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에 있는 코펠 공장에는 충분한 시간을 주고자 6월 말에 후임을 뽑으라며 12월 말까지만 근무를 하겠다고 알렸습니다.서울올림픽이 열리던 8월경에 등산장비판매점 아리랑산맥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대만 바이어가 코펠을 찾는다며 공장에서 만나자고 합니다.안면이 있는 아리랑산맥 사원은 대만 보따리상으로 소개했습니다. 첫눈에 보기에도 세련된 비즈니스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지요. 다행히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솔한 인간은 아닙니다. 특히 대만에서 살았던 경험으로 친한 친구나 형제처럼 오히려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대했습니다.原野登山行 상호에 伍
王子의 李建雄과 등산장비 사업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 이후에도 관계는 지속하였습니다.李建雄은 당시 대만체육회 산하 대만스키협회 총간사(總幹事, 총무)였습니다. 대만은 눈을 거의 볼 수 없는 나라입니다.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산에서 일 년에 1주일 정도나 볼까 말까 하지요. 스키를 좋아하는 대만 사람들은 스위스 캐나다 일본 등지로 겨울마다 스키를 타러 다닌다고 했습니다.李建雄이 저와 인연이 되면서 일본보다 저렴하고 편리한 한국 스키장에 관심을 두고 1989년인가 1990년 겨울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대만 스키협회에서는 한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우선 먹고 살아야했습니다. 단순한 저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기발한 아이디어는 ‘식당을 차리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다’였지요. 그래서 가족들과 교대 부근에 칼국수 음식점을 차렸는데 몇 달 했더니 매달 임대료 내기가 빠듯했습니다.당시에 깨달았습니다. "사람마다 얼굴 다르고 생각 다르듯이 아무거나 열심히 한다고 다 잘되는 거 아니구나!" 음식점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뭔가를 만들어 수익을 창출할 능력도 없다는 걸 알았지요. 나 스스로 제조업을 할 그릇이 아니고, 영업은 전혀 맞지 않
1970~80년대 등산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남대문, 현 지하철 4호선 회현역 부근의 등산장비 전문점인 아리랑산맥을 기억하실 겁니다. 2대에 거쳐 운영하다가 지금은 사라져 아쉬움이 남습니다.대만에 수출할 첫 번째 품목은 텐트로 정했습니다. 당시 대만에서 본 텐트는 방수 처리한 원단을 사용하지 않아 무겁고, 바닥 면은 열에 쉽게 구멍이 나는 조악한 수준이었습니다.남대문 아리랑산맥에 가서 텐트 6동을 상표 없이 주문했습니다. 당시 사장님은 아들과 동갑인 나에게 많은 도움과 격려를 해주었지요.텐트는 몸체와 기둥 역할을 하는 폴, 그리
사업이라고 거창하게 공개할 규모나 수준의 업체를 경영한 적이 없어 어색하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업을 찾기 위해 걸어왔던 길이기에 다소 부끄러워도 지나온 경험을 남기려 합니다.대학원 3차 학기에 학업을 중지하고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여러 날 잠 못 이루며 수없이 많은 성을 쌓았다가 무너뜨리기를 반복하였지요. 그러다가 대만보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한국 등산 장비를 들여와 대만 전역을 뒤덮자고 생각하자 서광이 보이는 듯했습니다.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반장 한 번 해본 적 없는 존재감 미미한 제가 스스로 생각해도 무모한 상상을 했던
노자의 도덕경에서 제가 좋아하는 글귀 중 으뜸은 상선약수입니다.상선약수(上善若水)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라는 의미입니다. 2,500여 년 전 지혜로 충만했던 사람들은 물 흐르듯이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했던 듯합니다.아프리카에서 탄생한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북극까지 이동했던 가장 큰 이유는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 보다 실용적인 먹거리를 찾아서라고 합니다. 인류가 생존하기에 충분한 먹거리가 이 지구에서 생산되지만, 경쟁과 욕망이 지배하는 현실에선 전쟁 같은 투쟁과 굶주림이 우리 주변 누군가에게는 지금도 떠나지 않고 있습
중화권뉴스를 접할 때마다 자주 언급되는 이야기가 일국양제(一國兩制)이고, 최근 홍콩에서 격렬하게 시위를 하면서 내거는 구호는 반송중(反送中)입니다.먼저 일국양제는 일개국가, 양종제도(一個國家, 兩種制度)의 준말입니다. 하나의 국가인 중국 안에서 다른 종류의 통치제도를 인정하겠다는 의미합니다. 이 말은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정립된 개념으로 대만에 대한 정책개념입니다.1978년 개혁개방을 주장한 덩은 그해 말에 ‘대만의 제도와 생활방식은 유지하되 통일은 해야겠다’고 발표했고, 1979년 초에는 중국과 대만 양안 간에 포격을 정지시키
통상적으로 남자 혼자 패키지여행을 떠나는 경우는 드물지요. 여행가이드가 남자가 아니면 추가 일인 일실 요금을 내지 않고도 대부분 방 하나를 혼자 차지합니다. 이번에도 역시 행운은 비껴가지 않았습니다.하지만 허리 통증으로 침대 대신 바닥에다 이불을 깔고 자려고 준비하는 일은 큰 고통이었습니다. 베개를 옮기기도 힘들고 양말이나 바지 입고 벗는 고통도 형언키 어려웠지요. 여행 내내 친해진 일행들이 좋다는 진통제나 일본에서 사 왔다는 소염 진통 파스 등을 계속 주었습니다.여행 중 색다른 경험은 3일 정도 남았을 때부터입니다. 머리를 남자처
슬로베니아는 북서쪽으로는 중앙 유럽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와 접해있고, 남동쪽으로는 크로아티아에 둘러싸여 있는 약 2만 ㎢의 작은 나라입니다.지정학적으로는 알프스산맥의 동쪽 시작지점이고 발칸반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여 천년을 게르만, 라틴, 슬라브 문화가 만나는 요충지였습니다.1992년 유고연방에서 크로아티아와 함께 독립하였고, EU 회원국입니다.2015년 자료에 따르면 인구는 약 2백만 명, 일인당 국민소득은 약 2만 달러입니다. 슬로베니안이 89%이고 57.8%가 로마 가톨릭을 믿는 가톨릭국가입니다. (위키백과 참조)슬
전날 플리트비체 오후 일정을 마치고 허리통증이 심해, 다음날 플리트비체 일정은 몹시 애석하지만 취소하고 호텔에서 쉬었습니다. 점심때 일행과 합류하여 북동쪽 내륙으로 약 140Km 이동하여 수도인 자그레브에 도착했습니다.크로아티아는 남한 면적의 절반 정도에 인구는 400만 정도 된다고 이미 언급했습니다. 2018년 자료에 의하면 자그레브 인구는 80만 명 정도로 쾌적하고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아드리아해안에서 멀리 떨어져서 그런지 관광객들도 덜 붐비고 더욱더 여유로웠지만, 우산을 지팡이 삼아 언덕을 오르고 계단을 내려오는 저에게는 춘
3000년 역사를 간직한 고도, 고대 로마 유물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도시, 그리고 2016년 벨기에 포탈에서 최고의 유럽 관광지(Best European Destination)로 선정되는 도시가 자다르입니다.(Wikipedia 참조)자다르는 달마티아의 두 번째 도시로 201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7만 5천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크로아티아 최초의 대학이 세워졌다는 정치, 문화, 상업, 교육의 중심도시였으며, 히치콕 감독으로부터 석양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찬사를 들었습니다.공적인 모임이나 토론회를 의미하는 포럼(forum)은
크로아티아를 언급하면 대부분 지상낙원이라는 두브로브니크와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으로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플리트비체 호수를 떠 올립니다.하지만 크르카 국립공원을 둘러본 여행객들은 숨어있는 지상낙원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고 현지 가이드가 말해줍니다.크로아티아에는 8개의 국립공원이 있는데, 이곳은 1985년에 지정되었으며, 142㎢의 넓은 면적에 잘 조성된 호젓한 산책로와 석회암 지반의 맑은 물에서 유영하는 물고기, 다양한 형상의 폭포가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특히 폭포를 감상하며 수영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국립공원이라고 자
보스니아의 모스타르에서 다시 아드리아해안의 크로아티아로 이동을 하였습니다.138Km를 가면 스플리트 달마티아주에 속하는 작은 마을 Omis에 도착합니다. 세티나 협곡에서 흐르는 옥색 강물이 아드리아해로 흘러 들어가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과거 해적들의 근거지였다고 합니다.25Km 북쪽으로 올라가면 로마 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유서 깊은 항구도시 SPLIT입니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305년 지은 궁전이 자리하고 있는 크로아티아의 2대 도시입니다.처음에 이 궁전은 바닷가에 지어진 요새로 황제의 거처와 군의 주둔지가 함
스톤에서 보스니아 국경으로 들어와 90여Km를 내륙으로 달리면 작은 마을 BLAGAJ에 도착합니다.30대 초반인 현지 여성 가이드는 내전의 기억을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포탄이 날고 총소리가 나면 지하실로 대피하여 숨던 기억들. 다행스럽게도 영국으로 피난갔다가 전쟁이 끝나고 다시 보스니아로 돌아왔다고 합니다.블라가즈에는 마치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는 자연 속에 500년을 이어온 그림 같은 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스만트루크제국이 지배하던 1520년에 지중해풍으로 지어진 중세기 건축물 TEKKE 이슬람 수도원입니다. 수도원 우측의
두브로브니크 고성에서 북으로 약 54Km 해안을 따라 올라가면 작은 해안마을 스톤(STON)이 나옵니다.이곳에는 스톤장성(Walls of Ston)이 있지요. 1358년 라구사 공화국 당시에 축성하기 시작하였으며 처음에는 7Km가 넘었답니다. 현재는 5.5Km로 만리장성에 이어 두 번째 긴 성이라고 합니다.오스만제국(오스만 튀르크, 오스만 터키)의 확장에 방어용 성을 쌓았다고 알려졌는데, 우리 대만 가이드는 이곳에서 생산된 소금을 지키려고 쌓았다고 설명하지만 형세로 보아 납득하기는 어렵습니다.이곳 사람들은 귀하고 비싼 소금을 많이
타이베이(臺北) 타오위엔(桃園) 공항에서 출발 터키 이스탄불 공항을 경유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공항에 도착하여 아드리아해안을 따라 북으로 이동하며 보스니아를 거치고 슬로베니아 일정을 마치고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 공항에서 다시 이스탄불을 경유 타이베이로 돌아오는 일정입니다.짐을 부치고 야간비행기임을 감안해서 긴소매 겉옷과 다운 조끼를 여분으로, 그리고 장시간 비행에 편한 샌들을 준비해서 배낭에 넣고 탑승했습니다.13시간 서쪽으로 비행하여 대만과 5시간의 시차가 나는 이스탄불 공항에 한밤중이 되어 착륙하였습니다. 터키의 이스탄불
항공기 수리 및 관리 기술을 교육시키는 센터가 개설되어 학생선발과 교육에 관한 내용을 [대만이야기 63]에서 언급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학비에서 큰 오류가 있었습니다.‘항공유지보수훈련센터’를 개설하며 수업과 학사일정 그리고 대만민항국 및 대만 양대 항공사와 업무협약을 총괄하던 분이 행정업무는 관여하지 않아 발생한 실수입니다.대만화폐를 통상 NT Dollar라고 부릅니다. New Taiwan Dollar라는 의미입니다. 중국어로는 줄여서 타이삐(臺幣)라고 하지요.3월 중순 한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포모사 대학 항공유지보수
‘궁하면 통하는 법이다’는 말은 조폭들이나 군대와 같이 서열문화가 강한 집단에서 흔하게 사용되던 말로 기억합니다. 이 말을 전혀 새롭게 인식하게 된 계기는 중국 철학사를 배울 때였지요.대학원 3차 학기가 되면서 선수과목 수강을 위해 학부과정 수업인 중국철학사를 들어야 했습니다. 중국철학사의 천롱푸어(陳榮坡) 교수는 다섯 명 정도의 이름만 희미하게 떠오르는데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분입니다.천(陳) 교수는 역경을 강의하면서 주역이 중국철학의 뿌리이며, 공자가 죽을 때까지도 붙들고 있었던 책이라고 하더군요. 강의 내용이 이해가 안 되었지만
자화자찬이 자기가 말하고 스스로 잘했다고 칭찬한다는 自話自讚인 줄 잘 못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중국한자에서 유래된 성어가 아니네요. 일본에서는 지가지상(じがじさん)이라고 발음하는 사자숙어로 널리 쓰인다고 합니다.대만 고궁박물원에 가서 유명 서화를 보면 쓰거나 그린 사람의 낙관 말고, 소유자의 낙관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황제의 낙관이나 유명인의 낙관이 많으면 가격이 엄청나게 뛰지요. 또 어떤 그림은 여백에다가 칭송하는 글을 써넣는 데 이를 찬(贊)이라고 합니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칭송하다는 의미의 옛글은 贊이라 썼고,
대만에 가면 꼭 찾는 고궁 박물원. 그곳에서 우측 전방을 보면, 계곡 건너에 동우(東吳)대학이 보입니다. 최근 대만 정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의 가오슝(高雄) 시장인 한꿔위(韓國瑜, 차기 총통 선호도 1위)가 나온 대학이기도 합니다.대학원 동기 미졘꿔(米建國)가 이 대학 철학과 주임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08년에는 세계철학회의가 서울에서 열렸을 때 대만 철학회 대표인솔자로 와서 개회 연설도 했고, 몇 년 전에 만났을 때는 대만 철학회 회장 직함을 가지고 있었으니 학계에서는 꽤 유명인이 되었더군요.이 친구는 소아마비 질환을 앓아
무협소설은 판타지입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실존 역사까지 들먹이며 워낙 그럴듯하게 묘사해 사실인지 판타지인지 혼동을 일으키지요. 이런 판타지는 중국인의 현실 도피적인 생각과 잘 어울립니다. 그들은 전쟁과 수탈에서 벗어나 무릉도원을 꿈꾸다 보니 절대적인 힘, 불로장생, 그리고 부에 대한 욕망이 강합니다.이런 중국인의 특질을 잘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책이 산해경(山海經)입니다. 산해경은 중국의 신화집으로 진나라 통일 이전에 구전된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으로 추측이 됩니다. 곤륜산에 얼음 궁전이 있고, 그곳에 서왕모가 살고 있으며 그곳에서
‘천년에 한 번 만날 수 있는 기회’, 또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좋은 기회’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천재일우가 중국성어사전에는 千載一時, 千載一逢, 千載一合, 千載一會등과 함께 쓴다고 나옵니다.‘싣다’를 뜻하는 載가 여기에서는 해, 년의 의미로 千載는 천년, 一遇는 한번 만난다는 뜻입니다.중고등학교에서 배운 한자 1,800자와 대만사범대학교 8개월 수학으로 대학원 교재를 보고, 수업을 들어야 하는 하루하루는 답답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는 내일 해가 안 떴으면 하는 바람으로 눈을 감고, 아침이면 시간이 멎기를 빌어보지만
‘지족상락’, 익숙하지 않은 글자지요?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알 듯합니다. 한국에서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한자성어인데 대만에서는 참으로 많이 사용합니다. 한동안 아침문안 글귀로 매일 쏟아졌지요.知足은 ‘만족함을 알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에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을 안다는 의미로 안분지족(安分知足)을 많이 사용합니다. 또한 가난해도 도를 즐긴다는 안빈낙도(安貧樂道)도 많이 들어보셨지요.常樂은 항상 즐겁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지족상락’은 ‘만족함을 알고 탐심을 내지 않으면,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다’라는 의미로 사용
'한겨레:온 편집위원회'는 전월 등록기사 중 을 선정하여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합니다. ‘12월의 필진’은 22명 필진들의 추천과 투표로 선정되었습니다. 추천받은 8명(김시열, 김광철, 김형효, 최성수, 김미경, 위정량, 하성환, 양성숙 ) 중 투표를 거쳐 5분이 선정되었습니다. 은 필진들이 직접 추천하고 투표하여 나름의 소통과 참여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달의 필진은 연속해서 선정되지 않으며 1년에 최대 4번 선정됩니다.가. 12월 필진으로 다음 5분이 선정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1.
야채튀김은 몇 번을 시도했지만 맛이나 생긴 모양이 돈을 받고 팔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우리가 먹어봐도 돈 주고 사먹을 맘은 생기지 않겠더군요. 광화문 길거리에서 사먹어 본적이 있는, 가늘게 썬 고구마 튀김을 만들기 위해서도 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며칠째 이런저런 시도를 하던 어느날, 가게 문을 열고 밤늦게까지 장사를 했지만 매상은 몇 십위엔 뿐이었습니다. 주류는 어묵튀김이었는데, 우선 강한 조미료 맛이 제 입에 맞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점차 고구마튀김을 찾는 손님이 늘어가자, 친구에게 한 가지에 집중하자고 제안했지요.
일자지사는 ‘단 한 글자만 가르침을 받아도 나의 스승’이라는 의미로 쓰입니다.중국의 당 왕조는 당시 세계사에서 가장 선진국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한자체도 이때 완성이 됩니다. 구양순과 안진경이 모두 당나라 사람이지요. 문명과 더불어 문화도 가장 융성한 시기였습니다. 주옥과 같은 시들이 쏟아져 나오지요.가난한 마을에 제기(齊己)라는 아이가 소를 키우면서 어렵게 공부를 했습니다. 그의 총명함을 아낀 절에서 데려다 중으로 키웠습니다. 이 제기스님이 조매(早梅, 이른 매화)라고 하는 시를 지었는데, 여기에서 유래한 전설
세상살이가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만약 어떤 서열을 정해놓고 각자의 인생이 서열대로 움직인다면 아마도 이 땅의 살아있는 생명 절반은 삶에 그다지 미련을 갖지 않겠지요.살면서 미운 놈 망하는 꼴도 보고, 훼이 꾸냥(灰姑娘: 신데렐라의 중국어)의 유리 구두가 현실이 되는 걸 볼 수 있기에 세상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이루었을 때 우공이산이라고 합니다.우공이산의 고사는 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기주(冀州)의 남쪽, 황하를 바라보는 언덕에 한 노인이 살았습니다. 나이가 90이 되었지요. 집 뒤
回頭是岸(회두시안)의 직역은 ‘머리를 돌리니 바로 언덕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원래 원나라 때 불교소설인 ‘도유취(度柳翠)’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월명(月明) 나한이 기녀 유취(柳翠)를 불도로 이끄는 내용입니다.‘속세의 인간들은 서로가 길다 짧다 다투고, 너 죽고 나 살자 싸움이 그치지 않는, 끝이 없는 고해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더라. 하지만 지은 죄를 드러내고 회개하면 바로 피안이다.’라는 의미의 '고해무변(苦海無邊), 회두시안(回頭是岸)'이라는 글에서 따온 사자성어입니다.젊은 날 난생 처음 말도 통하지 않는 다른
지나온 날을 돌이켜보면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떤 선택은 좋은 결과로 이어졌고, 어떤 선택은 큰 후회로 남기도 합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선택을 마주하게 될 때마다 떠올리는 성어가 새옹지마입니다.대만 사범대 어학원에서 중국어를 배우던 시절, 우언(寓言, 우화)책에 塞翁得馬(새옹득마)라고 나왔더군요.옛날 북쪽 변방에 말을 잘 기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새옹이라고 불렀지요. 어느 날 새옹의 말이 마구간을 뛰쳐나가 국경을 넘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습니다. 소식을 들은 이웃들이 달려와 위로를 합니다. 새옹
대학과 군대를 마치고 20대 중반이 넘어갈 무렵, 본인의 희망과 주변의 기대를 만족시킬만한 꽃길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1983년 겨울, 뚜렷한 계획도 장래 희망도 없이 달랑 천 달러(백여만 원) 들고 대만으로 갔습니다. 젊음 하나 믿고, 지금 시도하지 못하면 영원히 기회가 없을 거라는 막연함으로.김포공항에서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떠난 후, 지금은 대만에 머물며 대만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당시의 나처럼 불확실한 미래에 잠 못 이룰 젊은이들을 생각하며, 고속도로를 달려 한 대학을 찾았습니다. 2016년 5월에 쓴 ‘
수년전 극심한 허리통증으로 자리에 누웠던 적이 있습니다. 신경협착으로 오른쪽 종아리까지 통증이 오면서 힘들게 일어나 벽을 붙잡고 화장실에 가야하는 암울한 시기였지요. ‘이대로 가벼운 산행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가장 두려웠습니다. 좋아하는 운동이나 맛집을 떠올리지 않은 이유를 지금도 모르겠습니다.약 2년 동안 이런저런 치료와 민간요법을 하던 중, 중국 심천의 어떤 중의원(中醫院,한방병원)에 가서 한달 정도 치료를 받았습니다. 꽤 규모가 큰 병원으로 현대적인 물리치료도 받고, 20여개의 안마 침대가 있어 중의학
왕양명(왕수인)은 주희와 동시대에 심학을 창시한 육상산의 뒤를 이어 심학을 완성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왕양명은 명나라 때 사람입니다.젊은 시절 왕양명도 과거를 보려고 시, 서, 역, 춘추, 예기 오경을 공부합니다. 유학의 경전이지요. 사서의 하나인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格物致知)에 대한 주희의 해석인 격물궁리(格物窮理)를 보고 실행에 들어갑니다.격물궁리는 나무 하나 풀 한 포기에도 그 나름의 이치가 있다.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만물의 이치를 알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송나라 유학에는 이미 불교와 도교의 이론이 가미되었습니다. 격물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