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물 막음배를 만들 때 조금만 신경을 쓰면 물이 스며들지 않게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배를 물에 내리기 직전에 배에 박을 친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을 하였다.물이 스며들지 않으면 박을 치지 않아도 될 것이란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배는 바다를 항해하다 보면 파도에 의하여 틈새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물이 스며들지 않더라도 박을 친 다음에 바다에 나가는 것이 또 다른 하나의 지혜이다.앞장에서 볼트와 구지 못의 머리에 댓거울을 감는다는 것은 말했다.박을 친다고 한 것은 판재와 판재의 붙이는 곳이나 밑과 부자리
19) 못배를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못이다. 그런데 이 못을 두고 말이 많다. 하나씩 풀어보자. 먼저 는 양구지라고 하는 못이고 는 외구지라고 하는 못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과 같은 것이다.의 1, 2, 3은 크기가 각기 다른 외구지 못이고, 4, 5번은 양구지 못인데
내가 각시를 처음 만났던 날내가 각시를 처음 보는 날을 불러온다.요즘 사람들은 거의가 연애로 결혼하지만 우리 때만 해도 중매를 하거나 지인의 소개로 선을 보고 난 후 결혼하는 것이 주류였다.그날도 이웃집 아줌마에게서 오라는 연락이 왔다. 재봉틀이 고장이 났으니 고쳐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재봉틀이랑 라디오를 조금은 알고 있었으며 손재주가 있어서 가끔 마을 사람들이 부르곤 했다. 그 집에 갔을 때 왠 낮선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었지만 난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고 아무생각 없이 재봉틀만 퍼뜩 고쳐주고 왔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줌마의 말씀
18) 노의 크기이제 배는 다 만들어졌다. 다 만들어진 배를 움직이려면 배의 추진기구인 노가 있어야한다. 배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못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설명을 할 것이다.이 배는 전체의 길이가 약 6m 정도임은 이미 앞에서 밝혔다.노의 크기를 알아보자. 의 노에 치수는 이 배의 표준이 되는 크기이다.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 장의 선박의 추진 기구에서 다시 설명을 할 것이다. 또한 이 배에 치의 크기는 에서 보는 것과 같이 치의 전체 길이가 4자 7치 정도다.
17) 똥개와 널 깔기에서 ㄴ자 모양을 한 부재가 똥개의 그림이다.따로 마땅한 이름이 없어 그냥 목수들이 쓰는 용어를 그대로 썼다(도모지리, 선미지리라고도 함). 이 부재를 붙이는 것은 부자리 삼이 하반 밖으로 나가있고 덤불이 밖으로 나가 있는데 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미관상 보기가 싫어서 그러한 것이다. 그러한 목적으로 붙이게 되었지만 세월이 지남에 따라 미(美)적인 것을 가미하여 문양을 그려 넣기도 하여 예쁘게 만들어 붙이기도 한다. 다만 경주를 하는 배는 이것을 붙이지 않는다
자랑스러운 우리 글누가 우리글을 업신 여기는가? 자신이 식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 한다.흔히 학력이 짧은 것을 비유하는 말로 가방 끈이 짧다고 한다. 그럼 많이 배운 사람이 메고 다니는 가방은 끈이 길었을까? 정확하게 말하면 가방을 메고 다니는 기간이 짧아서 라고 해야 할 것이다.1446년(세종25년)에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신지 올해로 575년이 되는 것 같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글이 요즘에 와서는 천대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식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나는 가방끈이 아주 짧다. 그래서 남의 나라 글
15) 덤불(舵床)는 덤불이라는 부재인데 길이는 옆 삼의 내면과 같으면 된다(타락이 있는 큰 배들은 밖으로 나가게 한다). 이곳에서는 이 부재를 덤불이라고 하지만 지방에 따라서는 번지, 꽁지부리, 통문이, 화통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덤불은 옆 삼의 높이와 같은 높이에 설치하고 삼 밖에서 못을 치고, 하반과도 못을 쳐서 고정하기도 하고 하반 뒤로 빠져나가 있는 덤불과 부자리삼을 관통하여 긴 볼트로 잡아주기도 한다.의 덤불 그림의 아래 부분을 타원처럼 만
14) 고부랭이(늑골, 옥개롱, 마스라)옆 삼이 다 붙여지면 이제 고부랭이를 붙여야 한다.이러한 고부랭이를 옛날에는 과 같이 구부러진 나무를 구하여서 사용하였다. 그러한 나무를 구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아서 나중에는 큰 나무의 뿌리를 파다가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산림법이 엄해지면서 차츰 그러한 나무를 구하지 않고 넓은 판재를 그림처럼 잘라서 사용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과 같은 모양 고부랭이가 이물 쪽으로 가면서 점선과 같은 모양으로 각도가
12) 옆 삼 붙이기(옥 삼, 선 삼, 웃설미)부자리 삼의 마무리는 옆 삼을 붙일 면을 다듬는 것으로 시작한다. 옆 삼을 붙이려 할 때 부자리 삼의 면을 다듬는데 삼의 면을 위에서 아래로 수직이 되게 깎는다.다만 옆 삼을 밖으로 얼마나 벌릴 것인가에 따라서 그 각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여 깎으면 된다. 앞장에서 본 은 옆 삼을 본 떠 놓은 그림이다. 부자리 삼에 비하여 본을 뜨기가 아주 쉽다.참고로 여기에 본을 떠 놓은 그림을 첨부한다. 이렇게 본을 떠 놓은 것을 붙이고 있는 그림이
~2,420개의 친환경 부표로 제작, 365일 바닷물 담수호에 띄워...항일의 섬으로 유명하고, 2015년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되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소안도에 설치된 친환경 부표 태극기 조형물이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완도군은 주민들과 관광객들에게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시키고, 가고싶은 섬 브랜드 가치 확산 및 깨끗한 바다 가꾸기 운동을 전개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친환경 부표 태극기 조형물을 설치했다.태극기 규격은 가로 18m, 세로 12m의 그물(216㎡)에
11) 부자리 삼 붙이기(벗삼, 누운삼)부자리 삼을 붙일 때는 먼저 본을 떠야 한다. 본을 뜨는 것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하나는 삼재용 판재로 직접 본을 뜨는 방법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엷은 판재를 이용하여 본을 떠서 삼재용 판재로 옮기는 방법이다.둘 중 어느 방법을 쓰던 관계는 없지만 사용할 판재는 두껍기 때문에 엷은 판자를 사용하여 본을 떠서 옮기는 것이 더 편하다. 본을 뜰 판재를 배의 밑에 최대한 밀착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본을 뜬 후에 밑에 붙이려고 할 때 잘 맞지 않고 틈새가 많이 생긴다.
옛 말에 '구부러진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이 있다. 아마도 출세(?)를 못한 놈이 고향에서 선산이나 지키고 있다는 비꼬는 말일 것이다.현실을 보면 실제로 많이 배우지 못하고, 직장도 없는 사람들이 고향에서 농사일을 하며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선산을 관리할 수 밖에 없다.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실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외지에 나가 있는 형제 중에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서 집안에 불화가 생기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도 생각이 있는 형제들은 돈이라도 보내고, 아니면 날짜를 잡아
10) 간답(間㳫)이제 이물비우와 하반을 붙였으면 간답(횡강력재)을 붙여야 한다. 간답을 붙이는 것은 비교적 쉽다. 정해진 위치에 올려놓고 밑과 관통되게 뚫어서 볼트로 조이면 된다.앞에서도 말했지만 배의 밑에 있는 중심선과 간답의 중심선이 일치되어야 하고, 하반과 이물비우의 중심이 일치되어야 한다. 이때도 볼트의 머리에 댓거울 감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간답은 모두 4~5개인데 1차로 두 개만 붙이고 배를 만든다. 붙이는 위치는 고물 쪽의 휘어진 지점에 하나를 붙이고, 그곳으로부터 이물 쪽으로 대략 2자5치 지점에
완도에는 사자상도 마스크 썼다.“사자도 코로나19가 무섭소야 마스크 꼭 써야 한당께” 완도 5일시장 입구에 마스크를 쓴 사자상이 눈길을 끈다.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재 확산됨에 따라 지난 8월 30일과 9월 5일 휴장했던 완도 5일시장이 9월 10일 다시 문을 열었다. 이에 시장 이용객들에게 마스크 착용을 당부하고자 사자 상에 마스크를 씌워뒀으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 미착용 자는 시장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8) 이물비우이제 밑판이 다 짜졌다. 다음으로는 과 같이 이물비우를 만들어야 한다. 1차적으로 밑에 붙여야 할 것은 이물비우, 간답, 하반이다. 이물비우(미요시, 전비우)를 만들 때는 과 같이 만들지만, 만들 때 그림의 점선처럼 중간에 먹줄을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세울 때 중심을 일치시키기가 어려워진다. 이물비우가 일치되지 않으면 배를 만들었을 때 어느 한쪽으로 틀어지게 된다.밑에다 붙이는 방법은 옛날에는 과 같은 방법을 썼다. 그림에서 보는
7) 배 밑 짜기배의 밑을 올릴 고임목이 설치가 끝나면 배의 밑을 짜야 한다. 은 만냇기(萬力機)를 이용하여 배의 밑을 만들고 있는 실제의 사진이다. 은 완성된 배의 밑그림이다. 밑판을 짤 때 필요한 너비만큼 되지 않을 때는 여러 쪽을 붙여서라도 필요한 너비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림에서 보는 중앙의 점선처럼 중심먹줄 놓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앞에서도 설명을 하였지만 고임목의 위치는 고물 쪽은 뒤로부터 대략 4자 지점, 즉 밑을 휘어 올리려는 지점에 설치한다. 이물 쪽은 고물
4) 목재의 건조배 만들 나무의 준비가 다 되었다고 바로 배를 만들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목재가 건조되지 않는 상태에서 배를 만들면 나중에 나무가 마르면서 틈새가 생겨서 배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목재를 건조하는 데는 최소한 90일은 잡아야 한다.나무를 말리는 것도 장소나 방법에 따라서 건조율이 다르다. 또한 나무의 두께에 따라서도 건조일수의 차이가 난다.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먼저 바닥에 고임목을 놓고 판재를 쌓아 올리는데 판재와 판재의 사이에 1~1.5치 정도의 각목을 넣고 쌓아야 통풍이 잘되어 건조일수를 줄일 수 있다.밀폐된 공
~ 1959년 음력 8월 14일, 추석 전날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바다를 보고 자랐다. 그리고 지금도 눈만 뜨면 일렁이는 물결과 파도소리를 보고 들고 있다. 바다와 함께 참 많은 세월을 살았구나 싶다. 이곳 우리고장에서는 추석차례를 14일 저녁에 지내기 때문에 이날을 작은 추석날이라고 한다.이날이 올해는 9월 30일이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로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정말이지 고기도 많이 잡히고 완도는 각종 해산물의 천국이었다. 1959년 당시만 하더라도 청산도에는 파시가 열렸으며, 일본의 활어선이 살아있는 고기를 일본으
1) 선목(船木)의 준비먼저 배에 사용할 나무를 준비해야 한다. 그 배에 사용할 목재를 준비하려면 먼저 수종을 정해야 한다. 수종의 선택은 내부와 외부재로 구분한다.우리나라는 예부터 선목(船木)은 소나무를 써왔다. 소나무 중에서도 황장목이라고도 하는 홍송(紅松, 참솔)을 사용하였다. 에는 변산의 소나무(黃腸木)가 다 없어져 배무이 장소를 완도로 옮겨야 한다는 기록이 있다. 배 만드는 소나무가 전국의 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특정지역에만 집단 자생지가 있었던 것 같다.지금이야 외부용재는 삼나무(스기나무)를 쓰지만 내부용재
제주도에는 원래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한다.산의 북쪽인 모흥혈(毛興穴)에서 세 사람이 한꺼번에 솟아났는데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라고 불렀다고 한다.하루는 바닷가에서 사냥을 하는데 목함 하나가 떠내려 오고 있었다.그 목함에는 붉은 띠를 두르고 자주 빛 옷을 입은 사자(使者)가 타고 있었다.이 사자가 말하기를,"나는 벽랑국(碧浪國) 사자입니다.우리 임금님께서 이 세 공주를 기르면서 말씀하시기를 바다 가운데 산기슭에 세명의 신인(~三神人)이 계시어 나라를 열고자 하는데 배필이 없다고 신에게 세 따님을 모시라 명하셨
4. 배 만들기배의 제작에 있어 모든 배를 다 말할 수는 없다.그래서 현재도 사용하고 있으며 쉽게 만들 수 있고 함부로 부리기에 좋은 해추선(海鰍船)에 대해서 설명할 것이다. 그것은 해추선에 갑판만 깔면 어선 등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 배가 모든 배들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이 배를 두고 현재는 채취선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김이나 미역 등을 채취하는데 사용한다고 해서 부쳐진 이름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용도에 따라 해추선(海鰍船). 농토선(農土船), 토선(吐船), 해채선(海菜船)이라
난생 처음 본다.날개를 펴면 10cm는 족히 될 만큼 커다랗다.뭘까 몹시 궁금하였는데 나방이란다.이곳 완도에서 볼 수 없었던 나방이다.어쩌다 남쪽까지 찾아왔나.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위의 은 일본인들이 부르는 고유의 이름이다. 그 이름에서 보았듯이 쿠기사시노미라는 명칭을 노미라는 말은 떼 내어 버리고 구기사시로 불리게 된 것이다.그림 중 구부러진 것은 처럼 맛대기 이음방식에서 못을 박으려 할 때 사전에 구멍을 뚫을 때 사용하는 것이고, 곧은 것은 배의 밑과 부자리삼을 붙일 때나 옆삼과 부자리삼을 붙일 때 사용한다.위의 과 은 설명을 하였고 는 나무의 결을 자르면서 못을 칠 때 나무의 쪼개짐을 막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태풍으로 인하여 조업을 나갈 수 없자 모든 배를 피항시키고 다들 텅빈 선창에 모였다.간단한 음식을 준비하여 한 잔씩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한겨레신문을 깔아 자리를 만들었다.어려운 시절 겨우 초등학교만 나온 사람이한겨레신문을 구독하며 얻은 지식이 너무 크다고 말한다.말하는 걸 보면 그 누구보다도 더 잘한다.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는 꺽쇠이다. 두 개의 것을 같이 잡으려 할 때 사용하지만 배의 삼 등을 붙일 때 휘어진 판재를 걸어서 밖으로 더 나가지 못하게 하여 놓고 못을 칠 때에도 사용한다. 두 개의 판을 붙이려 할 때 트잽이가 없다면 꺽쇠를 두 판에 박고 치면 처럼 꺽쇠의 끝이 밖으로 비스듬히 펴져있기 때문에 치면 칠수록 판의 사이는 밀착되기 때문에 트잽이 대용으로 쓰기도 한다.앞의 두 종류의 꺽쇠에서 는 목수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꺽쇠이고 은 거멀못(鉅未釘, 巨勿釘)이라고도 하지만 가구, 뒤주 등에
3. 배무이용 공구옛날에 배를 만들 때는 어떠한 공구를 사용했을까?예나 지금이나 사용하는 공구에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전동기구인 것 말고는 별다른 것이 없다. 몇 가지 안 되는 공구로 배를 만들었어도 마음대로 대해를 항해하고 다녔다. 이러한 옛 공구로 일을 한다면 힘도 많이 들고 작업능률도 떨어지겠지만 배를 만드는 데는 별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다.이러한 공구들이 언제부터 사용하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철기시대로 접어들면서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차 개량된 공구로 변하여 오늘에 이르렀을 것
긴 장마 중 가끔 비가 개인 날이면완도항 앞바다 신지도 산은 안개선물을 주었다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3) 우이도(牛耳島) 선소우이도는 전라남도 신안군에 속한 도서이다. 이곳의 선소(船所)는 우이도의 진리에 있으며 영조 21년(1745) 3월에 만들어졌다고 한다.이곳에 시설을 했던 것은 섬에 선재목이 많았으며, 먼 바다에서 연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어 이곳에서 바람을 피하거나 기다리기도 하였으며, 식량이나 식수 등을 조달받기도 하였을 것이다.이곳 선소의 선착장을 지역민들은 우이도 선착장이라 부르고 있으며, 현재 남아있는 시설은 길이가 63.3m, 높이2.2~3m, 폭1.6m 정도이며, 형태는 산의 경사면에 반하여 타원형 모양을 하
사람들은 누구나 보람되었던 일이나 후회되는 일이 있을 것이다.나 또한 그렇다.난 자라면서 마을 어른들의 이쁨을 받고 자랐다.그래서였는지 20이 갓 넘은 나이에 마을 회의에 불러서 보고 배우라고 했으며, 크고 작은 행사 등에도 참여할 기회가 참 많았다. 그러다가 70년대 초반에 새마을 지도자라는 큰 감투?를 썼다. 그리고선 계도방송을 하고 마을길을 넓이는 데 앞장서서 일했다.마을 안길은 3m, 큰 도로에서 진입하는 도로는 5m로 넓혀갔다. 당시로서는 차량이 없는 때라 너무 넓은 것처럼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도로가 좀 좁게 느껴진다.
1) 남해 선소 위 사진은 경남 남해군 남해읍 선소리 192-9번지에 있는 비로 비에 명칭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이 비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호로 1972년 2월 12일 지정되었다. 문화재 명은 장량상동정마애비(張良相東征磨崖碑)이다.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나는 선조 31년(1598)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일본 패잔병 500여명은 관음포를 통하여 육지로 올라와 일본군이 주둔하였던 선소의 왜성으로 갔으나 왜성의 주둔군이 도망하고 없자 패잔병들은 주민들의 선박을 탈취하여 일본으로 도주한 후였다.명나라군은 이곳에 도착하여 왜군을
2. 선소(船所)선소란 배를 만드는 곳인데 여기에서는 배를 만들었던 곳이나 메어두었던 곳을 의미한다. 그럼 이러한 배들은 어디에서 만들었을까?밝혀진 것부터 하나씩 풀어보자. 오늘날의 조선소들을 보면 거의가 옛날에 조선소가 있었던 곳이나 그 인근에 자리를 잡고 있다.사람의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에 의하여 몇 군데 밝혀지기는 하였으나 아직 밝혀지지 않은 곳이 더 많은 것 같다.지금까지 알려진 곳을 보면 전라좌수영의 본영인 여수의 진남관 앞 중앙동 4거리의 선소(지금은 매립되었음)와 돌산읍
제1장 배 만들기1. 배의 탄생배는 언제부터 어떻게 만들게 되었을까?그 누구도 언제부터 어떻게 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 인류의 삶과 동시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내(川)를 건너야 할 때 그 방법을 찾았을 것이고, 먹을거리가 풍부한 바다로의 진출도 절실히 요구되었을 것이다.처음에는 그냥 물에 뜨기만 하면 되었겠지만 사람의 몸이 물에 젖는 것이 불편했을 것이고, 짐도 날라야 했을 것이다. 배란 아득한 옛날부터 고기잡이, 해상의 운송수단, 전선 등 다양한 형태로 긴긴 세월을 지나면서 변해왔을 것이다.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