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역사는 어떻게 그리스 신화와 연결되었을까. 누군가의 창의적인 역발상이 아니고서는 그런 방대한 작업이 쉽게 이루어질 수 없다.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당대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에게 로마의 역사를 그리스 신화와 연결하라는 작업을 지시했다. 로마의 국가 서사시 《아이네이스》의 저자인 베르길리우스는 로마의 시성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시인으로 이후 전 유럽의 시성으로 추앙되며 단테가 그의 저서 에서 저승의 안내자로 선정할 만큼 위대한 시인이었다. 베르길리우스는 그리스 신들의 후예를 로마의 시작으로 잡으면서 로마의 위상
어렸을 때 내 엉덩이에 점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던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다. 이는 세상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던 나를 세상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그 점이 몽고반점이며 그 점은 한민족뿐만 아니라 아시아 민족들에게 공통적으로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알게 되었다. 삼신할미가 뱃속의 태아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꾸물거리지 말고 얼른 나가라고 엉덩이를 때리는 바람에 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한국의 설화에서는 아이를 낳을 때 삼신할미가 어머니 몸속에 있는 아이의 궁등이를 때려서 출산시키기 때문에 푸른 반점이 생긴
한때 시인 지망생이었다가 예언자로 생을 마감한 카마르가 화장되어 사라져간 갠지스 강가의 화장터를 보며 회상에 잠겨 있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갠지스 강 인근 바라나시에서 '생명과 평화 연대' 가 주최한 세미나를 마치고 갠지스 강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투란도트의 엘리스와 바즈라야나 사상 연구회의 인도본부장 모니카도 있었다.투란도트는 NGO 단체인 '생명과 평화 연대'의 전위조직으로 기후 위기에 처한 인류의 평화와 생명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신장위구르의 독립을 비밀리에 지원하고 있다. 갠지스강의 신묘
내각정보조사실의 주요 현안을 마무리하고 모처럼 편안한 오전을 보내고 있는 모리 국장이 보고차 들어온 조사 3과장을 맞이했다."유럽 여행을 마친 카즈미가 며칠 전에 미국으로 출국했습니다. 알아본 결과, 카즈미는 만방제세백교의 미주지역장을 만난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그 외 다른 특이사항은 없는가?""카즈미는 미국 가기 직전에 서울에 있었습니다. 서울에서의 특이 동향은 없었습니다.""카즈미가 마치 만방제세백교의 홍보 대사라도 되는 양 바쁘게 움직이고 있군.""카즈미의 미국 동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까요?"모리가 신중한 어조로 말했
만방제세백교가 초순진의 소재를 파악하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백상훈은 초순진의 보디가드였으며 한 때 연인 사이로 발전하기도 했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 관계가 소원해졌다. 그렇게 관계가 소원해진 상태에서 초순진이 갑자기 종적을 감췄다. 2년 전의 어느 가을날이었다. 사라진 정도가 아니라 아무도 찾지 못할 곳으로 잠적해버린 것이다. 그때 초순진이 백상훈에게 메시지 하나를 남겼다.- 이제 나를 잊어 주길 바래요. 그리고 더 이상 나를 찾지 말아요. -그야말로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초순진을 알고 있던 주위의 모든 사람이 당황해
마쓰다 공작을 통해 동북아재단 보고서를 조작하여 이시하라 의원과의 면담을 성공리에 마무리한 내각정보조사실 3국의 모리 국장은 대외공작팀 인도 지부장이 보내온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전 세계의 해외 지부로부터 매월 받아보는 월례 보고서였다.1.지시하신 대로 카마르는 깔끔하게 처리되었습니다. 2.인도에 있는 티베트 독립운동본부와 신장위구르 독립운동 단체에 별다른 특이 동향이 없습니다. 다만 최근 달라이라마의 건강악화로 인한 승계 문제로 중국 국가안전부 요원들이 다람살라의 티베트 망명정부를 밀착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힌두교도 사이에서는 갠지스 강물에 목욕재계하면 모든 죄를 면할 수 있으며, 죽은 뒤에 갠지스 강물에 뼛가루를 흘려보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갠지스 강 유역에는 연간 100만 이상의 순례자가 찾아드는 유명한 바라나시를 비롯하여 하르드와르·알라하바드 등 수많은 힌두교 성지가 있다.힌두교 최대의 성지 바라나시는 갠지스 강이 흐르는 지역으로 예언가와 신비주의자들이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그 중에 카마르라는 무명 시인이 있었다. 그는 교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시를 쓰고 있다. 카마르는 고민에 빠졌다. 타고르처럼 인류에게 영감
모리 국장이 이시하라 의원을 예방한 것은 바로 인도 예언가 카마르의 기사가 난 다음날이었다. 모리 국장으로부터 동북아재단 보고서와 순스케의 영계 통신 결과를 보고받은 이시하라는 눈살을 찌푸리긴 했지만 모리에게 짜증을 내지는 않았다. 동북아 보고서에는 마쓰다가 보고한 내용과 더불어 어제 신문에 실린 카마르의 예언과 그에 대한 분석이 별첨으로 첨부되어 있었다. "그럼 이 두 종류의 예언 중 하나는 맞고 다른 하나는 틀렸다는 말인데 모리 국장은 어느 예언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가?"속이 들여다보이는 뻔한 질문이지만 이시하라로서는 모리
마쓰다가 변호사와 상의했지만 변호사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일단 살인 혐의로 기소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재판을 통해 무죄를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마쓰다는 머리를 감싸안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엠마에게 폭행을 가하며 위협하던 베트남인들이 생각났다. 그들이 엠마 오빠와의 일로 엠마를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엠마에게 나중에 보자며 위협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던가. 변호사를 통해 그들이 살인을 했을 가능성을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 수사 5계에서는 마쓰다의 제보를 바탕으로 엠
마쓰다 앞에 늘씬하고 관능적인 몸매의 여성이 해변에 누워 있었다. 그 여인은 남미 콜롬비아 출신으로 보였으며 야한 비키니 차림으로 요염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그 여인이 마쓰다를 유혹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마쓰다를 향한 여인의 눈길이 보통 예사로운 게 아니다. 여인의 강열한 유혹에 마음을 빼앗긴 마쓰다가 넋 놓고 여인을 바라보자, 그 여인이 마쓰다의 애간장을 태우며 속삭이듯 말했다. "어서 와서 나를 안아줘요~!" 그 말을 듣고 흥분한 마쓰다가 여인을 안으려고 다가갔다. 그러자 여인은 어느새 저만큼 멀어져
비록 마쓰다가 협조를 거부했지만 동북아재단의 보고서를 가공하고 조작하는 것쯤이야 내각정보조사실의 모리 국장으로서는 아무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좀 더 알아볼 게 있다. 모리는 순스케 심령술사를 소환했다. 순스케는 일본심령연구센터에 소속된 시니어 심령술사이다. 일본심령연구센터는 동북아재단처럼 내각정보조사실에서 국가적인 목적을 위해 비공식적으로 예산을 지원하는 단체 중 하나이다.마쓰다를 만날 때와는 달리 순스케를 만날 때는 도쿄 시내의 평범한 호텔을 이용한다. 그만큼 모리가 심령연구센터와 순스케를 비밀스럽고 조심스럽게 대한다는
마쓰다는 그날 밤 오랜만에 도쿄 번화가에 자리 잡은 신주쿠 거리의 술집을 찾았다. 삿포로에서 출장차 올라온 친구와 만나기로 한 터였다. 그 친구는 월간지 '시공( 時空) 컬쳐 3.0' 잡지사에서 편집국장으로 일하는 노부유키였다. 노부유키는 한 달에 한 번씩 도쿄로 출장을 오는데 그때마다 마쓰다와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절친이었다. 한 달 만에 만나는 노부유키를 마쓰다는 무척 반갑게 맞이했다. 어스름한 저녁이 되자 신주쿠 거리는 술 취한 취객들로 흥청거리기 시작했다. "도쿄에서 소위 돈 좀 있고 힘 좀 쓰는 자들은 오늘 밤 이 거리를
4. 기다노 대승정의 이를 어쩐다. 마쓰다가 알아서 보고서를 각색하면 좋을 텐데 우직한 마쓰다가 협조해 줄 것 같지 않다. 그래도 마쓰다가 나서주는 게 모리 국장으로서는 최선이다."이봐. 마쓰다 상! 모친이 입원하여 거액의 수술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비용일랑 은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협조해 준다면 그깟 수술비가 문제겠는가?"모리 국장이 마쓰다의 반응을 조심스레 살피며 말을 잇는다."예언가는 지구상에 수두룩하네. 인도의 어느 예언자는 한국과 일본에 대해 정확한 예언을 한 것으로 유명하지. 북한 김일성과
3. 딘 쿤츠의 '어둠의 눈'모리를 더욱 신경 쓰게 만든 것은 일본과 한국의 국가적 명운이 걸린 사건이 21세기 중반에 일어날 거라는 예언과 그를 뒷받침하는 시계열 보고서였다. 모리는 마쓰다에게 그 시기를 특정할 것을 요구했다. 언제 어느 시점에 국가의 명운을 결정할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날지가 중요하다. 그 시점을 알면 예언을 뒤집을 수도 있다고 모리는 생각했다.모리가 마쓰다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아무리 한국 민족이 우수하다해도 일본을 따라잡지 못하는 분야가 있지. 그게 무엇인지 아나?"마쓰다가 모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2. 동북아재단 보고서동북아재단에서는 전 세계 유명한 예언가들의 과거 예언이 맞았는가를 검증하여 검증된 예언가들의 예언을 중심으로 조사를 벌인다. 연구 조사는 두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중 하나는 국가별 경쟁력 평가이고, 다른 하나는 예언가들의 예언에 따른 징조와 징후를 계량화한 평가이다. 국가별 경쟁력은 경제력, 군사력, 과학, 문화 등 7개 분야로 분류하고, 해당 분야별로 주요 10가지 항목을 세분하여 항목별로 측정 평가하여 집계한다. 예언의 징조는 정치 사회적 징조라든가 자연재해의 징후는 물론이고 민족별 기질이나 국민적 자질과
1. 일본 내각정보조사실무더운 여름철 찌뿌둥한 날씨에다가 간밤에 딸 문제로 아내와 심하게 말다툼을 벌인 모리 국장은 아침부터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요즘 애들은 국가에 대한 개념이 없어도 너무 없단 말야. K- 팝이니 한류니 언론에서 떠들어대도 그게 남의 자식들 이야기인 줄만 알았지 자신의 딸이 한류에 푹 빠져 있을 줄은 몰랐다."아카네! 딱 이번만이야. 다음부터는 어림반푼어치도 없어. 알겠나?"아카네는 10대에는 소녀시대와 트와이스에 열광하더니 스무살을 넘긴 요즘에는 BTS와 블랙핑크라면 사죽을 못 쓸 정도이다. 한국이 좋다며
다비드가 주최한 비상대책회의를 마치고 귀가하는 도중에 레이첼은 발신자 불명의 메시지를 받았다."이 메시지를 받는 즉시 신변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긴급 조치를 취하는 게 좋겠습니다. 광기어린 집단이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 레이첼을 아끼는 사람으로부터."레이첼은 이 메시지의 중요성을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알렉스를 비롯한 무리가 거액의 자산을 노리고 돌발적인 무리수를 둘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레이첼도 짐작하고 있었다. 레이첼은 폰의 앱을 다시 확인했다. 여차직하면 앱에 깔려있는 비상 버튼을 누르면 위급한 상황을 모면할 수
여행 작가를 사칭하며 레이첼이 다이아나의 죽음에 관여되었다고 주장하던 조나단이 살인범으로 체포되자 슈만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레이첼에게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상황이 복잡하고 혼미할 때는 명상에 몰입하는 게 좋다. 명상을 하다보면 여러 갈래로 엉크러진 실타래가 풀리며 한순간에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음악 명상보다 명상 호흡법이 더 효과적이다.478 호흡법으로 깊은 명상에 잠긴 슈만은 마음의 평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4초동안 코로 숨을 들이쉬고, 7초동안 숨을 참고, 8초동안 입
슈만은 사건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행복경시대회를 기점으로 하여 다이아나가 사망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슈만이 레이첼에게 싸늘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한 가지만 묻겠소. 혹시 모사드에서 활동한 사실이 있는지, 그것만 말해봐요."레이첼은 뜨끔했다. 모사드에서 활동한 사실을 말하면 다이아나의 죽음에 자신이 관여되었다는 의심은 더욱 굳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슈만에게 거짓을 말하자니 그것도 마음에 걸린다. 언젠가 슈만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날이 오겠지만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 일단 둘러대야 한다. "조나단과 알렉스가 소설을 쓴 거예요.
다비드와 윤리위원장 사라폰티는 스티브의 정체를 마을 주민들에게 공지하기로 했다. 강간과 사기 전과가 있는 자가 이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소름끼치는 일이 아닌가. 공지문은 다비드와 사라폰티의 공동명의로 발표되었다.- 그동안 메로나 마을에서 말도 안 되는 의혹을 제기하며 메로나 마을을 어지럽히고 소란을 일으켰던 스티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스티브로 행세하는 자는 실제로는 가짜이며 그의 정체는 폭행과 강간을 저지른 전과 5범의 조나단입니다. 스티브와 조나단은 쌍둥이 형제이며 조나단은 그동안 스티브 행세
내가 6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완도를 찾은 것은 순전히 나의 게으름 탓이다. 완도에 가면 명사십리가 있고 그 명사십리를 걸으며 장보고의 넋을 기리고 싶어했던 건 나의 오래된 숙원이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나의 발길은 완도에 이르지 못하고, 매번 목포나 광주에 머무르고 말았다. 이번에도 온전한 나의 의지가 아니라 지인들과 완도에 가기로 한 약속 때문에 방문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나의 게으름을 감추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완도를 이렇게나마 늦게 여행하게 된 것도 어쩌면 영화 '천녀유혼'에 나오는 듯한 어여쁜 여인의 혼령을
아침에 슈만과 함께 명상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던 레이첼은 지난 주에 주문한 책이 생각났다. 이라는 책이었다. 저자는 여행 작가 스티브 E.넬슨 이다. 책은 그리 두껍지 않아 한나절이면 다 읽을만한 내용이었다. 책의 첫 구절부터 마음에 와 닿았다.- 그리움은 빛을 타고 흐른다. 사랑하는 님을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에 한숨을 쉬기도 하고 영욕의 세월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면서 그리움은 빛을 타고 흘러간다. 광활한 우주 공간에 펼쳐져 있는 무수한 별빛을 따라 영원한 미래를 꿈꾸며 거침없이 흐르기도 하고, 달빛에 머물러 애잔
사랑을 꿈꾸는 남녀가 가장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는 사랑을 고백하기 직전의 마음 상태이고, 그보다 더한 긴장은 사랑의 고백을 받아들인다고 말하기 직전이다. 닉의 마음을 잘 알면서도 닉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동안 닉의 마음은 애간장이 타고 있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간 윤리위원들이 마음고생 하는 걸 지켜보면서 닉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그 미안함 때문에 거리를 유지하며 가까이 하지 않았다. 이제 닉에게 진심을 전할 때가 되었다.엘리스는 마리앙팡 여사의 초청을 받아 태고 마을에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듯이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도 개인에 따라 단체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메로나 마을의 현자 다비드가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했다. 매주 윤리위원장과 간담회를 겸한 티타임을 갖고는 있으나 이번에는 사안이 사안인지라 긴급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참석자는 다비드와 윤리위원장 그리고 보안국장과 레이첼이었다. 레이첼은 윤리위원회에서 한시적 입주자를 담당하는 윤리위원이다. 3주일 전에 한시적 입주자인 스티브가 제기한 의혹과 그 이후의 사태에 대한 현안을 협의하기 위한 긴급회의에 레이첼이 빠질 수 없다. 다
달빛은 단풍 위에 푸르게 비치는데 메로나 마을의 수심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 사라폰티의 근심어린 표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안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사라폰티의 반려자 차나드슈였다. 차나드슈는 메로나 마을의 심리상담사이다. 요즘 들어 마을 주민들의 심리상담 요청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이는 최근에 스티브와 알렉스가 마을에 분란을 일으키는 발언을 일삼으며 불거진 사태와 무관치 않다. 마을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아침 햇살을 맞으며 차나드슈가 아유르베다 허브티를 끓이고 있다. 아유르베다(ayurveda)는 '
늦가을의 정취를 맛보며 다비드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찬바람에 단풍이 지긴 했지만 나뭇가지에 남아있는 단풍 덕분에 가을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다비드는 오랫만에 마하트마 간디의 서적을 읽고 있었다. 행복에 대해 간디가 말한 문구가 오늘 마음에 와닿는다. - '행복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다.'동양의 어떤 사상가는 간디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간디는 현대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조명탄이다. 캄캄한 밤에 적전상륙을 하려는 군대가 강한 빛의 조명탄을 쏘아 올리고 공중에서 타는 그
다비드가 집을 나서려고 하자 지난 주까지만 해도 대지를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들게 하던 가을하늘이 작별 인사라도 하려는 듯 찬바람이 모질게 불고 있었다. 애잔한 여인의 눈물처럼 낙엽이 뚝뚝 대지로 떨어지기 시작한 어느 날 오후 메로나 마을에서 현자로 추앙받는 다비드가 월례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메로나 마을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월례회의를 통해 마을의 현안을 협의한다. 참가자는 다비드를 비롯하여 행정실장과 재무처장 그리고 커뮤니케이션팀장과 보안국장이다. 메로나 마을에서는 평화롭고 조화롭게 모든 일이 진행되어서 현안이랄 것도 별로 없다
행복은 일상 속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메로나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텃밭을 가꾸기도 하고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각자의 행복을 맘껏 누리고 있었다. 엘리스와 닉처럼 사랑을 꿈꾸며 서로를 탐색하는 커플도 있었고 슈만과 레이첼처럼 행복의 보금자리를 일구고 있는 커플도 있었다.유럽의 꿈 커뮤니티는 매주 열린다. 지난주 산책하면서 어느 정도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한 닉이 커뮤니티에 참석한 엘리스에게 반갑게 인사말을 건넸지만 엘리스는 닉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주고받았을 뿐 다정한 눈길을 주지 않았다. 엘리스가 다가오더니 닉에게 귓속말로 말
밤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을 쳐다보며 어떤 여인을 그리워하는 남자가 있었다. 닉이었다. 닉은 유럽의 꿈 커뮤니티에서 엘리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청순하고 가련해 보이는 얼굴에 다소곳한 표정과 어여쁜 눈매가 닉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커뮤니티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엘리스 생각에 마음이 심숭생숭했다. 그동안 혼자 애를 태우다가 엘리스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인지 얼마 되지 않는다.5년 전에 닉은 아내와 함께 매로나 마을에 입주했지만 아내는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닉의 아내는 몇 달을 못버티고 파리로 돌아갔다. 파리의 사교생활에
레이첼이 슈만과 행복한 신혼을 즐기고 있는 순간에도 마을의 상황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었다. 다이아나가 사망한 이후 레이첼은 다이아나와 함께 활동했던 인문학 여행 커뮤니티를 탈퇴하고 새로운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유럽이 당면한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유럽의 꿈' 이라는 커뮤니티였는데 두어 달 전에 주민들의 요구로 커뮤니티가 결성되었다. 갈수록 늘어나는 난민 문제와 인종혐오 같은 사회적 갈등을 비롯하여 유럽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수두룩하다. 유럽의 꿈 커뮤니티는 그런 문제를 개선하고 유럽의 꿈을 이루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커뮤
메로나 마을의 현자 다비드는 푸른 가을 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사색에 잠겨 있었다. 레이첼과 슈만의 결혼식도 성황리에 끝나고 마을은 더없이 평온했다. 마을 주민들도 평화롭고 행복한 분위기에 잠겨 아무 불만이 없어보였다. 그때 왠 파리 한 마리가 주위를 맴돌며 사색을 방해했다. 가을 바람이 좋아 창문을 여는 김에 방충망을 열어 놓은 사이에 파리가 날아든 것이다. 잠시 그러려니 하고 다시 사색에 잠기려는데 파리가 다비드의 코 앞에서 정신없이 날아다닌다. 코 앞에서 얼쩡거리는 파리나 모기를 본다는 것은 인내와 선택을 강요당하는 일이다.
팬데믹과 기후 위기 속에서 세상은 더욱 혼란을 거듭하며 미래로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는 듯 보인다. 오스트리아 귀족 가문의 다이아나와 사별하고 아담하고 귀여운 레이첼과 재혼한 슈만은 행복한 신혼 생활에 잠겨 혼탁한 세상을 잊고 지낼 수 있었다. 신혼 여행으로 레이첼과 전 세계를 유람하는 크루즈 여행을 한 달 간 다녀오고 난 후 명상 프로그램에서 회원들과 명상을 즐기며 유유자적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는 말은 현재의 매 순간을 만끽하고 있는 슈만을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슈만은 은은하게 빛을 발