그 당시 믿을만한 언론이 없었다. 한겨레가 창간된다고 해서 한겨레에 희망을 갖고 주식을 샀다.주주총회는 처음 왔다. 주주총회 '평화의 나무' 합창단원의 노래가 좋았다. 주총에 오면서 배당 같은 거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돈이라는 모양을 빌린 마음으로 주식을 샀기 때문이다. 주식
한겨레신문사 제29기 정기 주주총회가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900여 명의 주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한겨레는 1987년 ‘6월항쟁’ 이후 바른 언론을 만들고자 하는 6만7천여 주주들의 염원을 담아 세계 유일 국민주 방식으로 창간된 신문사이다. 특히 올해 주주총회는 지난달 말부터 신문광고를 통해 2000여 명의 촛불 시민들을 새주주로 모셔서 그 의미를 더했다. 이로서 한겨레 주주는 약 6만9천여 명이 되었다. 사전 문화행사는 지난 촛불시위 광화문 무대에서도 공연하며 많은 이들의 눈시울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 판결이 난 다음날인 11일 제20차 마지막 촛불집회에는 70여만 명이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누적 참가인원 1600만 명을 기록한 3.10촛불시민혁명이었다. 스무 번이나 열린 대규모 집회는 단 한건 폭력도 없이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광장의 시민들은 마치 오래 전에 알던 친구처럼 서로 웃고, 양보하고, 서로 격려하고, 협조했다. 촛불을 든 시민은 평화로 무장한 꽃이었다. 평화집회의 주인공은 물론 시민들이지만, 또다른 주역들이 있다. 집회 전체를 운영관리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다. 그 중
멀리 보성에서, 부산에서, 목포에서, 화성에서... 전국 각지에서 촛불 집회 후 한겨레 새주주가 되신 2000여분 중 54분이 한겨레 청암홀을 찾았다. 그들은 왜 한겨레주주가 되었을까? 각자 많은 생각과 사연이 있을 테지만, 정해진 시간때문에 마이크를 잡은 분은 14분이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풀어보았다. 새주주에게 답변을 해주기 위해 정영무 대표이사, 정석구 편집인, 송우달 경영총괄 전무, 김영희 사회에디터, 박용현 정치에디터, 류이근 미르팀 기자가 나왔다. ► 화성시 남양읍에서 오신 한성찬 주주는 한겨레신문을 받아보는데
[편집자 주] 지난해 가을부터 가 끈질기게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진실을 하나하나 드러내자 사람들의 관심은 '한겨레'였다. 특히 87년 '6월 시민항쟁' 세대는 '한겨레'를 다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우리에겐 한겨레가 있었지.' 잠시 잊고 산 것이다. 부쩍 한겨레 주식을 사겠다는 이들이 늘었다. 한겨레 주식을 살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회사는 시민들에게 '한겨레' 주식을 사는 방법을 알리기로 했다. 한겨레 주주 모집 광고를 냈다
지인의 소개를 받고 취재하러 간 제중원약국은 서대문구청이 바라다보이는 동신병원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겉보기에 오래된 약국처럼 보였다. 할 말이 많은 창간주주라 하니 기대되었다. 방문하기로 한 시간은 오전 11시 30분. 약국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운동복 차림을 한 사람이 유리창을 닦고 있었다. 점심 때라 청소부가 손님이 드문 시간에 유리창을 닦고 있구나 생각하며 앞의 직원에게 방문 목적을 알리니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잠시 후 유리 닦던 일을 마치고 내 앞에 나타난 분이 청소부가 아닌 제중원약국 대
(1) 드라마 ‘미생'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2) 드라마 ‘미생'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몸, 체력을 먼저 만들라.세상이 불공평해서 실패한 것 아니다. 내가 열심히 안 해서 실패한 것이다.인생은 끊임없는 반복,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성취한다. (3) 스티브 잡스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1) 노동력을 제공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구조, 우리가 노동력을 제공하는 일터인 ‘회사’ 즉 자본의 그늘을 벗어나는 순간 곧 우리의 생존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상황에 우리는 항상
오직, 한겨레!포항의 라이브주점 '옹해야' 여기, 해처럼 타오르는 남자가 있다.포항시 양덕동 1594번지. 라이브주점 '옹해야'에는 맑은 날의 해처럼 붉게 타오르는 정광욱(41세)님이 주인이다. 실은 술을 잘 못 마셔 몇 잔에도 얼굴이 몹시 붉다. 서울에서도 영업상의 이유로 한겨레를 테이블에 놓기 꺼리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런데 보수수구의 본향인 포항에서 당당히 와 , . 를 펼친 가게는 아마 유일할 것이다. 한겨레창간주주인 나보다 더 열혈한 한
[편집자 주] 김태동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을 지냈다. 이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 새천년 국가비전 수립 작업을 총괄했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한국금융학회 회장을 지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로 지난 3월 국내 여러 경제 석학들과 우리 경제를 진단하는 토론 내용을 담은 책 을 내기도 했다. 현재는 지난 5월 한겨레 주주가 주도해 만든 서울 종로 시민사랑방 '문화공간 온 협동조합'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 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